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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성 Nov 30. 2015

#26. 감정 위로 날아올라

[임신을 위한 힐링]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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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이가 임신을 했다. 내 친동생.

동생이 임신을 했건만 이토록 속이 상하고 화가 나는 것은 무엇인가.

친구나 선배가 임신했다고 들었을 때도 오늘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이 질투심은 또 뭔가. 동생과 경쟁이라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다 찢어버리고, 다 던져버리고 싶다.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오늘 저녁에도 나는 남편을 꼴보기 싫은 눈빛으로 보게 되겠지.

자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 이 남자.


삼촌과 마주 앉았다.


선영 : 삼촌... 미영이가 임신했대요. 제가 기뻐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눈물이 고였다.

삼촌이 묵묵히 손수건을 건넸다.


삼촌 : 힘들지... 참지 말고 쏟아내렴.


삼촌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더 북받쳤다.


선영 : 왜 저만 안되는 거죠. 미영이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걔는 그렇게 쉽게 갖는데, 저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거죠.


삼촌 : ......


선영 : 제가 너무 초라하네요. 동생이 미운 건 또 뭐죠. 이런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요. 정말...


삼촌 : ......


선영 : 저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들도 다 애가 있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하는 나를 삼촌은 묵묵히 받아주었다.


선영 : 저는 정말 안되나봐요. 나이가 이제 서른 다섯이 넘었어요. 고령이라잖아요. 더 늦기 전에 시험관 하라고 해서 그것도 몇 번 해봤잖아요. 한 살 한 살 나이만 먹어가요. 이러다가 금방 폐경이 되버리면 어쩌죠? 이대로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 같아요. 너무 불안해요. 다 포기해버리고 싶어요. 하지만 포기가 안돼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삼촌 앞에서 울먹이며 신세를 한탄했다.


삼촌 : 선영아, 내가 너였어도, 나도 불안하고 힘들었을 거야. 힘들지, 왜 안 힘들겠니.


삼촌이 정말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선영 : 고마워요, 삼촌. 근데 좀 창피하네요.


삼촌 : 창피하긴 이 녀석아. 네 맘 알아. 그래도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을 쏟아내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선영 : 그렇긴 해요. 하지만 삼촌, 전 계속 이런 마음이에요. 그동안 삼촌을 몇 번 만나면서 제 멘탈이 좀 강해지는가 싶었는데, 여지 없이 무너지네요.


삼촌 : 선영아, 무너진 게 아냐. 잠깐 삐끗하는 거지. 우리 삶이 평지는 아냐. 그러니 삐끗하기도 하는 거지. 다 그렇지 뭐. 우리가 뭐 도사냐...


한숨을 푹 쉬었다.


선영 : 이대로 정말 영영 임신이 안될 거 같아서 힘들어요.

삼촌 : 그런 기분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니?


선영 : 이것 때문에 아무 것도 못 할 때가 있어요. 사람들하고 말도 하기 싫고,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고. 남편한테 짜증내고, 엄마한테도 막 화낼 때도 있어요.

삼촌 : 그 힘든 마음을 숫자로 한 번 헤아려보자.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을 0 이라 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을 10 이라 한다면, 지금 너는 어느 정도 힘드니?


선영 : 음, 한 8 정도요?   

삼촌 : 그래, 힘들구나. 그럴 때 삼촌은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줄까?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 : 자, 편안하게 앉아볼까. 그리고 눈을 한 번 감아봐.


눈을 감았다.


삼촌 : 네 마음의 눈으로 코끝을 봐봐. 숨을 쉬는 동안 코끝으로 숨이 들락거리는 것이 느껴질 거야.


코를 통해 공기가 들락거리는 것을 느껴졌다.


삼촌 : 이제 천천히 심호흡을 세 번 해볼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편안하게 내쉬어보자. 그렇지 그렇게.


나는 삼촌의 말을 따라 눈을 감고 크게 그리고 천천히 세 번의 심호흡을 했다.


삼촌 : 몸의 긴장을 풀어볼까? 이마와 미간의 힘을 빼고... 입술은 다문 채로 턱에 힘도 빼보자. 그렇지 턱에 힘을 빼니 윗니와 아랫니가 살짝 떨어진다. 어깨도 편안하게 늘어뜨리고, 등과 가슴, 허리와 배에도 힘을 빼고, 팔꿈치와 손목, 손가락에도 힘을 빼자. 엉덩이와 무릎, 발목과 발가락까지 편안하게 힘을 빼자.


삼촌의 말을 따라 편안하게 온 몸의 긴장감을 풀었다.  


삼촌 :  아주 좋아. 자, 이제 한 번 상상을 해보자. 네가 너의 몸에서 빠져나와서 공중으로 붕 뜬다고 상상하는 거야. 그리고는 지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너를 네가 이 방의 공중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고 상상해봐. 편하게 앉아 있는 너의 모습을 떠올리면 돼.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삼촌 : 그렇게 너를 네가 바라보니 선영이의 마음은 어떤 상태이니?

선영 : 슬프고 힘들어요.  


삼촌 : 그래 힘들지... 조금만 더 네 마음을 바라보렴.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리고 네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름표를 한 번 붙여볼래?


그저 아프고 복잡했던 심경에 이름표가 하나씩 붙었다.

슬픔, 분노, 억울, 열등감, 죄책감, 무기력함, 패배감, 두려움...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삼촌 : 그래, 실패감과 좌절감을 느끼면서 한 편으론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고.

사실은 마음 속에 두려움이 가장 큰 거지. 이대로 임신이 안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삼촌이 내 마음을 읽은 듯했다.


삼촌 : 자, 이제 다시 심호흡을 한 번만 해볼까?

다시 마음의 눈으로 코끝을 봐. 숨이 들어왔다 나갔다 할 때 코끝으로 숨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을 느껴봐.

자,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삼촌의 말을 따라 코끝으로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한 번의 심호흡을 마쳤다.


삼촌 : 자, 이제 네가 수직으로 부웅 떠올라서 건물 옥상만큼 올라갔다고 상상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너를 봐봐. 네가 작게 보이겠지?


그렇게 상상했다.


삼촌 : 자, 이제 네가 63빌딩 높이만큼 올라갔다고 상상해봐. 너는 얼마만해 보이니?

선영 : 개미만해 보여요.



삼촌 : 이제 네가 비행기 높이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해봐. 아주 높아. 구름 위로 올라간 거야. 거기서 너를 보니 네가 얼마만하니?

선영 : 안보여요. 너무 작아서.



삼촌 : 이제 네가 대기권을 뚫고, 중력의 영향도 없는 우주 공간으로 날아올랐다고 상상해봐. 지구가 공 만해질 때까지 멀리 올라가봐. 거기서 너를 봐봐. 보이니?

선영 : 보이지 않아요. 지구도 작게 보이는 걸요.



나는 어느새 삼촌의 말을 따라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삼촌 : 좋아. 네 모습은 거기서 보이지도 않겠구나. 이제 거기서 삼촌의 말을 한 번 따라해볼래.


삼촌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따라했다.


삼촌 : 나는 비록

선영 : 나는 비록


삼촌 : 임신이 안될까봐 두렵지만

선영 : 임신이 안될까봐 두렵지만


삼촌 :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선영 :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삼촌 :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선영 :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나는 비록 임신이 안될까봐 두렵지만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삼촌 : 우주에서 말했지만 너의 그 사랑의 진동이 지금 너에게 전달되었단다.

선영아, 괜찮아. 지금 그대로, 그래도 돼.

괜찮아. 지금 이대로. 그래도 돼.


"괜찮아. 지금 이대로. 그래도 돼."

이 음성이 마치 하늘에서 아득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 나의 마음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고 걱정스럽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삼촌 : 이제 눈을 떠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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