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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6. 2020

문경 누이집에서, 멧돼지 피해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마을 언덕배기를 건너 사과밭을 산책하듯 어슬렁거렸습니다.

제법 빗줄기가 굵은데도 고추잠자리가 하늘 높이 날고 있더군요. 비를 피해 호박잎 밑으로라도 피하면 좋으련만, 디 얉은 잠자리 날개가 비에 젖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잠시 비가 그치고, 꽃잎에 맺힌 물방울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벌들이 꿀을 채집하러 나왔네요. 오랜 우중이라 여왕벌 먹이가 부족했는지 벌들이 성급하게 나왔어요. 부지런히 꿀을 모아야 여왕벌도, 일벌도 배을 채울  수 있는 모양입니다.

비가 오면 농부들은 모처럼 쉬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올해는 비가 와도 너무 와서 농부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근심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긴 장마로 잘 가꾸어 놓은 사과에 병충해가 올까 걱정입니다. 요즈음은 잎이 낙엽화 되는 것을 막고, 사과에 침을 놓아 빨갛게 썩어 흉터를 만드는 노린재를 퇴치하고, 과일이 썩어 버리는 탄저병을 예방하는 병충해 예방약을 쳐야 한다네요.


예방이 최고라고 미리 친환경 농약을 치면 그만인데,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약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 아침 비가 오지 않는 틈을 타서 이웃집 아저씨가 약을 쳤는데, 오후에 장대비가 내려 약을 모두 씻어 버렸다네요. 약값 40만 원이 비로  고스란히 날아갔어요.


자형도 약칠 수 있는 기회만 노리면서 대기모드로 들어 갔습니다. 오후 강수량 1mm라는 예보를 보고, 트랙터를 몰고 사과밭에 약치러 갔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트랙터 소리가 들리더군요. 기계가 있어 약을 빨리 치는구나 생각했죠. 트랙터에서 내린 자형이 멧돼지가 들어와서 사과를 다 따먹었다고 흥분하더군요. 그리고 약치는 것보다 울타리 보수가 우선이라면서 읍내로 그물망을 사러 갔습니다. 말로만 듣던 멧돼지 농작물 피해를  직접 목격하게 거죠. 울타리용 망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자, 장대비가 쏟아지더군요. 멧돼지 덕에 약값을 번 셈입니다. 약을 쳤다면 이 비로 고스란히 씻겨나가 다시 쳐야  했을 테니까요.


농사짓는 분을 위해서라도 일기예보는 정확해야겠네요. 그리고 지역별로 세분화되면 더 좋겠죠. 일손이 귀한 농촌에서 비 때문에 여러 번 약을 쳐야 하는 수고도 줄이고, 약값도 낭비가 없어야겠지요. 자형이 그러더군요. 농약방만 돈 번다고.

비가 그치고, 자형 따라 누이와 멧돼지가 들어왔다는 사과밭을 갔습니다. 5년 전에 새로 가꾼 사과밭에는 어른 주먹보다  더 큰 홍로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추석 전에 출하해서 목돈을 마련할 것을 기대했는데, 멧돼지가  망쳐났으니 화가 날 만하죠. 울타리 여러 곳에  멧돼지가 뚫은 흔적이 있더군요. 철망을 다시 치고, 그 자리에 설치된 그물망을 잘라 뚫린 구멍  여러 곳을 깔끔히 보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멧돼지가 기피하는 향으로 만든 멧돼지 퇴치제를 뿌리고 마무리했습니다. 이마와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더군요.  장갑 안쪽으로 이마의 땀을 여러 차례 훔쳐 냈습니다. 기분 좋은 땀이었습니다.

자형과 누이가 울타리를 보수했다면  어두워질 때까지 일해야 했을 겁니다. 통신공사 감독을 했던 옛 경험을 살리고, 일머리를 아는 내가 도우니 빨리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거지요. 이만하면 밥벌이는 하는 거죠. 휴가철 누이집에서 거저 밥을 얻어먹는 것은 아닌 거죠. 흐흐흐


농사일은 끝도 없다죠. 새벽부터 일하고, 햇볕이 강한 한낮에 잠시 쉬었다가 더위가 한풀 꺾이는 오후 늦은 시간에는 다시 들로 논으로, 사과밭으로 일하러 나갑니다. 농부들에게 진정 쉬는 시간이 있을까요?


농사는 정직하다고 하지만, 멧돼지가 망치고, 올해처럼 비가 많이 오면 농작물을 쓸어  버리잖아요. 안타까워 어떻게 하죠.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빵빵한 자연재해 보험을 들던지, 아니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한 후 하늘이 돕기를 기다려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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