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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함께

나에게 하루의 쉼이 더 주어졌습니다

운무산 솔나리와 백리향 탐화

by 플랫폼

매거진이란 뭘까.

공동집필이란건 또 뭐길래

나의 갈지자 맨탈을 온통 흔들어 놓는 걸까.

내 마음은 점점더 깊은 미궁속으로 빠져듭니다.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더니

세상에나 나에게도 이런날이 오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분명 공상의 세계는 아닌듯 싶어집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보지만

나에겐 마땅한 솔루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상황.

쓴다고 할까.

아니면 글린이라 못쓴다고 할까.

혹시

쓴다고 했다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지.


또 걱정이 도졌습니다.

걱정대학교 출신답게 늘 걱정과 염려를 가지고 다닙니다.

글홍수속에 혹여나 쓰레기하나 투척하는게 아닐까.


그러다가

우연히 과거의 나와 마주합니다.

그땐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블로그 3년이면 글맹이가 글린이 정도는 된다하니

괜시리 블로그씨 주변을 서성거리며 시비를 걸어 봅니다.


아! 순간

정신이 번쩍 트였습니다.

바로 이거로구나.

습작, 연습, 놀이 이런 키워드가 생각납니다.

매거진을 한국말로 옮기면 뭐지.

잡글들이 모여 이룬 커뮤니티 이런것?

그래서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어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난 무슨 글을 쓸 수가 있지.

첫번째는 산행, 두번쩨는 생태탐방, 세번째 여행 이 정도로 압축되는데.

어쩔수없이

이번 글은 산행으로 택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까운 블로그 글들을 급소환해봅니다.

거기에다가 고운 색감을 덧칠해보기로.

나에게 현란한 문체란 존재하지 않으니

나만의 고유의 맛글이란걸 만들어 보면 어떨까.


지금부터

행복했던 블로그 3년의 속살들을

한올한올 벗겨 볼까합니다.

그곳에서 하나의 글을 반강제적으로 끄집어 옵니다.

올여름 25년 7월 21일.


매년 7월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떠남중독증환자들을 흔들어 놓는게 있습니다,

지네발란 그리고 솔나리 .


꿈나라 여행중에도.

심지어는 산책중에도.

눈에 가시처럼 두눈에 아른거려

도저히 그냥 넘어가긴 힘들었다고나 할까요.


어짜피 일타 쌍피는 어렵고.

그럼 지네발란은 몇 년째 쭈욱 만나왔으니

올핸 그냥 건너띄기로 합니다.

결국

꽃친님들의 솔나리 이야기들이 나의 일주일을

온통 집어 삼켜 버렸습니다.

매일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이 넘의 꽃탐에는 멈춤이란것도, 만족이란것도 없나봅니다.


꽃자리를 어렵사리 하나 알아냈으니

가만히 넋놓고 보고만 있을 순 없을테죠.

거리상 결코 만만치 거리지만,

충분히 투자하고도 남는 장사가 될것이 분명하였기에

서둘러 여장을 챙겨 애마를 몰아갑니다.

뭘보고 그렇게 장담을 사정없이 하느냐구요.

사실 남모를 사정이 좀 있긴합니다.


주말 이틀간 비상대기 덕분에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하루가 더 주어졌다고나 할까요.

회사가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떠나야 합니다.

36계 줄행랑만이 유일한 해답.


그럼, 출발합니다.

장소는 생전처음 가보는 횡성 운무산.

운무가 기가 막히다는 말을 익히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넘지 못하는 현실의 벽이란게 늘 있기 마련인데.

난 지금껏 그 벽을 그냥 인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야

내 신상에 이롭다는 걸 누구못지 않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얼마전까지 마의 벽이었던 강원도가 언제부턴가

갑자기 그 잠금장치가 해제되었습니다.

모두 떠남중독증때문이죠.


가는길 혹여 길이 인정사정없이 막힐줄 모르니

일단은 최대한 일찍 서둘러봅니다.

고속도로변 산 봉우리마다 운무가 곱게 피어

조급증환자인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 댑니다.


무색같은 회색.

아니면 텅빈것같은 진한 여백들이 느껴지는 몽환적인 경치.

홍천강 위를 지나다 그만 그 홀릭에 빠져듭니다.

순간,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멈춰 세울 뻔.

이런날은 꽃과 나비들과 놀기에 너무나도 딱 좋은 날씨입니다.

꽤 이른시간에 청량저수지에 도착.

때마침 운무가 모락모락 막 피어오르는 중이었군요.


임도길을 걷는데 갑자기

제비나비들이 갈길바쁜 나의 발목을 마구마구 붙잡습니다.

노우를 강하게 외쳐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끈질김.

원추리 꽃망울에서 꿀을 빠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평상시 같았으면 남는게 시간 뿐이니 좀더 놀아줘도 되겠지만

지금은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마음이 온통 꽃밭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죠.

몇 컷 찍어주고 서둘러 오릅니다.


오름길도 완전 운무로 가득.

역시 운무산 답습니다.

마치 신선들이 사는 곳처럼.

몇 걸음 걸을때마다 이마에 땀방울들이 주륵주륵 흘러 내리는 중.

삽십여분 가다서다를 무한반복.

물한잔 마셔주고 심호흡한번 해주면서.

심장에 미안해지고 두다리에 죄를 심하게 짓는것 같은 이 기분.

독자님들께서는 이 마음 이해하시려나요.

마침내, 첫 만남.

첫번째 얼굴을 보여준 이 아씨.

분명 날 기다리고 있었던게 맞을테죠?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이 상황에 넋을 잃치 않는게 이상할 정도.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무섭게 정상에 도착합니다.

운무가 온 봉우리들을 껴안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발아래 널리 펼쳐진 운무들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러다

한줄기 바람이 그 물분자들을 세차게 먼발치로 몰아 댑니다.

바람과 운무와의 줄다리기는 끝이없이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작은 꽃송이들과 데이트중.

어쩌다가 이곳 높은데까지 오게 됐을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아쉬운건

인간 세상 아래에도 터잡고 살만한 데가 분명 있을텐데.

왜이리 높은 곳만 고집하는 건지.

속살마져 드러낼듯한 투명한 꽃잎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솔잎을 닮아 솔나리라 불리우는 그대.

온몸이 소나무의 기상을 닮아 그렇게 고고하고도 우아한 건가.

해발고도 980미터.

연분홍 미소가 마치

숲들이 두런거리는 사랑의 속삭임 같았습니다.

작은 꽃잎 하나하나에 담겨진 자연의 정성에

마음까지 촉촉히 젖어드는 중.


그리고,

이내 하산길입니다.

정상에 너무 취하면

저승사자가 갑자기 나타날수도 있으니 서두릅니다.

완벽히 된비알 고개입니다.

머리 처박고 멍하니 내려가다

순간 뭐에 빠져 한동안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두려움과 함께 혼란이 교차합니다.

그러다 실수로 만난 꼬맹이 야생화 백리향.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은 격입니다.

자연의 선물에 취해 경거망동하다가

얼떨결에 만난 그대.

향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듭니다.

이 느낌.

아시려나요.

하늘엔 운무가 둥둥둥 마음엔 행복이 가득.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노래가 입에 아른거립니다.

이렇게 늘 행복해도 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아, 이 황홀경을

어찌 표현하오리.


백리향에서 뿜어져 나오는 찐한 향이

시나브로 내 코끝에 스며듭니다.

온몸이 정지된 듯한 무한 행복감에 도취되고.


이런게 산행의 마력이 아닐지.

꽃은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지요.

해가 찬란한 일출과 저녁노을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말이죠.

난, 무슨 향기로 독자님들을 울릴수 있을까요.


발없는 향이 백리를 간다는 사실을

이제 믿기로 했습니다,

솔나리가 도도하고 콧대높은 귀부인의 자태라면

백리향은 부드럽고 은은하고 고품스런 백작부인같은 우아함.


이내,

나에게도 형언할수없는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옵니다.

흔들리지 않는 이 편안함의 이면에는 솔나리백리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속삭이듯 알려줍니다.

불안, 걱정, 염려들 내려놓고

오늘 이 순간을 그져 열씸히 살아달라고요.


나에게 모처럼 주어진 하루는 이만하면 됐겠죠.

운무산의 7월은 정말로 운무운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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