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아름다움
최애가 밥 먹여주냐?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어디선가 본 영상으로 대신하고 싶다. 한 콘서트 장에서 가수는 팬레터를 읽고 있다. “W야, 나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네 콘서트 가려고 열심히 살았어. 고마워.” 무언가를 깊게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은 지치고 낡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열심히 살자. 포기하지 마라. 나도 포기 안 했다.” 팬레터를 읽고 가수는 울먹이며 대답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의 눈에서는 빛이 난다. 생기가 도는 그 눈빛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생명력은 사랑에서 온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동경하는 가수의 공연을, 응원하는 스포츠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표를 예매하고 공연장과 경기장까지 가서 날씨와 상관없이 기다림을 자처한다. 그 과정이 때론 고되어 ‘뭘 그렇게까지?’라는 물음이 담긴 눈길을 받기도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낭만은 ‘굳이?’에서 온다는 걸.
조금 더 거리를 좁혀 좋아하는 것들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반려 동물, 친구, 애인을 사랑한다. 별도 달도 따다 주고 싶은 마음이 괜한 소리는 아닐 거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만은 진심일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된다. 내가 상대의 유일한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책임감은 무거우면서도 아주 매력적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화자에게 말한다.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이 한 마디로 화자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내리는 빗방울처럼 흔하디 흔한 불가항력적 두려움 속에 뛰어들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아침저녁으로 읽는다. 제 생명을 소중히 하는 근간이 된다. 타인에게 서로의 생명을 기대는 일은 두렵지만 그만큼 강렬한 것이기에 많이 회자되는 감정이 아닐까.
취미 생활에 열중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은 어떠한가. 부지런히 읽고 쓰고 사유하는 길목에서 카타르시스를 마주한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과정에서 러닝 하이를 겪는다. 살아있어서 읽고 쓸 수 있으며 달릴 수 있다. 좋아하는 행위를 하며 우리는 생명력을 감각한다. 같은 취미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종종 이야기한다. ‘독서처럼 비효율적인 행위가 있나요. 누가 읽고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 훨씬 빠르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잖아요.’, ‘뭐 하러 42.195km를 달리나요? 시간과 체력을 달리는 데에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선경 시인의 <건강에 좋은 시>를 읽어주고 싶다.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이라고.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좋아하는 감정이 선행하고 이유는 뒤따라올 뿐이지요.
“사랑이 밥 먹여주냐?” 누군가 묻는다면 “밥은 몰라도 생명은 먹여줍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헤어나기 어려운 갯벌에서도 손을 놓지 않는다. 삶은 곧 고난이라는 싯다르타의 말처럼, 삶이 뻘밭과 같은 불가항력적 고난이라면 그 위에 분홍빛 진주알 같은 사랑을 몇 가지 끼얹어봐도 되지 않을까. 뻘밭에 머무르며 진주알을 찾아낸 서사와 연대는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흑백의 삶에 색채를 물들여주는 것, 그리하여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내가 만난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