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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07. 2023

최선과 차악의 사이를 오가며

길을 잃을 것 같은 날에 멈춰 서서 적는 일기

  얼마 전 앱에서 울린 알람이 날 미소짓게 만들었다. 내 글을 더 읽고싶다는 친구의 댓글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다보면 내가 가진 재능에 무뎌진다. 그냥 다들 이 정도는 하지 않나? 일터는 나의 부족함을 확인받는 공간이니까. 계속해서 단점을 발견하고 가꾸어 발전해나가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으니까. 내 못난 점에만 자꾸 집중하게 된다. 말과 글이 업인 사람에게는 하나의 발제문도 여러 번 교정하는 게 당연하니까.


  타고나길 자존감이 높은 것 아니냐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보인다는 이유로. 그게 당당함이 아니라 자기제어를 못하는 면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까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 자존감을 그래프로 나타낸다면 가파른 우상향 곡선에 가깝다. 한국의 지독한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듯 나도 기대치에 못 미치면 쉽게 불안해지고 스스로 다그치기 일쑤였다. 그런 습관들은 아직도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성취가 없는 상태를 즐기지 못하게 만든다. 여전히 삶은 경쟁의 연속이지만 내가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르면서부터는 서툴게 자존감을 쌓아올렸다. 완벽주의인 나에게 ‘서툴게’라는 말은 노력에 비해 엉성하여 애틋하다는 의미이다. 서툰 탓일까.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감정의 진폭이 남들보다 큰 것은 나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자 단점이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아끼고 돌보는데에 유용하게 쓰이지만, 또 그들에게 쉽게 상처주곤 하니까. 감수성이 풍부한 것에 비해 지나치게 원칙주의다. 그리고 그 첫번째 희생양은 늘 나다. 내가 나를 가장 속속들이 알고있으니까.


   사람이 좋은데 사람이 싫다. 사실은 나의 까다로운 체크리스트를 통과한 사람만 좋아한다. 그리고 또 싫어한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가까워지면 본능적으로 본인과 동일시를 한다고 한다. 심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나랑 같은 사람이라고 뇌에서 착각을 한다나. 그래서 아주 가까운 친구나 애인, 부모-자식 사이에서 가스라이팅이 많이 일어난다고.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덜 사랑할걸 그랬다. 그게 누구든. 그럼 제멋대로 휘갈긴(나에겐 한땀한땀 피로 써내려간 최소한의 방어기제지만) 체크리스트를 들이대는 오만함은 없었을거고, 그럼 조금 더 오래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어른이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어리다고 하기엔 멋쩍은 나이에 서 있다. 주변과 스스로의 기대치를 무너뜨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어른됨의 길이라고 하던데. 그게 맞다면 나는 언제쯤 어른에 가까워지는걸까. 성공한 경험들과 실패한 경험들, 해내지 못할 두려움 사이에서 늘 서툴기만 한 나를 믿어봐도 되는건지. 정면돌파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딱히 다른 수도 없지만 말이다. 부디, 지난 번보다 더 나은 선택(의 과정)과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딱 그만큼만. 그럼 그 다음엔 조금 더 나은 선택과 결과가 있겠지.


  솔직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최선과 차악의 선택을 오가며 나를 잘 지켜낼 수 있기를. 보잘 것 없지만 끊어지지는 않을 나의 모든 것들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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