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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4. 2020

문경 누이집에서, 만사는 때가 있는 법

작은 배움터, 두 번째 이야기

오전 사과 솎아내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점심으로 방아잎으로 문경 약돌 삼겹살을 싸 먹고 나니 노곤해지더군요. 누이집 건넌방,  황토방에서 낮잠을 잤습니다.

 - 방아잎과 삼겹살은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우연히 시도했는데 방아잎의 향긋한 냄새가 삼겹살의 맛을 더해 줍니다. 삼겹살을 구워 먹고자 한다면 상추, 깻잎 외에 반드시 방아잎도 같이 구매해 보세요. 색다른 삼겹살 맛의 세계를 접하게 될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니 누이 내외가 보이지 않더군요. 오전 농사일이 가뿐했던 누이는 이웃집에 마실 가고, 자형은 농약 사러 문경 시내에 간 모양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무서운 겁니다. 일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근육이 생겨서 쉽게 지치지 않게 되는 모양입니다.


오후 4시쯤에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뒷밭에 빨간 고추와 감자를 수확하러 갔습니다. 지난봄에 직접 심은 고추가 자라 붉은 고추가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빨간 고추를 수확하는 재미가 솔솔 했습니다.

감자는 이미 수확 시기가 지나 줄기가 마르고 흩어져 있어서 썩지 않았나 걱정이 되었는데, 굵은 알이 주렁주렁 달려 나와서 기뻤습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은 모양입니다.


감자 두 고랑을 캐고 나니 콩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확시기가 지나 줄기가 마르고 콩깍지가 터지고 흰 강낭콩에 싹이 나기 시작했더군요. 콩나무를 뿌리째  뽑아 수레를 끌고 와서 누이집으로 옮겼습니다. 방석을 깔고 앉아 콩깍지를 콩대에서 훑어 내렸습니다. 콩깍지만 분리해서 바짝  말린 다음, 콩을 털면 흰 강낭콩을 얻게 되겠지요. 그때에 누이에게 흰 강낭콩을 좀 보내 달라고 부탁하려고요.

흰 강낭콩은 귀한 편입니다. 흰 강낭콩에는 파세올라민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탄수화물의 체내 흡수를 방해한답니다.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 다이어트 재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코로나로 먹기만 하고 운동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더니만 배가 나오고  꺼질 줄 모르더군요. 확찐 자가 되었습니다. 흰 강낭콩으로 다이어트 좀 해 보려고요.


정년퇴직 후 누이 내외는 서울에서 문경으로 귀향해서 사과 과수원을 하고 있습니다. 뒤뜰과 앞뜰에 물려받은 밭이 있어 부지런한 누이는 봄에는 가지가지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사서 심습니다. 하지만 사과에 신경 쓰기가 바빠서 다른 작물을 돌보기엔 역부족입니다. 지난봄에는 일손이 부족해서 여러 고랑에 검은 비닐만 씌우고 빈체로 방치되어서, 형님과 내가 와서 재미 삼아 고추를 심고 고구마순을 꽂아 심었습니다.


이번 휴가에 누이집에 와보니 여기저기 수확시기를 넘긴 작물과 채소가 있었습니다.

감자와 흰 강낭콩이 대표적이죠. 그래서 내가 서둘러 수확한 겁니다.


만사는 때와 시기가 있는 법입니다. 뿌려야 할 때가 있고, 수확해야 할 시기가 있습니다. 봄에 씨 뿌리는 자만이 수확할 수 있겠죠. 시기를 놓치면 수확할 것이 없게 됩니다.


예전 해운대 살 때, 일광 근처에 밭을 빌려 주말 농사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8월 초에 총각무 씨앗을 뿌리고 10월 말에 수확해야 합니다. 하지만 처음 짓는 농사라 수확시기를 놓쳤습니다. 10월 중순에 조금 수확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11월 중순에 밭에 갔습니다. 시간이 더 지났으니 커다란 총각무 수확을 기대하면서  밭에 갔더니만, 총각무가 모두 썩어 버렸더군요. 그래서 깨달았죠. 수확도 시기를 맞추어 거두어 들려야 한다는 것을.


부모는 자식을 키우면서,  자녀가 때 깨달아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충실하길 바라게 되죠.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더군요. 누구는 너무 일찍 자신의 길을 확정하려고  하고, 어느 자식은 늦도록 제 갈길을 몰라하니 답답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가 자식농사에 자신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정성을 다해 돕고, 스스로 깨우쳐 자신의 길을 발견하길 빌 뿐이죠.


그런데 본인의 선택은 어떤가요? 제때 씨앗을 뿌리고 있나요? 적당한 시기에 수확할 수 있도록 노력하나요? 뿌린 만큼 수확했나요?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원하는 만큼 거두어들이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시 씨앗을 뿌리고 시작하면 됩니다. 크게  수확할 때가 있겠죠.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사용하는 단어라 하더군요. 흐흐흐

포기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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