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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8. 2020

문경 누이집에서, 비는 내리고

문경, 마지막 이야기

비는 내리고

사람들은 하늘이 뚫린 듯 멈추지 않는 비에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며

하루 종일 TV 일기예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산과 들에 비는 내리고

농촌과 어촌에도, 도심에도 비는 내리고

수위 조정을 위해 문을 연 댐에서 흘러내린 황톳물은 강둑을 넘고

넘치는 물 무게를 이기지 못해 터져 버린 도심지 배수구 뚜껑 너머로 솟아오른 빗물은

사람들의 종아리를 핥고 치킨집과 핸드폰 가게 안으로 점령꾼처럼 진격해 들어왔다.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한 주인들은 망연자실 넋을 잃어버린 표정들이다.

내린 비는 농경지를 삼키고 도로를 붕괴시키고

유럽풍 션과 3년 전 뉴질랜드에서 돌아와 션을 운영하는 모녀를 삼켰다.

사람이 거닐던 여의도 국회 둔치 주차장 인근에 잉어와 메기가 헤엄치게 하였다.  


어찌할 건가?  이 낭패를.

자연의 횡포 앞에 인간은 무기력하다.




박 꽃과 넝쿨, 단 3일 만에 손톱만큼 자란 대추와 배추 새싹. 자연의 생명력에 경외감을 갖게 되다.

우중에도 자연 속 생물은 자라고 생명의 탄생은 계속된다.

작은 꽃송이에 불과했던 대추는 어느 틈에 새끼손톱만큼 자랐고

담벼락 위에서 자라는 박은 작은 박을 안은 하얀 암꽃을 피워내고 넝쿨은 하늘을 향해 힘찬 손짓을 한다.     

씨 뿌린지 3일 만에 쌍떡잎을 내민 새싹은 이번 가을에 아름드리 배추로 자랄 것이다.


긴 장마는 문경 뒷산을 촉촉이 적시고

땅속 온도를 저온으로 유지시켜

송이버섯의 균사가 버섯으로 자라나도록 방아쇠 구실을 한다.

문경에서의 마지막 날 이른 아침에 비옷을 입고 6월 송이를 따기 위해 뒷산에 올랐다.

가을에 나는 송이버섯이 이 비가 촉매제가 되어 낙엽을 뚫고 솟아오르기를 기대하면서.

송이버섯 6개와 싸리버섯. 8월에 송이 채취라니 언제 다시 경험해 볼 수 있겠는가?

   



먹고 자고

아침저녁에 밭에 나가 농작물을 돌보고 사과를 솎아내고

계곡 물과 같이 차가운 수돗물로 샤워를 하고

된장에 호박잎을 찍어 먹고 약돌 삼겹살을 깻잎과 방아잎에 싸 먹고......

그렇게 온전한 휴가를 문경 누이 집에서 보냈다.

완벽한 농촌체험, 불가능해 보였던 6월 송이(아니 8월 송이)를 채집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코로나 덕분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올여름 휴가엔 이집트 나일강이나 중국 구채구쯤 기웃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일주일간 정들었던 것과의 이별.

귀하고 귀한 시간, 온전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넉넉하게 품어준 누이와 자형에게 감사드리고 다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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