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이별이 잔혹한 이유는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점에 있다. 하루이틀쯤 수업을 듣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진 않았지만, 하루이틀쯤 수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학생들은 나와 약속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매일 지켜온 자리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묵묵히 버텨내야만 한다. 비지니스 미소만 늘었다. 원래 표정 관리라고는 모르는 애였는데.
또, 어른의 이별이 버거운 이유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주지 않는 데에 있다. 3시간 이상 울면 먹은 걸 게워내고 5시간 이상 울면 편두통과 안면근육통이 찾아온다. 어렸을 땐 슬프면 마음껏 울 수 있었는데. 진통제를 찾으려고 온 집안을 휘저어도 어딨는지 안 보인다. 1인 가구의 가장은 나니까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데.. 아차차 지난 감기 때 다 먹었지. 빈 타이레놀 상자를 붙들고 또 눈물이 난다. 울고 있어야 덜 아픈 것 같기도 하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서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해 주는 아이들. 회의 후 도서실에 들어서니 반가운 인사로 맞이해 주는 졸업생들. 타이레놀 대신 상비약통을 채워준 테라플루까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억울했다. 오해였다고 말을 해도 닿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데 상처를 줄 이유가 없지 않냐고 항변해도 통하지 않았다. 이미 상처를 줬고, 받았고, 내가 간직한 마음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까. 무력했다. 바보 같고. 애정에 기대어 넘어가줄 수는 없는 건가. 도대체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냐고 한참을 울었다. 그냥이지 뭐. 좋아지는 데에 이유 없듯이 싫어지는 데에도 이유가 없는 걸 잘 아는데도 속상한 걸 어떡해. 사람은 늘 변하니까 조금이라도 붙잡아두려고 관계에 이름표를 붙이는 건데, 우리는 그런 거 없이도 특별한 줄 알았다. 진심이 오갔으니 그런 건 아무렴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안일했다고. 진심은 실체도 없고 아무런 증거도 될 수 없는데. 특별할 게 없었던 게 맞다. 감정이 지나가고 남은 사실은 그렇다.
우정에 기대어 저녁밥을 겨우 먹고 돌아오는 귀갓길에는 미안해서 또 눈물이 났다. 혼자서 합리화할 동안 그대로 둔 게 속상해서. 본인 감정 잘 살필 줄도 모르면서 이해되지 않는 걸 이해하려 골몰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상처에만 집중하느라 상대의 상황까지 살필 수 없었던 좁은 시야가 원망스러웠다. 그러게 말 좀 먼저 해주지 서운하다가도 말해주기 전에 내가 알아줄 수는 없었나 후회도 되고. 그러다가도 역사에 쓰이지도 못할 거 뭘 그렇게 대단한 사랑을 했다고 이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이고 슬퍼하나 싶기도 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 지쳐서 이제 다시는 사랑 안 한다고 다짐하고. 그러다 보면 어휴 벌써 열한 시다. 씻고 자야지 내일 아침에 출근하려면. 내일은 생활기록부 꼭 써야 하는데. 어떻게든 잠에 들어야겠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