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영 Aug 17. 2020

합천, 가야산 정상 상왕봉을 향해

연휴 두 번째 날

5시 50분 새벽 공양을 마치고, 서둘러 등산 채비를 했다. 나야 생수 한 병 달랑 들고 나섰지만, 아내는 배가 불룩한 멜빵 가방을 들고 나와, 나에게 짊어지라고 건넸다. 가방 속엔 두툼한 지갑과 도테라 작은 병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모두 등산용 비상품이니 꺼내놓기를 한사코 거절했다. 무겁더라도 남편이 지고 갈 것이니 뭐가 문제가 될 것이랴 싶었겠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메고, 등산 진입구에서 마음을 바꾼 동서가 등산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바람에 남겨둔 가방을 뒤로 메고 가야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은 완만하게 이어졌다. 푸른 나무들이 햇볕을 가려 주고,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방문객의 등산을 도왔다. 가볍게 산보하듯 걸음을 옮겼지만 조금씩 거친 숨을 내쉬게 되었다. 최근 식사량은 줄렸다고 하나 자주 간식에 손이 가고, 퇴근 후 운동은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넋을 잃고 TV 청에 빠진 결과 확 찐자가 되고 말았다. 운동해라, 해라고 재촉하는 아내의 권유를 건성으로 무시했더니 확연하게 배가 솟아올랐다. 이번 등산에서 가야산 정상 상왕봉에 오르면 아내와 기념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는데, 이 똥배를 어떻게 감출 수 있으랴?


옛날 독신 때 교회 모임으로 가야산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등산길이 많이 수월해졌다. 돌밭을 잘못 디뎌서 발을 삐끗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는데, 지금은 계단길로 잘 다듬어 있고, 가파른 길은 오르기 쉽게 나무데크 시설이 되어있다. 예전엔 젊은 혈기로 올랐던 길을, 나이 든 지금은 좋은 시설이 마련되어 편하게 걸었다. 큰 힘들지 않고 중봉에 올랐다. 이때부터 하늘이 열리고,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이했다.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나무데크를 지나고 계단을 올라가서 마침내 가야산 상왕봉에 도착했다. 해발 1,430m 정상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늘은 푸르고 산들은 녹색잎으로 덮였는데 상왕봉 정상은 바위 투성이다. 옛적부터 산 정상에서 산신제로  소를 제물로 치고 신성시했다고 해서 우두봉이라고도 불리는 상왕산은 도리봉, 비계산, 남산, 북두산 등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봉을 거느리고 경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의 남북 경계선에 위치한다. 상왕봉은 합천군에 속한다.

점심식사를 위해 상왕봉 옆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절간 공양주에게 부탁한 흰밥에, 처형이 준비해 간  김 부스러기를 넣고 주먹밥을 만들어 콩조림과 우엉볶음을 반찬으로 맛있게 먹었다. 산 정상에서 먹은 훌륭한 한 끼였다.


우두봉을 조심스럽게 내려와 바로 인근에 있는 칠불봉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영남의 명산 가야산의 정상은 상왕봉이 아니다. 상왕봉의 바로 지척에 위치한 칠불봉이 서로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높낮이가 비슷하지만, 실측 결과 칠불봉이 3m가 더 높았다. 경남 합천군의 1,430 고지 상왕봉과 직선거리로 250m 떨어져 있는 경북 성주군의 칠불봉이 해발 1,433m로 가야산의 정상이라고 공식 발표를 했다.

해발 1,433m 표시가 선명하게 적힌 칠불산 표시판

칠불봉에는 정견모주의 손자들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정견모주의 둘째 아들인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아들을 두었다. 첫째 아들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 씨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일곱 왕자들은 외삼촌 자유 화상과 더불어 칠불봉에서 도를 닦기 시작했다. 일곱 왕자를 그리워하던 허황후가 가야산을 찾았으나 칠불봉을 오를 수 없었다. 이에 허황후는 아들 그림자라도 볼 수 있게 기도했고, 그 정성에 감복한 부처님이 해인사  일주문 옆 연못에 정진하고 있는 일곱 왕자의 모습을 비치게 했다고 한다. 그 연못을 '영지'라고 하며, 정성이 지극한 사람들은 지금도 연못에 비친 칠불봉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칠불봉에서 가야산성 서문이 위치했던 서성재까지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영지골을 하산 코스로 선택했다. 만물산 코스는 경치가 수려하고 볼 만한 것들은 많으나 햇볕에 노출되어 있어, 내려오는 길이 편하고 계곡물이 풍부한 코스를 택했다. 등산화를 벗고 발을 계곡물에 담갔다. 차가운 물에 열기를 식혔더니 내려오는 동안 내내 화끈거렸던 신발 속 발이 시원하고 편해졌다. 얼마를 더 내려와 제법 물이 고인 소 앞에서 처형이 알탕을 제안했다.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계곡물에 들어가 즐기는 가슴속까지 시린 여름 등산의 백미를 아녀자들도 즐긴다는 말인데,  어찌 남녀가 유별한데 아무리 산 중이라 하더라도 백주대낮에 아녀자가 등산복을 훌훌 벗어 내던질 수가 있단 말인가? 처형은 계곡 옆 바위에 다소곳이 앉아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옷을 입은 체, 계곡물로 첨벙 뛰어들었다. 등산 중에 흘린 땀 냄새와 피로가 씻겨내렸다. 다음  차례로 내가 뛰어 들어가 온몸과 머리를 계곡 물속에 담갔다. 이 맛에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여름 산을 타는 것이다. 아내는 발만 계곡물에 담글 뿐, 알탕을 즐기는 처형과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체험해 보지 못했으니 알탕의 시원함과 참 즐거움을 어찌 알 수 있으랴?

내려오는 동안 옷은 조금씩 말라 갔다. 양주골 백운동에 도착하여 어제 탔던 택시를 다시 불렀다. 기다리는 동안 식당에 들려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묵  한 접시를 주문했다. 튜브 속에 든 얼음 부스러기가 얼마나 시원했던지 입안이 얼얼했다.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이 없다며  울상을 짓는 전직 택시 운전사와 그의 아내가 내어 주는 따뜻한 묵을 먹은 뒤 택시를 타고 약수암으로 돌아왔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동서가 모는 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등산을 했더니 몸은 나른한데, 차에 부착된 내비게이션  모니터에 뜨는 코로나 속보를 번번이 지우려니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정부의 빠른 결정과 대책으로 비교적 안정화되고, 익숙해지고 있는 이때에 정신 차리지 못한 일부 종교인과 집단으로 인해 확진자가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다시 심각한 코로나 정국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오랜만의 산행과 절간의 하룻밤에서 얻은 평화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는데, 현실로 돌아오니 코로나로 다시 우울해질 것 같다. 그래도 약수암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기면 마음속 평정이 되살아나겠지.


"생각이 올라올 때 바로 그 생각을 바라보세요.

 생각에 에너지를 보태지 말고 다만 지켜만 보세요.

 생각에 속지 말고 주인공이 되세요."


즐거운 이틀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고 동반해 준 처형 부부에게 감사를 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경 누이집에서, 비는 내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