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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5. 2020

문경 누이집에서, 달개비 이야기

오늘은 달개비 얘기를 해 보려고요.

어제 사과솎기를 끝내고 꿀 같은 낮잠을 잔 뒤, 오전 소감을 정리하려다 달개비가 생각났습니다. 보통은 자줏빛인데, 흰 달개비가 있더군요. 사진을 찍으려 앞뜰로 나갔더니 모두 입을 닫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


자주달개비  꽃은 오후에는 시들어 버린답니다. 나팔꽃처럼 오전에 피었다가 한낮에 시들어 버리죠. 그래서  달개비꽃을 보려면 아침에 둘러보아야 합니다. 누이의 앞뜰에는 자줏빛 달개비뿐 아니라 흰 달개비도 있습니다. 그래서 소개하려고요.

자주달개비는 방사선 지표 식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방사선 노출에 따라 꽃과 수술의 색상이 변하는 성질이 있어, 몇 년 전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 부근에도 심어져 있고,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 부근에도 많이 심고 있답니다. 피폭되면 수술 색깔이 흰색 또는 붉은색으로 변하여 방사선 노출 여부를 알게 된다고 하니 기특한 꽃이죠. 그렇다면 앞뜰에 핀 흰 달개비는 방사선에 노출된 꽃일까요? 아니겠죠. 흐흐흐. 아침에 찍은 물을 머금은 흰 달개비를 보세요. 수술 색깔이 자주색이고 노란 암술이 달려 있죠. 마음 놓고 감상해도 됩니다.


자주달개비, 흰 달개비는 양달개비랍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관상용으로 많이 심죠. 풀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달개비와는  다른 품종이랍니다. 우선 꽃의 생김새와 색상이 다릅니다. 토종 달개비는 파란색입니다. 꽃의 모양과 잎의 생김새가 닭의 벼슬과 닮았다고 해서 닭의 장풀이라고 불리는 토종 달개비는 7, 8월에 푸른 꽃을 피우고 9, 10월에 열매를 맺습니다. 양달개비는 늦봄부터 피고 지기를 반복하다가 늦가을에 무성한 잎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꽃말도 다릅니다. 자주달개비는 '짧은 즐거움, 외로운 추억'이지만 토종 달개비의 꽃말은 '순간의 즐거움, 소야곡'입니다.

위는 자주달개비, 아래는 토종달개비. 모양과 색이 완전히 다르죠.

어린 토종 달개비 잎은 먹을 수도 있고, 해열  효과도 크고 당뇨병에도 좋답니다. 토종 달개비의 색깔은 원래 푸른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가난한 농부 부부의 얘기입니다. 가난한 농부와 결혼한 어여쁜 여인은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알뜰히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부부는 열심히 일했지만 끼니를 잇기가 힘들었고, 결국 일하다 지친 남편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을 자주 보고, 음식을 먹어도 몸이 말라 가는 소갈병에 걸린 남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약을 사줄 수 없었습니다. 돈을 모아 약을 사서 달여 먹이면 남편이 건강을 조금 회복되는 듯싶었으나, 머리칼을 잘라 약을 마련하는 것이 아내의 마지막 수단이었습니다. 가난해서 더 이상 약을 구매할 수 없었던 거죠. 돈이 없는 아내에게 의원은 약을  줄 테니 무엇을 주겠냐는 음큼한 제안을 하게 됩니다. 당황한 아내는 방법이 없어 울다가 지쳐 잠에 빠지고, 새벽녘에 한 도인이 꿈에 나타나서 집 뜰에 있는 붉은 꽃을 피우는 달개비라는 풀을 베어다 삶아 먹으면 병이 낫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하고 사라집니다. 다음 날부터 달개비를 달여 먹고 남편은 조금씩 건강에서 회복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앞뜰, 동네, 앞산 뒷산의 모든 달개비를 달여 먹어  더 이상 달개비를 찾을 수가 없게 되자, 남편은 다시 병석에 눕게 되고 마침내 죽어 버리게 되죠. 아내는 달개비가 무성하던 앞뜰에 앉아 몇 날 며칠을 통곡하다가 꽃이 시들듯 죽어 버립니다. 다음 해 아내가 죽은 그 자리에 달개비가 자라났는데, 붉은색이 아닌 푸른 꽃을 피웠습니다. 그 후로는 붉은 꽃 달개비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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