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할수록 커지는 것들, 마주할수록 쉬워지는 것들
2020년 유난히 긴 장마가 덮친 여름, 장마뿐 아니라 태풍도 수차례 코로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래된 집이라 이사 와서부터 곰팡이가 가득 핀 벽지를 다 뜯어낸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그 사실도 잊은 채 하루하루를 보낼 무렵 싱크대 하수구며 에어컨도 틀지 않은 채 내버려 둔 옷 방의 모든 옷, 욕실까지 곰팡가 다 덮었다. 무심코 있을 땐 몰랐다가 옷에 가득 핀 곰팡이를 보며 아차! 하며 부랴부랴 옷들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없는 잔고에서 돈을 빼 제습기와 곰팡이 제거제를 구매했다. 옷 방에도 에어컨을 틀어주었으며 곰팡이 제거제로 집안 곳곳을 뿌려두니 곰팡이는 금세 사라졌다. 물론 또 자라나겠지만. 혼자 살기 이전엔 많은 것들이 내버려 두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지나갔다. 내가 보지 못한 어머니의 청소, 아버지의 전구 교체가 집을 불이 꺼지지 않으며 곰팡이와 벌레가 없는 깔끔한 집으로 소리 없이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이제는 곰팡이를 보고 소리를 질러본 들, 발을 동동 굴려본 들 곰팡이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다. '벽지를 다 뜯어야 하나?' , '매일 대청소를 하고 긁개로 곰팡이들을 긁어내어야 하나? '여름마다 이 전쟁을 치러야 하나?'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뒤덮었다. 하지만 의외로 해답은 간단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옷을 온통 뒤덮은 곰팡이들을 세탁해 털어내고, 제거제를 사서 뿌려놓고 습기를 조절하고 단지 그게 끝이었다. 그 뒤로 곰팡이는 눈에 띄게 줄었다. 여전히 습한 하수구에서 조금 생겨나긴 하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는 무렵이 되니 이제 바퀴벌레가 집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해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유난히 벌레를 싫어하는 난데 바퀴벌레라니.. 죽을 때 알을 낳는다더라, 바퀴벌레 박멸이 그렇게 어렵다더라 등등의 이야기가 다시금 정말 혼자 살고 싶은지를 되묻게 했다. 그렇게 몸서리친 시간도 잠시 금세 뿌려두는 바퀴벌레약을 구매했다. 먹이 유인으로 바퀴가 다른 바퀴들까지 죽인다나 뭐라나. 그 뒤로 바퀴벌레의 사체는 보여도 살아있는 바퀴벌레는 없어졌다. 드디어 다시 '살만한' 집이 되었다.
곰팡이와 바퀴벌레로 조금은 험난한 여름을 보냈지만 이렇게 내게 글감이 될 만큼 경험을 주기도 했다. 사소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 때로는 그 문제들의 본질적 크기보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나 공포감이 더욱 우리를 사로잡는다. 집에 곰팡이가 온통 핀 숨 막히는 공간의 상상이, 다리가 수십 개 달려 바닥을 타고 달리는 거무튀튀한 벌레 떼의 상상이 꿈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상상력과 생김새에서 오는 혐오감을 제외하고 본다면 균류의 일부 곰팡이, 벌레 중의 하나 바퀴벌레 , 약을 통해 퇴치나 박멸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적용해본다면 별 일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곰팡이와 바퀴벌레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막연한 어려움의 크기에 압도되어 시작도 못하고 제쳐두기보다 어떻게 쉽게 시작하고 다가가 볼 지를 생각하고 작게 쪼게 본다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 일기를 자주 쓰던 나이지만 항상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는 싫어 나만의 비밀장소, 노트에 꼭꼭 숨기며 기록을 해왔다. 가끔 늦은 새벽 맥주 한 잔을 하면 주변 친구들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사는지 하고픈 말들이 산더미 같을 때가 많지만 어디에 쏟을지 혹은 누구에게를 몰라 그날의 생각을 잠자리까지 가져가던 나였다. '작가'라는 것은 단지 '글쓴이'의 다른 표현 일 뿐일 텐데 '작가라면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느 책이 그렇듯 200페이지 이상의 말을 할 줄 알아야겠지.' '맞춤법은 물론 언어적 표현도 완벽해야 하겠지.'세상을 통찰력 있게 분석하며 냉철한 비판을 할 줄 아는 비평가이기도 해야겠지' 등의 작가라 하면 떠올리는 모든 이상적 수식어를 가져다 붙인 체, 나를 별 볼 일 없는 방구석 일기 쟁이로 치부해왔다. 어느덧 일기를 써온지 5년 2권의 두꺼운 노트가 쌓여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작가'가 되려면 좋은 글을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쓰려면 일단 글을 써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글이 좋은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선 사람들이 읽어주어야 한다. 난 지금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내 글을 이렇게 써가고 있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곳에 포스팅을 하고 있다. 적어도 곰팡이 제거제와 바퀴벌레 퇴치약을 구매한 셈은 아닐까. 이제 곳곳에 잘 뿌려두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꾸준히 쓰고 사람들을 기다리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