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이 Oct 24. 2023

등산은 새로운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힘이 드는디...

아웃렛에 갔다가 홀린 듯 등산화를 샀다.


최근에 한 등산이라고 해봤자 3-4년 전이고, 어차피 내려올 곳을 왜 굳이 올라가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명확히 해소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올라가야만 했다.

어떤 유명한 산악인은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른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나는 충동적인 쇼핑의 대가로 그리 됐다.


소백산 새밭 주차장은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꽉 찬다는 말을 들었다. 친구와 나는 둘 다 초보운전이었으므로, 우린 무려 여섯 시 반에 그곳에 도착했다. 교통량이 많아지는 시간에 갓길 주차를 하느라 뒤차를 다 막아설 만큼의 배짱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린 각자 물 1L와 연양갱, 에너지바와 바람막이 두 겹을 입고 산행에 나섰다.


"나 왕년에 청계산 날다람쥐였잖아."


나는 청계산과 관악산에 기어 올라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허세를 부렸다. 그날의 목표는 날다람쥐 면허 갱신이었다. 그때와 달리 등산화의 도움까지 받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러나 이십 분도 채 못 걷고, 난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십 만원도 넘는 거금을 주고 산 등산화에는 자율주행 기능이 없었다.


"날다람쥐 안 할 거야? 가자, 날다람쥐"


친구는 날 살살 자극했다. 내 자존심을 건드려 날 움직이게 할 요량이었나 본데, 안타깝게도 내 자존심 자리에는 지방만 가득 들어차있었다.


한참동안이나 너덜길이 이어졌다. 너덜길은 '돌이 많이 흩어져 깔려 있는 비탈길'이라고 한다. 그 단어는 어느 조상님이 만들었을까. 천재가 틀림없다. 돌이 많이 흩어진 길은 몇 걸음만 내디뎌도 다리가 너덜너덜해진다. 난 어쩔 수 없이 좀 크고 평평한 돌을 볼 때마다 엉덩이를 부비고 앉았다. 소백산에서 브런치 작가 eeessay의 흔적을 느끼고 싶다면 좀 납작한 바위를 찾기만 하면 된다. 그곳엔 필히 내 납작 궁둥이의 혼이 깃들어 있을 거기 때문이다.



한 시간을 넘도록, 방금 굴삭기가 헤집고 간 것 같은 길을 걷다 보니 마침내 평평한 바위를 찾아 앉을 기력마저 사라졌다. 백 걸음도 채 못 걷고 자꾸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친구는 착한 눈빛으로 말했다.


"자꾸 퍼지면 더 힘들어. 좀 더 가서 쉬자."


말이야 맞는 말이었으나 그게 내 맘대로 된다면 왜 나아가지 않겠는가. 나는 네 발로 기지도 못하고 두 발로 걷지도 못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리를 반쯤 접고 걸었다. 반박할 힘조차 없었다.


"천천히 가세요. 무리하지 말고."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딱 봐도 등산의 고수 향을 풍기는 아저씨가 혀를 내놓고 헥헥거리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허,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나는 날숨마다 한 어절씩을 겨우 뱉어낸 후 친구의 눈총을 무시하고 냅다 그 아저씨 옆에 가서 앉았다. 바위가 살짝 뾰족했으나 꼭 거기에 앉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 아저씨만이 세상천지의 유일한 내 편 같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그분은 등산고수셨는데, 요리 보나 조리 보나 첫 등산화를 개시한 것 같은 나를 보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급하게 올라갔다 급하게 내려오지 말고, 다른 사람의 속도를 생각하지도 말고 자연을 즐기라는 거였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조리 다 맞는 말이었다. 친구도 등산 고수님 앞에선 날 재촉하지 못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몇 마디를 나누고 나니 침묵이 흘렀다. 그 공백에 바람이 들자 나뭇잎이 몸을 비비는 소리가 났다. 나무는 시옷 소리를 내며 운다. 등산화 충동구매를 후회하며 걷기만 할 땐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었다.


우리는 먼저 일어섰고, 계속해서 걸었다. 어느새 포기하고 내려가기엔 아깝고, 더 올라갈 힘은 없는 진퇴양난의 순간에 이르렀다. 좁은 등산로에서 하산하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분들은 처음 보는 우리에게 명랑하게 인사까지 해주셨다.

"안녕하세요!"

정상에서 닭백숙이라도 드시고 오신 건가. 어쩜 저리 기운찬 목소리를 낼 수가 있지.


나는 눈에 힘을 쭉 빼고 겨우 인사를 건넨 후 물었다.

"저... 평상까지 얼마나 걸려요?"

"어, 한 이십 분 정도면 돼요."


사실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묻고 싶었으나, 정상까진 아직 한참 남은 것을 알기에 차마 그 질문은 던지지도 못한 거였다. 평상이라도 얼른 만나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분명, 평상 이후로는 시야가 탁 트이며 길도 어렵지 않다고 했다. 이십 분이라, 그 정도라면 힘을 짜내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번의 등산 경험 끝에 하산하는 사람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알아버린 후였지만, 어쨌거나 그 순간엔 하산하는 분들의 말을 믿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아, 등산에 필요 없는 장기 몇 개는 떼내고 올 걸. 토끼가 간을 두고 다닌 건 진짜일지도 몰라. 평생 산에서 살아야 하는 산토끼의 비기였던 거지.


난 멀쩡히 달린 장기가 무거워 내내 속으로 툴툴거렸다. 그런데 글쎄, 우리 옆을 지나가는 분들은 가방에 인형까지 매달고 올라가시는 게 아닌가.


"헐. 저분들 좀 봐. 가방에 인형까지 매달고 가시잖아. 말이 돼? 나만 이렇게 힘들어?"


진짜 날다람쥐는 그분들이었다. 등산의 세계는 대단했다.

그러다 이제 그런 생각마저도 안 드는 순간, 우린 드디어 평상을 만났다. 이미 정상에 선 듯한 고양감을 느꼈다.

"여기까지 오면 다 온 거랬어."

그러나 그 후로도 우린 한참을 걸었다. 블로그 글을 대충 읽는 바람에 속은 게 틀림 없었다. 끝이 날거라 생각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으니 급격히 힘들어졌다.


블로거에게 속았다며, 나는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그걸 똑 뗀다면 지팡이 역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바람이 거세어졌고, 부지불식간에 빽빽했던 나무가 사라져 있었다. 소백산 정상 부근에는 바람이 강해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더니, 이거야말로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저것 좀 봐."




우린 급기야 벌렁 누운 나무를 봤다.

나무 옆에 말풍선을 달아주고 싶었다.

'여기가 아닌게벼'.


광활한 초본식물 틈바구니에 혼자 누워 있는 나무는 좀 서글퍼 보였다. 아마 날씨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운무 때문에 앞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던 거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을 때 소백산 정상의 풍경은 나무 없이 뻥 뚫려 산그리메가 장관처럼 펼쳐지는 풍경이었으나 우리 눈앞에 펼쳐진 건 전지적 곰탕재료 시점이었다.


"뭐야!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추워서인지 억울해서인지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곰탕 속 대파 조각이 된 게 분명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게 기가 막혀 우리는 웃었다. 뭐, 구름 한가운데 있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저 끝에서 조상님 만날 거 같아. 이거야말로 진짜 천국의 계단 아니야?"



정상과 가까워지자 신이 나서인지 잃었던 말수를 찾았다. 아무 것도 안 보였지만 장관이었다.


날씨만 좀 좋았으면 진짜 멋졌겠다, 근데 지금도 너무 멋지지 않아? 몽환적이야.


우린 아쉬워하다 들뜨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다.






비로봉은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바람막이를 두 벌이나 껴입었는데도 온몸이 떨렸다. 텀블러에 따뜻한 물이라도 담아갔다면 믹스커피라도 한 잔 했을 텐데,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뜻밖의 소득이 있었다. 등산객 가방에 달린 인형의 정체를 알게 된 거다. 사람들은 정상에서 그 인형을 손에 쥐고 사진을 찍었다. 등산 인증 사진용인 것 같았다.


"우리도 하나 살까? 귀여운 걸로."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곧장 다음 쇼핑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형 대신 모델이 되길 선택한 다른 등산객들의 사진을 찍어드리고, 벤치에 앉아 잠시 쉬다가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은 하산대로 힘들었다. 엄지가 신발 앞머리를 쿵쿵 찰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느낌이었다.

"나 방금 엄지발가락 뼈 부러졌어."

"고관절 박살 난 것 같아."

난 걸음마다 부지런히 몸 상태를 진단했다. 성인은 대충 200개의 뼈를 가지고 있다는데, 난 하산하면서 몇 개가 동강 났으니 뼈도 네 조각쯤 늘어났을 거다.




올라갈 때와 같은 길로 내려왔음에도 많은 게 그 때와 달랐다. 고개를 박고 올라갈 땐 보이지도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는 신기한지 연신 그 얘길 반복했다.


"이런 길이었구나, 아깐 몰랐어."


"그러니까. 왜, 그런 시 있잖아.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오."


친구는 경탄을 담아 간결하게 대답했다.


등산하는 사람들 중 몇몇 분은 우리에게 경쾌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산할 땐 기분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다 싶었지만, 올라가는 길에 어떻게 인사까지 건네시지? 체력이 대단하시다. 나는 그들의 체력에 감탄했고, 친구는 얘기했다.


"취미마다 그런 문화가 있나 봐. 자전거 타는 사람들끼리도 마주치면 인사하거든."

"그럼 우리도 인사해 보자. 네가 해 봐. 난 못하겠거든."


나는 친구에게 그 임무를 맡겼고, 친구는 올라오는 분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헥헥거리시다 말고 그분도 대답해 주셨다.

"안녕하세요!"

옆에 계신 분은 간절하게 말씀하셨다.

"이십 분만 더 올라가면 되죠?!"


안타깝게도 우린 이미 하산만 한 시간 째였다. 그러나 그분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절규하다시피 말씀하셨으므로, 차마 진실을 고할 수 없던 나는 "어... 삼십 분 좀 더 넘게 걸릴 거예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하산하는 분들이 왜 나에게 희망적인 대답만 해주시는지 드디어 깨달았다. 아마 나도 저런 표정을 하고 물었겠지. 아직 한참 남았다고 하면 곧장 울 것 같은 얼굴로. 그 분들은 한 시간 넘게 산길을 올라가면서 날 얼마나 원망했을까. 지면을 빌려 사과드린다.


내려오면서 등산고수 아저씨를 다시 뵀다. 그분은 바위에 불상처럼 앉아 눈을 감고 계셨다. 잠시 눈을 뜨신 틈에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드리니,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우린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여섯 시간이 걸린다는 코스를 5시간 4분만에 말이다. 걷는 속도가 빨랐던 것도 아닌데, 얼마나 오르고 내리는 데에만 집중했으면! 그 기록은 천천히 자연을 즐기라는 산아저씨의 조언을 지키지 못한 증거 같았다.


"다음부턴 좀 천천히 가자. 중간중간에 좀 쉬고."


그게 첫 등산에 대한 우리의 한 줄 평이었다.


그리고 나는 필라테스 예약을 결국 취소했다. 등산 후 5일이 지나서야 겨우 필라테스를 하러 갔는데, 동작을 절반도 따라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힘드시면 한 칸 내려서 하면 돼요."라는 아량을 베풀기도 전에 난 기구에 엎어져 빨래처럼 널려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 곁으로 오실 때마다 '오늘은 절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는 눈빛을 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그 투정에 기꺼이 눈을 감아 주셨다.


생각하니 분했다. 우리 필라테스 선생님은 이렇게 인자하신데, 산은 날 봐주지 않았다. 필라테스를 하다 말고 힘이 들면 기구에 늘어지면 되고, PT를 받다가도 너무 힘들면 포기를 선언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난 러닝을 하겠다고 30분을 걸어 공원까지 가 놓고선 준비운동조차 하지 않고 돌아온 적도 있다.  


그러나 산은 한번 오르는 순간 한 발로든 네 발로든 내려와야 한다. 아무리 벤치에 늘어져 있어도 산신령은 날 옮겨주지 않는다. 산은 불공정거래를 모르므로 일단 올라간 높이만큼은 내려와야 하고, 그 곳에 있는 동안에만 그 속을 보여준다. 이제 너무 힘드니 괜찮다고 빌어도, '이게 바로 자연의 맛이다, 이 나약한 도시 놈아!' 하며 산의 기운을 퍼먹여 준다. 성취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자연의 시스템 앞에서, '날 이렇게 막 대한건 네가 처음이야.' 하는 일일드라마 대사를 읊게 된다.


혹독한 근육통에 시달렸으나 우린 또 산에 오르기로 했다. 난 이제 열심히 등산 스틱을 알아보고 있다. 다음 등산 땐 산 초입에 막걸릿집이 있는 곳으로 가서, 안전 하산 기념으로 파전이랑 막걸리를 퍼먹고 주말 내내 끙끙 앓으며 잠들 거다.


이상, 날다람쥐 면허 갱신기였다.


짜잔



이전 10화 마감이 있는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