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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결과는 조물주가 애초에 날 잘못 설계했단 것을 방증했다.
모든 점수가 내 생각보다 좀 더 구렸던 거다.
뭐, 그래도 예상범위를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오, 생각보다 좀 더 구린데.' 정도였을 뿐.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엄청난 위용을 뽐내는 척도가 있었으니 '위엄회피' 기질이었다.
정상범위는 백분위 30에서 70 사이인데, 난 100이 나온 거다.
100.
아무리 자기 보고식 설문이라지만 100이라니.
그건 결과지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세 자릿수의 수이자, 대충 파도치는 대로 살고 싶은 미역 자아를 가진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대쪽 같은 수였다.
그러나 내 인생을 떠올려보면 일견 적당한 수 같아 보이기도 했다. 신중하게 살아보겠다고 돌다리를 깨질 때까지 두들기다가 주저앉았던 경험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소장님은 그 충격의 TCI 검사 결과지를 두고 자분자분 내 기질과 성격을 해석해 주셨다.
기질은 타고난 거라 바꿀 수 없고, 성격은 환경적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변화 가능하다는 안내도 함께였다.
"아, 그럼 제가 이렇게 걱정이 많은 건 못 바꾼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이건 타고 태어난 거라 바꿀 수 없어요. 무슨 상황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사고가 그렇게 흘러가거든요."
소장님은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으셨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를 기치로 내건 꿈과 희망의 세계에서 일하는 나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내 생각 하나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거였다니.
소장님은 이어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는 성향인데, 지금 상황에선 '난 이걸 해결할 수 없고, 남도 날 도와줄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힘이 드실 수밖에요."
나도 날 구할 수 없고 남도 날 구할 수 없으면 난 누가 구원해 주지? 적당히 대꾸할 말을 찾아 헤매는 사이 소장님은 내 삶을 간결하게 진단하셨다.
삶의 방향과 목적,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지만 무력감 때문에 힘겹게 분투하고 있다는 거였다.
나도 검사 결과를 뒷받침하는 얘기를 덧붙여나갔다.
"어... 저는 걱정이 많아서 뭘 하려고만 하면 일단 브레이크부터 밟아요."
소장님은 그 표현이 딱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위험회피 기질이 너무 낮은 사람들은 과속 방지턱을 보고도 시속 200km로 질주해서 부상을 당한다면, 나는 길거리에 그려놓은 가짜 방지턱만 봐도 멈춰 선다는 거다.
원래 에너지 수준이 낮은데 얼마 없는 기운을 걱정에 다 써버리니, 사는 게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게 소장님의 결론이었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난 태어날 때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삼신할매와 조물주, 가장 최악의 엄마와 가장 최악의 아빠를 두고 범인 색출에 여념이 없는 틈에, 소장님은 악착같이 장점을 찾아내셨다.
"선생님은 늘 최악의 상황까지 걱정하고 대비하시니까, 인생이 아무리 망가져도 예상 밖의 난관은 없어요."
"아하, 네.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해요."
그렇지만 사실 난 교직 환경이 이 정도로 나빠질 줄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래도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건 좀 뭐랄까, 끔찍한 기적에 가까웠으니까.
그런 걸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의 난관은 내 예상 안에 있었고, 내 걱정의 끝까지 상황이 나빠진 적도 없었다.
소장님 말씀이 맞았다.
세 번째 상담부턴 아무 생각 없이 흉금을 털어놓았다. 라포가 형성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차피 상담은 5회기로 끝날 것이었고, 내 성향상 그 안에 기막힌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래서 더 괜찮았다. 사람들은 때로 친밀한 사람보다 스쳐갈 사람에게 더 솔직해지곤 하니까. 말하자면 소장님은 내게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인 셈이었다.
'기질을 바꿀 수 있냐'는 질문에 '안 된다'라고 딱 잘라 해주신 대답은 큰 도움이 됐다. '노력하면 할 수 있어요.' 따위의 물컹한 대답을 들었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를 주무르고 쥐어짜다 완전히 터져버렸을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건 내 다리뼈가 휘어 있고 내 머리가 반곱슬인 것처럼,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특징이었다. 드디어 걱정 많은 나를 책망하지 않을 구실이 생겼다. 앞으로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태어난 나'를 데리고 잘 달래며 살면 될 일이었다.
그즈음 날 시험에 들게 하는 사건이 생겼다.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전세금보증기간이 만료됐단 통지를 받은 거다. 임대인은 보험을 갱신했다고 하는데, 공사에선 '임대인의 보증 미신청 또는 취급 거절로 인해 갱신되지 않았다'는 알림을 보내왔다. 수많은 전세사기 뉴스들이 머릿속에 우박처럼 쏟아졌다. 지끈거렸다.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에 문의를 했으나 시원한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너무 불안했어요. 애써 무시하고 있었는데 밤 12시에 갑자기 걱정돼서 잠을 못 자겠는 거예요. 누워있다 말고 일어나서 보증공사 홈페이지에 문의글을 썼는데, 어차피 바로 답변을 받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미치겠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소장님은 또다시 아주 간단한 질문을 던지셨다.
"'내가 또 불안해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몇 가지 생각을 했어요. 지금 걱정하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가,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 그렇게 될 가능성은 얼마인가. 근데 일단 밤늦은 시간이니, 아무리 걱정해도 일단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더라구요. 그리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은, 보증공사에서 답을 받고 난 후에 상상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잤어요!"
"오, 그걸 그 순간에 깨닫고 마음을 다스린 것 자체가 대단한 걸요."
그 후로 두 어번 더, 심리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는 동안, 주변 상황이 좀 좋아져서 마음이 점점 안정되었다. 알고 보니 전세보험은 무사히 갱신되어 있었고, 새 세입자도 금방 구해졌다.
지난날이었다면 몇날며칠을 사로자며 힘들어했었을 테니 나로선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엔 대학 동기 모임이 있었다.
나는 심리 상담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이 별말씀을 안 해주셔서 처음엔 좀 이상했다? 왜, 친구들끼리 얘기하면 바로바로 대답을 해주잖아. 근데 그분은 내 말을 계속 듣다가 가끔 질문만 하나씩 던지시는 거야. 근데 대답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어렸을 때 얘기까지 하고 있는 거 있지? 좀 되게... 신기했어."
난 그 새로운 경험을 간증했다.
"언닌 그럼 거기서 뭘 좀 느낀 게 있어?"
동기가 물었다.
"어. 난 이전 학교를 계속 다녔어도 후회했을 거란 생각. 내가 이렇게 걱정에 끌려다니면 어디서 뭘 했어도 만족하지 못했겠다 싶더라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 뭐."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교대에 간 걸 내내 후회하며 살아온 나는 말했다.
동기는 가만히 듣더니 대답했다.
"뭐야, 득도했네."
난 괜히 입술을 전방 45도 각도 위로 잡아 뽑으며 우쭐거렸다. 그러나 심리 상담 한 번에 삶의 진리를 깨치고 행동에 옮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사는 게 그렇게 쉬울 거면 다섯 번도 더 살았지. (조물주의 허락은 받지 못했지만)
그러니 난 여전히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그래도 이제는 불안이 스멀스멀 떠오를 때면, '내가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까진 일어나지 않는다.'를 되뇌고, 불안을 끄집어내 마모될 때까지 공들여 쓰다듬는다. 감정을 밖으로 꺼내어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게 해결된다.
고로 난 아마 앞으로 사는 내내 그 한 문장을 손에 꼭 쥐고 살아가야 할 거다.
그리고 죽고 난 뒤, 더 이상 불안을 달랠 필요가 없어지면
그땐 꼭 쥔 주먹으로 그 자식 명치를 때려버려야지.
너땜에 사는 게 쉽진 않았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