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성 Sep 30. 2015

#16.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할 수 있나

{임신을 위한 힐링] #16

열흘 전.

피곤하다며 쇼파에 딱 붙어있는 남편을 침대로 끌고와 거의 억지로 했다. 

요즘 들어 남편은 관계 도중 발기가 풀어지는 때가 잦다.남편은 그래서 관계를 자꾸 피하는 듯 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남편이 사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느낌 없이, 흥분 없이, 그렇게 숙제하듯이 의무적으로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참 비참하고 자존심 상한다. 

   

나흘 전. 

남편이 술을 한 잔 하고 들어오더니 뭔 생각을 하며 들어왔는지, 하여간 정말 오랫만에 치근덕거렸다. 

하지만 남편을 뿌리쳤다. 이미 배란이 된 이후이기에 혹시라도 착상에 방해가 될까 걱정되었다.   

가슴이 단단해지고 예민해지고, 꼭 감기 증상처럼 몸이 아팠었다. 혹시나 이것이 임신증상이 아닐까 싶었다. 

생리는 나오지 않고 속옷에 살짝 비치는 출혈이 있었다. 이것은 혹시 착상혈이 아닐까 싶었다. 

생리예정일은 나흘이나 남았건만 자꾸만 임신테스트기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그동안 한 줄을 보며 얼마나 많이 힘들어했었던가. 또 그 바보 같은 짓을 하게 될까 두렵다. 

이제 테스트기도 몇 개 남지 않았다.


어제. 

결국 임신테스트를 해봤다. 

역시나 한 줄. 

5분마다 몇 번씩 다시 보았다. 희미하게 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2시간이 지난 뒤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테스트기를 다시 꺼내보았다. 분명히 연하게 한 줄이 더 보이는 것 같은데... 

네이버 카페를 뒤졌다. 증상만으로는 임신여부를 알 수 없다는 얘기, 아주 초기에는 소변 테스트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얘기, 아침 첫 소변으로 해야만 테스트기에 반응이 온다는 얘기, 테스트가 불량인 경우도 많다는 얘기...

아직 가슴에 단단한 느낌은 남아 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초체온계를 입에 물었다.

어제보다 체온이 떨어졌다. 

후우...


분하고 억울하다. 

내가 정말 임신할 수 있을까.


삼촌은 스타벅스가 좋다고 한다.

스타벅스의 커피가 좋은 게 아니라 스타벅스의 음악이 좋단다.  


선영 : 삼촌과 앉아서 얘기하다보면 제가 꼭 철학관에 앉아 있는 거 같아요.

삼촌 : 하하, 그러니. 오늘은 잠재의식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자,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해봐.


삼촌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빙긋 웃었다.


삼촌 : 이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자, 그럼 심장을 빨리 뛰게 해봐.

선영 : 네? 심장을 어떻게 빨리 뛰게 해요...


삼촌 : 그렇지? 그건 맘대로 안돼지? 왜 안될까? 다 자기 몸인데.

선영 : 뭐,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삼촌 : 하하, 조물주는 그것에 대한 결정을 그렇게 내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손가락은 우리 눈에 보이지? 그러니까 자기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분명히 믿어진다.

그러나 심장은 안 보이지? 그러니 자기가 심장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은 생기지 않는 거 아닐까? 눈으로 볼 수 없는 내부 장기, 조직, 세포들의 움직임은 우리의 의지대로는 움직이지는 않는다.


하긴 나는 내 맘대로 위장도 움직일 수 없고, 대장도 움직일 수 없다. 갑자기 생물 시간에 배웠던 용어가 생각났다.


선영 : 삼촌, 몸 속의 내장은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요?

삼촌 : 그래, 자율신경이라는 용어가 있지. 자신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신경 체계가 아니라, 의지와 상관 없이 저절로 알아서 움직이는 신경 체계라는 뜻이지. 그런데 이 용어 역시 의식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야. 심장도 의식이 움직이고 있어. 다만 우리가 의식할 수 없을 뿐이야. 우리의 의식에는 의식할 수 있는 의식이 있고, 의식할 수 없는 의식이 있어. 의식할 수 있는 의식은 표면의식이라고 하고, 의식할 수 없는 의식을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이라고 부르지. 들어 본 말이지?


선영 : 삼촌, 오늘은 제가 정신과에 와있는 듯한 느낌인데요?

삼촌 : 하하, 하긴 삼촌이 중학생 때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때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지. 왜 좀 따분하냐?


선영 : 아뇨, 전혀 아니에요. 재미있어요. 제 마음을 더듬는 느낌이랄까요? 저 자신을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삼촌 : 그래, 아주 좋은 느낌이다. 꼭 그렇게 될 거다. 결국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될 거다.



삼촌은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삼촌 : 우리가 볼 수 없는 몸 속의 움직임들은 잠재의식이 담당하고 있어. 잠재의식이 자율신경계통을 다스리고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 몸 속에서는 손발을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단다. 밥 먹고 나서 그냥 누워서 시간을 보내봐라.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도 다시 배고파진다. 누워 있는 동안 손발은 별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몸 속에서는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었던 거야. 그러나 이런 몸 속 움직임들은 네가 의식하면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잠재된 의식이 한 일이지.


선영 : 그럼 호르몬을 만들고, 배란을 시키고, 그러는 것도 잠재의식이 하는 일인가요?

삼촌 : 그렇지, 그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그렇다면 잠재의식이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선영 : 그럼 잠재의식을 고치면 제 몸 속도 고쳐지겠네요.

삼촌 : 오케이, 바로 그거지. 잠재의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가 된단다.


선영 : 삼촌, 그럼 어떻게 해야 제 잠재의식을 바꿀 수 있죠?

삼촌 : 오, 오늘은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나오는 걸? 좋아, 함께 풀어가보자.

이전 글 보기  |   다음 글 보기

[임신을 위한 힐링] 목차 보기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연유 - 필독


이재성은 지금 여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5. 나는 부를 노래가 하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