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위한 힐링]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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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 : 삼촌, 뭐죠 이거? 제가 뭘 한 거죠? 왜 마음이 편해지는 거죠?
삼촌 : 뭘 하긴, 하늘에 갔다 온 거지.
삼촌은 검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삼촌 : 감정 다스리는 법을 배워보기로 했었잖니. 방금 한 것도 한 가지 방법이야.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붕 떠오르는 상상을 했었다. 이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인가?
선영 : 그래요, 그런 것 같은데요, 삼촌이 방금 저에게 시키셨던 거, 이게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설명 좀 해주세요.
삼촌 : 언제 내가 시켰었니, 나는 너를 가이드했을 뿐이야.
선영 : 네, 하여간, 그러니깐요.
삼촌 : 아, 이 비밀을 너에게 이렇게 쉽게 알려줘도 되나?
선영 : 얼른요, 삼촌.
삼촌 : 너 이거 간단하다고 우습게 생각하지마. 삼촌은 이거 되게 비싸게 배운 거야. 많은 시간 돌고 돌아서. 쉽지만 쎈 거야.
선영 : 음, 오늘 우리 삼촌 왜 이러시지.
삼촌 : 좋아, 잘 들어.
삼촌은 내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설명을 시작했다.
삼촌 :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의 눈으로 코끝을 보면 말야, 너의 의식이 그 쪽으로 간단다. 괴로운 생각에 집중되어 있던 너의 의식을 잠시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가 일어나는 곳으로 돌리는 거지. 숨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에.
심호흡을 세 번 하는 시간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아주 강력한 시간이야. 삽시간에 너의 의식이 코끝으로 향하게 되니까 말야.
나는 삼촌의 설명에 집중했다.
삼촌 : 그리고는 몸의 긴장을 푼 거야. 너의 의식은 느린 듯 빠르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향하면서 편안하게 긴장을 풀고 이완 속으로 들어갔단다. 긴장을 풀고 느슨해져야 너의 감정으로부터 살짝 떨어질 수 있게 된단다. 몸과 마음에 갭을 만드는 것이라고나 할까.
너의 미간에 있던 주름이 없어졌었고, 너의 턱은 마치 멍 때리는 사람처럼 아래로 살짝 떨어졌었지.
내가 그랬었나보다.
삼촌 : 그리고는 너의 감정과 너를 분리해봤지.
선영 : 감정과 저를 분리시킨다고요?
삼촌 :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화 나거나, 초조하거나, 불안할 때, 그 감정이 강해지면 말야, 감정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마치 레슬링 선수가 상대를 밑에 깔고 꽉 눌러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처럼 감정이 너를 그렇게 하는 것 같지.
삼촌은 손동작을 취하여 레슬링 제스쳐를 하다가 잠시 말을 중단했다.
삼촌은 내 눈을 보며 다시 입을 뗐다.
삼촌 : 그러나 그건 환상이야.
감정이 너를 짓누르고 사로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환상이야.
그것은 진실이 아니야.
감정은 네가 느끼는 것이야.
감정이 너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삼촌의 말이 마치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삼촌 : 다시 말할께. 오해하지마.
네가 힘들고, 슬프고, 우울한 게 환상이라는 뜻이 아니야.
그건 진실이지. 네가 그렇게 느끼면 그게 진실이야.
그러나 그 감정이 너 자체는 아니라는 거지.
너는 그 감정을 느끼는 주인이야.
이 얘기는 조금 있다가 마저 해보자.
자, 일단 네가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네가 감정을 관찰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선영 : 감정을 관찰한다고요?
삼촌 : 그래, 네가 네 감정의 관찰자가 되는 거지. 아까 그랬었단다.
맞다. 아까 나는 내 감정을 관찰했었다.
삼촌 :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감정을 분리시켜서 생각해야해.
그래서 상상을 이용한 거야. 상상은 자유야. 그 무엇도 상상을 제한할 수는 없지.
상상으로 공중에 떠봤어.
감정을 느끼는 자리에서 조금 떨어져서 감정을 관찰하는 자리로 가본 거지.
눈을 감고 상상하는 것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너의 생각에너지는 어느새 그곳에 위치하게 된단다.
생각은 창조한단다.
생각은 창조한다
생각은 창조한다. 지난 번에도 삼촌에게 들었던 이야기 같다.
삼촌 : 어땠니? 공중에 뜨는 상상이 잘 되든?
선영 : 네, 이런 상상은 처음 해본 것 같은데요, 그냥 삼촌이 하라는대로 마음 속에 그런 모습을 떠올려봤어요.
삼촌 : 그랬구나. 상상(想像)은 말뜻 그대로 생각으로 그려보는 거야. 생각을 그림으로 잘 떠올리는 사람이 있고, 글로 잘 떠올리는 사람이 있고, 또 소리로 잘 떠올리는 사람이 있어. 너는 디자인을 공부했던 사람이어서 아마도 상상을 시각화하는 것이 잘 되나보다.
선영 : 감정을 관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나요?
삼촌 : 그것은 일종의 각성이라고 하고 싶구나. 다른 시각을 갖는 것이지.
감정에 파묻혀 있을 때는 그 감정이 보이지를 않아. 그냥 그 감정에 휘둘릴 뿐이지.
그러나 자리를 바꾸면 감정을 관찰할 수 있게 돼. '관찰'이라는 행위가 좀 시각적인 표현이라서 언어의 한계가 있기는 하구나. 하여간, 느끼는 것은 '안'에서 되는 것이라면, 관찰한다는 것은 '밖'으로 나와서 하는 것이지.
너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자고 했었지? 감정에 이름을 붙이려고 시도하면 감정을 조금 더 잘 살펴보게 된단다. 마치 앞에 앉아 있는 너 자신에게로 몸을 굽혀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처럼. 네가 느끼는 그 감정이 과연 어떤 느낌인지, 그 색감이 어떤지, 그 소리는 어떤지, 그 촉감은 어떤지, 심지어 그 냄새까지도 살펴보는 거지.
선영 : 제3자적인 관점에서 저의 감정을 관찰해보는 거군요.
삼촌 : 그렇지. 예컨대 화를 내고 있을 때 말야. 막 집어던지고 싶고 자신의 화를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있어. 화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것처럼. 그런데 이때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화가 난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자신의 화를 관찰하잖아? 그러면 그때부터 화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단다.
너도 아까 비슷했어. 슬픔과 우울에 파묻혀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살짝 생각 에너지의 위치를 이동하고, 슬프고 우울해하는 너를 관찰해본 거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데에서 더 나아가 감정과 분리하고, 감정 위로 올라가 그것을 계속 지켜보잖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잖아? 그러면 그 감정이 점점 약해진단다.
선영 : 음, 그렇군요.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상상은 왜 한 건가요?
삼촌 : 힘든 감정으로 힘들어하던 너를 초월하여 멀리 가본 거지. 그런 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 상상이 잘 되면 말야, 그 감정이 일순간 사라지기도 한단다.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해.
그리고는 너를 향해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용납하는 선언을 한 거야.
기억 나니? 뭐라고 선언했는지?
선영 : 나는 비록 임신이 안될까봐 두렵지만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삼촌 : 그래, 잘 기억하는구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사실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단다.
근데 두려움이 있는 것도 자연스럽지. 아직은 우리 자신을 다 경험해보지 않았고, 지금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으니 두려운 것이 너무 자연스럽잖아. 다 괜찮아. 다 자연스러운 거니까.
All is Good. All is Well all the time.
삼촌은 씩 웃었다.
삼촌 : 선영아, 너의 힘든 정도를 다시 수치로 매겨볼래?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이 0 이라 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이 10 이라 한다면, 지금은 몇 정도인 것 같니?
선영 : 음, 한 2 정도? 물론 임신이 잘 안되고 있어서 속상하기는 하지만, 뭐 그리 힘든 느낌은 아니네요.
삼촌 : 기분이 훨씬 나아졌구나. 아까는 네가 8이라고 했었어. 기억나니? 이렇게 숫자로 네 감정의 정도를 생각해보면 아주 쓸만하단다.
이재성은 지금 여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