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오늘은 한참 동안 내버려 두었던 전등을 갈았다.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전등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하더니 부엌 쪽 전등이 나가버렸다. 어두운 곳에서 밥을 먹는 건 불편했다. 음식의 색깔도 퇴색되어 보이고 눈도 괜스레 어두침침해진 것 같고 무엇보다 어두운 걸 좋아하지 않는 나였다. 근데 왜 전등을 한참 동안 내버려 두었을까. 전등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것이었다. 전등뿐만 아니라 배수구가 막힌다던지 커튼 봉을 새로 단다던지 현관문의 도어락을 교체한다던지 등의 궂은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래서 항상 내버려 두게 되었다. 어쩔 줄 모른 체. 새 집으로 이사 올 때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왔다. 그래서 불편한 걸 알면서도 어쩔 줄 모르는 전구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무심코 연 벽장에서 여분의 전등이 있는 걸 알고 두꺼비 집을 내린 채 장갑을 끼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다. 참 이상했다. 두꺼비집을 내리고 장갑을 끼고 전구를 해체 하고 교체하는 데는 한 시간이 체 걸리지 않는다. 근데 무엇이 수개월을 걸리도록 만들었을까. 내 마음이었다. '전구를 교체하는 건 위험할 거야.' '행여 전기에 감전되면 어떡해' 등의 수많은 변명들. 심지어 나의 집은 전구 가게가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얼마 전 읽었던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현 상황에서 이것 때문에 하지 못 해라는 말들은 모두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는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 내기 위한 변명이라고 말한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도, 집안 환경이 어려운 사람도 모두 과거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과거의 이유로 나에게 제약을 걸어두는 것이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전하는 것보다 더 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
호주 사람들은 집안 수리나 정원 가꾸기 등을 한국 사람들보다는 비교적 잘하는 편이다. 호주에서는 인건비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전기 기술자나 정원사를 한 번 부르는 데는 한국과 비교해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그렇다면 답은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호주로 이민을 가 투어를 담당하시는 분이 자기도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은 웬만한 일들은 혼자 다 해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처음에 내가 서툴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만 인정한다면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해진다. '직업'이라는 이름하에 많은 일들을 우리는 '전문가'라 취급하고 우리가 못하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바리스타, 커피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보며 괜찮은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있다면 바리스타라는 이 낯선 외국어가 당신일지도 모른다. 지금 주방에서 가족의 누군가가 요리를 하고 있다면, 요리사라는 말을 붙이는 게 이상한가. 비약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은 해보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다. 어렵게 생각하는 건 내 마음이다.'이 걸 해보면 어떨까'라는 마음에서 하나 둘 시작한 것이 쌓이고 기술이 되고 나의 것이 된다. 지금 당장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행동하라. 다만 행동하기 전에 그것을 하기 위해 가장 작게 손쉽게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고 행동하라. 화가가 되고 싶다면 그림을 그려보기 위해 펜을 잡고 도화지에 그려보기를 시작하고 사진사가 되고 싶다면 당장 무언가를 찍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전기기사가 되기는 어려울 지라도 전등을 가는 건 쉽다. 전기기사도 전등을 갈아보기 전엔 전등을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보아야 안다. 시력이 나빠 된장을 똥이라 볼 수도 있고 똥이라 생각했던 것이 찌그러진 초콜릿 과자인 줄은 먹어보아야 안다. 너무도 당연한 것들도 몸소 겪어보아야 안다. 겁먹지 말고 쉽게 시작하자. 글이라곤 일기밖에 써본 적 없는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Gelgas Airlangga 님의 사진, 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