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모든 소중함에는 책임이 따른다

by 이하호

올해 2월 한창 독립과 경제적 절약 사이에서 갈등하던 무렵이었다. 이제 졸업을 앞 둔 소위 말하는 '취준생'이라 모아둔 돈은 없었고 그러나 해가 거듭할수록 부모님과 한 집에 살며 생각과 가치관을 강요받는 것을 견디는 것은 여간 숨막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딱히 뚜렷한 꿈도 없고 남들을 따라 흘러가듯 시류에 편승하는 것은 싫었던 고집스런 20대 후반, 나는 갑자기 집을 얻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혼자 살 수 있는 집을 얻게 되었다. 항상 간절히 꿈꾸고 매분 매초는 아니더라도 내 머릿속 어딘가 혹은 가슴속 어딘가에 넣어두고 잊지만 않는다면 이루어진다는 믿음(그렇지만 자주 잊고 지내는)이 나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모네가 가진 허름한 빌라의 세입자가 이사가 가게 되어 빈 자리가 생기게 된 것 이었다. 무작정 이때다 싶어 부모님을 설득해 나간다고 했다. 반대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독립을 할테니 나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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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시작한 혼자살이

부모님을 떠나 호주에서 친구들과 같이 아파트를 쉐어하며 살던 이후로 다시 찾은 나의 집이었다. 내가 조금 일을 미루어도 조금 더러워도 나태해져도 어머니의 귀따가운 잔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고, 아버지의 근심어린 걱정도 날아오지 않는 오롯한 나의 집. 그렇지만 비싼 보증금과 월세를 들여 가는 집은 아니었기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곧 이사를 하는 사촌형 내외에게서 받아온 찢어진 소파, 중고 냉장고, 저렴한 가구로 소문난 이케아를 3일 내내 6시간씩 돌아가며 고른 식탁이며 의자들로 집안을 부랴부랴 채웠다. 곰팡내가 나는 벽지도 뜯어 한번도 해보지 못한 페인트 질을 하며 흰 벽으로 칠하고 식물도 들이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꼬박 2달을 서서히 내 집이라 생각하며 꾸며 나갔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집 모양새가 갖추어졌다. 그때는 보람이 느껴졌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그것이 정말 독립이었을까라는 씁쓸한 웃음이 난다. 코로나라는 역병으로 일자리가 구하기 어려운 무렵 또 배워보고싶은 것이 있다며 혼자 시간을 가지겠다고 떼를 쓰던 나는 혼자 산다는 단 꿈에 그저 젖어 부모님의 그늘 밑에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있다. 그러나 몸만 따로 나와 부모님 등에 얹혀사는 것 같은 나를 채찍질 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일자리야 다시 구하면 될 것이고 빚진 것은 갚아 나가면 된다. 나의 처지를 비관하고 흠 잡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무턱대고 집을 나온 것 또한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직장을 구하고서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았을 것이다. 혹은 아직도 독립을 할지 말지 꾸물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거나 둘 중 하나 였을 것이다. 혼자 라는 단 꿈에 젖어 있던 몇 달이 지나곤 혼자 산다는 것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나'로서 혼자 오롯이 생각하고 무얼 하고 싶은지 어떻게 내 삶을 꾸리고 정의해나갈지에 대해선 '독립'이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혼자 라는 단어가 주는 외로움 또한 그 속에서 나타나는 고뇌 고민 갈등 등은 나를 굳히는 데 한 몫 했다. 혼자이지 않았다면 이 고요한 밤속에서 글을 쓰는 '나' 또한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시 고쳐 나가면 된다. 나의 '독립'은 매우 불완전하게 시작했지만 옳은 결정이었다고 믿는다. 매 순간 시작부터 옳으며 화려한 결정이란 드물다. 모든 위대한 선택들은 거대한 반대를 무릎쓰고 나왔기에 위대해 졌거나 불가능한 것들을 해냈기 때문에 위대한 선택이 되었다. 나의 독립이 불완전했다면 그것이 갚지고 옳은 선택이었다고 증명하는 과정도 나의 몫이며 책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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