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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7. 2020

문경 누이집에서, 이번엔 바람이

여전히 비가 내리고,

더군다나 강한 바람이 동반했다.

누이가 다 키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걱정했다.


바람이 자고,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누이가 사과밭을 둘러보겠다며 집을 나섰다.

손에 떨어진 사과 몇 알을 들고 돌아와서는 뒤뜰의 고추나무가 다 쓰러졌다며 노끈과 지지대를 챙기기 시작했다. 뒷밭에는 고춧대, 가지, 옥수수가 꺾이고 넘어져 있었다.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튼튼한 지지대를 박고, 쓰러진 고춧대를 일으켜 세워 굵은 노끈으로 묶었다. 고춧대를 곧추세우고 다시 기울어지지 않도록 뿌리가 박힌 땅을 밟아 다지면서 문득 바람에 자기 몸도 지키지 못하는 고춧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속 생명체는 저마다의 방어기제가 있어서 고춧대도 적당한 바람쯤은 이겨낼 수 있도록 강한 줄기와 뿌리를 갖추는 것이 마땅하다.  왜 넘어졌을까? 의심스러운 눈으로 원인을 살펴보았다.


적당히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섭리에 맞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가능한 많은 고추를 수확하기 위해 고추나무를 개량한 것이 원인일  것이라고 나름 분석을 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추를 메달았으니 바람에 버티지 못하고 넘어진 것이다. 인간은 고추를 개량해서 모종을 심고 난 뒤 지지대에 모종을 고정한다. 하지만 고추나무가 무성히 자라 많은 고추를 맺을 때  바람이 불면, 고춧대는 바람을 등에 지고 넘어지고 꺾일 수밖에 없겠지. 인간은 다시 지지대를 보강하고 쓰러진 고춧대를 일으켜 세우고... 다행히 고추는 다시 잘 자란다.


사람이 살아가는 법도 그런 것 같다. 생각하는 동물이다 보니 있는 대로 주는 대로가 아니라 더 많은 수확을 바라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투자에 비해 이익을 많이 내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칭송한다. 많이 거두고 많이 버는 사람을 성공했다고 부러워하며, 시기도 한다. 저마다 성공하려고 기를 쓴다. 성공이 무엇이라고...


농부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더 좋은 씨앗을 뿌리고, 양질의 모종을 구해 심고, 잎이 무성해지고 열매를 잘 맺도록 영양분을 공급하고 병충해 예방약을 뿌린다. 그러다 보니 농부는 농작물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자주 농작물을 살펴볼수록 더 좋고 더 많은 결실을 수확하게 되니 소홀할 수 없게 된. 논밭의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얘기가 있듯이 농부는 어느 한순간도 마음 편하게 쉬지 못하고 틈만 나면 농작물을 보러 나간다. 그렇게 끝도 없이 농사일이 이어진다.


고춧대를  세우는 동안 누이는 가지 나무를 일으키고, 옥수숫대를 세우고 북을 돋워주었다. 자연은 재생력이 강해 고추, 가지와 옥수수는 다시 잘 자란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고추는 계속해서 꽃을 피우고, 붉은 고추를 생산할  것이다. 부지런한 누이는 빨간 고추를 꼭지가 노랗게 건조해서 어머니에 저렴하게 넘길 것이고, 그 고춧가루로 아내는 배추 겉절이를 만들어 식탁에 올릴 것이다. 다 함께 먹고살자고 짓는 농사라 기쁜 마음으로 농사일을 돕는다.

누이를 돕고 땀을 흘린 뒤  시원하게 샤워를 다.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기분이다. 도시에서는 여름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해도 미지근한 수돗물은 몸의 열기를 내리지 못한다.  땀만 씻어낼 뿐, 샤워 후 선풍기를 켜서 더워진 물기를 말려야 하는 부산에서의 샤워는 결코 운할 수 없다. 하지만 누이집 수돗물은 너무 시원하다. 뒷산 계곡 근처 수원지에서 각 가정으로 연결된 수돗물은 수량도 풍부하고 물맛도 좋고, 물이 차가워서 샤워할 땐 몸이 오싹해진다. 땀 흘린 뒤 찬물 샤워가 얼마나 시원한지, 자주 샤워하기 위해서라도 땀을 흘리고 싶을 정도다.


자연 속에서 농작물은 바람에 쓰러지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실패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 것.


조금만 더 가면 원하는 보물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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