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우리는 헤어졌다. 갑자기? 도대체 왜? 이제서야 장거리 연애도 끝이 났고,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할 일만 남았는데. 성격 차이라고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한 사람에게 이상하리만큼 이상적인 관계는 다른 한 사람의 투명한 신음을 딛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는 걸.
어떤 순간은 사진으로 선명하게 인화되어 뇌리에 박힌다. 처음 만났을 때 반짝이던 눈으로 소주 한 잔을 권하던 모습같은 거 말이다. 닫힌 마음 앞에서 몇 번이나 노크를 하고 아무렇지 않아하던 모습도. 우리는 자주 싸웠지만 먼저 손을 내미는 건 그 애였고 나는 못 이기는 척 받아주기나 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나중에야 알았다.
1년 동안은 나를 탓하기만 했다. 매순간 진심이었기에 후회는 없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방법에는 서툴었으니까. 나에게 어떤 사랑을 주었는지 눈치채지 못한 것이 못내 사무쳤다. 내게 주어지는 것들 중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연애 따위를 다시는 하지 않을거라고 선언했다. 나를 위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시험까지 쳐서 올라온 그 애도 사랑이 아니라는데 앞으로 내가 누굴 믿고 어떻게 연애를 하겠어. 당시에 이 선언을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어딘가에 사랑을 쏟아내지 않고서야 못 배기는 너같은 사랑꾼이 연애를 멈춘다고? 아 뭐, 사랑은 지천에 널려있으니까. 연애 감정만 사랑이냐. 나를 지켜주는 사랑은 너무나도 많았다. 크고 작은 마음들에 파묻혀 연애를 안 한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연애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충만한 사랑만 받아왔길래 난 왜 이런 것도 하나 모르는 거야, 부딪히며 시행착오만 겪었다. 남들은 이십대 초반이면 깨우치는걸 나는 왜 이제서야 배우는건지 그 사이에 세상은 너무 딱딱해져버렸다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 하는 연애는 다 쓰레기라고 엉엉 울어버리기나 했다. 사랑의 실용성이 그 가치를 가늠하는데에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는데, 연애나 결혼은 현실과 맞닿아 있으니까 이런 것들은 사랑이 될 수 없다고 박박 우기며. 대상 없는 한풀이는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였다. 그냥 ..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은 세상에 없으니까. 모든 유니콘이 그러하듯. 그게 속이 상해서.
그럼에도 사랑을 여전히 믿고 싶다. 언젠가 다시할 수 있겠지. 내가 아는 모양이랑 다르더라도.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을 만나고 기대를 품고 마음에 들이고 괴로워도 하는 거겠지. 사실 진절머리가 난다. 사람 앞에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성향도 정이 많은 것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특성인데, 이별 앞에서는 꼭 나를 약자로 만든다. 누군가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속끓이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내 마음도 가벼웠으면 좋겠는데 한 번 정해진 우선순위는 왜 지독하게도 변하지를 않는지.
그 누구도 지나치게 깊게 담지 않겠노라, 또 다짐한다. 다른 사람에게 곁을 내어주기에 내 마음은 낡았고 닳았고 해졌다. 모자란대로 끌어안고 사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다. 진심을 흩뿌리지 않고 살아가기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구구절절 써놨지만 실상 남 연애에는 누구보다 시니컬한 걸 보면 제법 쿨할수도.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다. 오늘의 기분은 딱 이렇고, 내일은 또 모르지. 이렇게 사랑 앞에 찌질한 내 모습을 잔뜩 털어놓고 내일은 똑부러지게 말할지도 모른다. 연애고 사랑이고 다 내가 행복하고자 하는거니까 내가 온전한 게 먼저야. 그래야 타인을 이해할 여유도 배려할 마음도 생기니까. 낭만의 실용성은 그 때 생기는거야,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