이걸 해내네
출간계약을 했다.
계약서 상의 원고 마감일은 내년으로 미루어 놓았다.
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위인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써 놓은 글이 트럭 한 대는 못되더라도, 자전거 바구니 두 개 정도는 된다.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세상일이 그러하듯, 마음이 그렇지 않을 뿐이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지만, 마감에 대한 압박은 투명도 100%의 혹이 되어 손가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무거워진 손가락은 글인지 오타 에디션인지 모를 것들만 생성해댔다. 'ㄹㄴㅠ이ㅏㄹ러ㅇ'과 비슷한 수준의 초고를 다시 읽는 건 늘 괴롭다.
이런 순간마다 탈곡과 탈고의 차이에 대해 고찰한다. 뇌를 탈곡기에 넣고 탈탈 털면 글감이 낟알처럼 우수수 쏟아지긴 한다. 그러나 그걸 일렬로 예쁘게 정렬까지 해야 탈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난 지금 뇌를 탈탈 털어낸 결과 널브러진 낟알을 멍청히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활자들이 집단으로 날 괴롭힌다고 신고하고 싶다. 동시에 그 꼴을 하고 뻔뻔하게 내 앞에 주저앉은 활자들을 보니 '뭘 잘했다고 쳐다봐'라는 깡패 멘트가 절로 떠오른다. 쌍방폭행인 셈이다.
그 둔중하고 아슬아슬한 감각을 짊어지고 지내는 게 피곤해서 나는 스스로 원고마감일을 10월 초로 정했다. 빨리 하고 치워버려는 속셈이었다. 질이 어떻든 일단 원고를 넘기고 나면, 편집자님께서 전문가의 눈으로 그걸 몽땅 검토하시기 전까지는 난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을 거였다.
그러나 삶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을 하고, 두 번은 데이트를 하고, 일요일은 낮잠을 다섯 시간쯤 자야 하는 데다 주 5일이나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뜯어다가 꼭 해야 할 일에 하나하나 나눠주고 나면 글쓰기에 할당된 몫은 많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완벽한 계획에 적당한 융통성을 발휘하기로 했다. 원래의 계획은 원고 완성 후에 자유시간을 가지는 거였지만, 순서를 바꿔서 일단 자유시간부터 가진 거다. 세상 사람들은 그걸 '실패'라고 말하겠지만 난 절반의 성공이라고 우겨 보겠다. 보다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자면, 난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채찍질은 누가 해줘야 하는 거지, 내가 내 궁둥이에 채찍질을 하는 건 인체학적으로 쉽지 않다.
게다가 멍청이 같은 과거의 내가 원고 편집을 네 군데에 따로 해놓는 바람에, 글마다 최종본이 다른 파일에 박혀 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러나 고민해도 돌이킬 수 없는 문제는 생각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이미 충분히 바쁘기 때문이다. 흩어진 글을 하나로 수합하느라 나는 모든 글을 네 번씩 읽고 있다. 내 글이 이렇게 지겨워질 줄 몰랐다. 새 글을 쓰는 게 막막하다 보니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게으름을 부리는데, 이젠 다 외울 지경이 되다 보니 뭘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역시 멍청비용은 구토를 유발한다.
원고 마감에만 골몰하고 있는데 브런치에서 매거진 연재 제안을 받았다. '나도 재밌게 살고 있거든' 매거진을 주 1회 연재해 보란 거였다. 출간할 책엔 온통 학교 얘기만 할 거였으니 주제가 다른 게 일단 마음에 들었다. 나름 환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매주 한 편씩 글을 순풍 낳아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쓰라면 아무 글이나 쓸 순 있겠으나 신성한 브런치스토리 메인에 똥글을 내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첫 연재글의 주제는 똥이었지. 난 똥을 좋아한다. 만나기 힘들어서 그런가.) 나름 퇴고를 반복해 가며 글을 정돈할 거였으므로, 일상은 좀 더 빡빡해질 것 같았다. 원고 마감으로도 벅찬데 이것까지? 너 정말 할 수 있겠니? 나는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데, 하필 양념갈비를 먹어서 한창 배부르고 기분 좋은 상태의 내가 응답했다.
"할 쑤 이찌!"
물론 못할 건 없었다. 게다가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그래서 누군가 내 의식의 흐름을 따라와 준다는 건 쓰는 사람 입장에서 큰 복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써야 한다면 글감을 떠올리기 위해서라도 인생을 더 재밌게 살 것도 같고, 글 쓰는 습관을 기를 수도 있을 것 같고,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저러쿵. '배부른 나'는 '걱정 많은 나'를 부지런히 설득했다. 나는 부랴부랴 겸직 허가를 받고 연재 제안에 응했다.
이 글은 카페에서 쓰고 있다. 출간할 책의 원고든 브런치 연재 글이든,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는 심산이다. 글을 쓰기 위해 4년 묵은 노트북을 꺼내면, 한글 파일을 여는 것과 브런치에 접속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게다가 유튜브. 그놈의 유튜브가 진짜 문제다. 일단 시동이 걸리면 문제 될 게 없지만, 억지로 자리에 앉으면 예열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럴 땐 괜히 노트북 옆에 핸드폰을 거치해 놓고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 놓는데, 들을 노래를 찾으려고 핸드폰을 뒤적일 때마다 기가 막힌 맞춤형 알고리즘이 날 유혹한다.
내가 열심히 원고를 쓰(는 척 하)다가 갑자기 팽개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그거다. 오랜만에 원고를 쓰다가 잠시 유튜브를 켰는데, 난데없이 필라테스 토삭스 영상이 떴고, 그걸 보다가 필라테스 양말을 세 켤레나 주문한거다. 학교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으므로 오늘 글쓰기는 여기서 끝이다. 시험기간엔 청소도 재밌더니, 원고를 쓰다 말고 필라테스가 그렇게 하고 싶을 수가 없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필라테스 선생님을 노려봐놓고선. 웃겨 정말.
스스로에게 웃음 점수를 매겨놓고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오늘은 10월 17일이다. 그동안 나에겐 새 필라테스 양말이 세 켤레나 더 생겼고, 1차 원고도 편집자님께 보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내가 이걸 해냈다. 편집자님께서 말씀하신 분량에서 정확히 원고지 세 장 정도 더 썼다. 스물둘의 푸릇푸릇하던 내가 떠오른다. 그 시절에도 과제 분량이 '세 페이지 이상'이면 세 페이지에 딱 두 줄 정도 더 쓴 후 제출하곤 했다. 교수님은 그걸 보시고 '애는 썼네' 하며 혀를 끌끌 찼을 거다. 그러나 최소분량의 두 세 배를 쓰는 사람보다, 최소분량에서 두 줄을 더 적는 사람의 고뇌가 더 크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걸 채우기 위해 얼마나 악착같이 창작의 구렁텅이를 헤맸겠는가. 피드백이 오고 가면서 잘려 나갈 부분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좀 넘치게 적는 편이 나았을 것이나 다 모르겠다. 어쨌거나 난 해냈다. 세상에.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가다 보니 이번주 브런치 연재글도 '마감'해버렸다. 오늘은 끝내주는 차돌박이를 먹어야지. 난 정말 최고 멋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