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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Oct 02. 2020

코스모스, 자연의 경이로움

온전히 추석을 즐기는 법

올해 추석엔 못된 놈이 고향  찾는다는 웃지 못할 유행어가 생겨났다. 이번 추석에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고향에 가지 말라는 국가적 당부가 만들어낸 해프닝이다. 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선물이나 보내고, 연휴 동안엔 조신하게 자기 처소에 머물러 있으므로서 코로나가 진정되도록 하자는 취지인데, 많은  이가 고향엔 안 가고 제주 등 관광지를 예약해서 말들이 많다. 30여만 명이 제주도에 오겠다고 하니 제주 주민들은 내 자식들은 고향에 오지 못하는데 외지인이 들끓는다고 하니 속상해하고, 상인들은 얼어붙은 상거래와 관광산업에 반짝 기회가 왔다며 드러내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환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행여 무증상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로하신 어머니께 옮기지 않을까 염려도 되지만, 매일 회사에서 체온을 재고 열심히 마스크를 착용해서 별다른 징조가 없으니 고향집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머니께 드릴 마스크 50개를 챙겨서 연휴 첫날 새벽 일찍 고향으로 달려갔다.


고향집은 시골이라 하지만 읍내 한가운데 농협 옆에 위치해 있고, 아래층 상가 두 개를 세를 놓고 위층에 어머니가 살고 계시니 아무래도 시골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형이 정년퇴직을 하고 귀향을 한 후부터는 문경 누이집을 자주 찾는다. 앞마당에는 사과, 감, 대추, 호도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멀리 앞산 위에는 흰구름이 걸려 있는 전형적인 시골 고향의 참모습을 누이집에서는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휴가때 막 맺히기 시작했던 대추가 호도만큼 커졌다.


가을에는 시골이 더 바쁘다. 서울 살다 귀향한 누이는 농사지으랴, 사과 과수원 돌보랴, 버섯 따랴 모두가 바쁜 문경의 조그만한 산골 마을에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더해 놓았다. 그것은 야생화이다. 앞뜰 담벼락 따라 심어 놓은 가지가지 야생화의 다양한 꽃은 순박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지난 여름엔 달개비, 상사화, 부용화와 수레국화가 눈길을 끌더니만 이번엔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며 제 자랑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다가가서 살펴보았더니 꽃 모양과 색깔이 다 달랐다. 세상에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코스모스(우주)적 진리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스어로 혼돈을 뜻하는 카오스의 반대말로서 질서를 의미하는 코스모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만물이 조화롭고 질서 있게 어울리는 상태를 관념적인 우주로 생각했기에 우주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기도 다. 이 단어에서 따온 코스모스 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주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 그리고 각 요소들은 어떻게 어울려 조화롭고 질서 있게 하나의 꽃으로 탄생하는지 살펴보고 신기해 했다.

코스모스는 관상화와 설상화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꽃잎이라고 일컫는 설상화는 하나의 꽃을 이루는 여러 개의 꽃잎이 붙어 하나를 이루고 있는데, 꽃잎 한 장이 하나의 꽃이다. 길게 혀처럼 생겼다고 해서 설상화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코스모스는 8개의 설상화가 모여 꽃잎을 이루었다. 코스모스의 암술과 수술쯤으로 생각했던 관상화도 실제로는 각각의 꽃들의 모임이다. 즉 코스모스 한송이가 아니라 꽃다발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코스모스 한송이를 보고  '코스모스 꽃다발이 예쁘다'라고 말해야 바르게 표현한 것이 된다. 하지만 이 구체적인 구조와 사실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냥 코스모스 한송이라고 불러야 무방하지 않겠나? 코스모스의 설상화는 번식능력이 없는 단성화로서, 벌과 나비를 모으기 위할 목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실제로 번식은 양성화인 관상화에서 이루어진다.

코스모스 관상화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한 꽃다발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멕시코가 원산인 한해살이  풀 코스모스는 다양한 색깔의 꽃을 피운다.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 연한 향기를 맡으며, 연인과 함께 걸어가는 가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누이집 앞뜰에서 여유롭게 가을을 즐기려 뒷짐지고 야생화를 둘러보고, 코스모스를 살펴보다가 그 다양한 색깔에 놀라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연분홍, 흰색, 붉은색  3가지 기본 색깔로 가능한 모든 색의 조합으로  꽃을 피워냈다. 인위적으로 3가지 물감으로 그려낼 수 있는 색깔의 조합보다도 더 다양한 색체의 꽃을 자연이 창조해 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색체의 꽃들은 어느 하나 티 나지 않고 어울려 전체가 조화롭고 아름답게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자연의 조화인가?

하나 하나 살펴보면 전부가 다른 색깔의 조합이다. 디자인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먼저 자연을 관찰해 봐야 할것이다. 티나지 않고 잘 어울리는 색의 배치와 조합을 배울 것이다.

해마다 가을절기가 되면 손꼽고 기다리는 것이 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부산에서 문경까지 쉬지 않고 차를 몰았다. 6시 반쯤에 세상이 깨어나고 어둠이 물러나, 사물의 식별이 가능한 새벽 시간에 누이 내외와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낙엽을 밀어내고 봉곳이 솟아 오른 넝쿨 더미를 살며시 재켜본다. 송이버섯이다. 기대감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내가 가을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부산에서 새벽부터 달려오고, 목이 마르고 땀이 흐르고,  가파르고 비탈진 언덕에 밀려 엄지발가락이 아프고 장딴지에 통증이 오더라도 이 맛에 가을 문경 산을 오른다. 송이버섯을 따면서 온전히 가을을 즐겼다,  가을에 귀한 송이버섯을 찾아먹은 것이 최고라고 하지만, 어찌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재미에 견줄 수 있겠는가? 돈을 주고도 누릴 수 없는 경험을 누이 덕분에 매해 즐길 수 있어 감사하다. 이번 연휴에는 3번 산에 올랐고, 기대만큼의 송이를 채취했다. 추가로 능이버섯과 노루 궁둥이 버섯도 땄다. TV를 보면서 애기 송이는 참기름장에 찍어 좋은 향기를 즐기면서  간식처럼 먹었다. 우리처럼 송이버섯을 흔하게 먹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지난 5월에 심은 고구마가 무성했다. 오후에는 시골에 와도 늘 휴대폰에 빠져있는 막내를 데리고 고구마 캐기 체험에 나섰다. 형님 내외, 조카 등 가족이 모두 붙어 고구마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먼저 낫으로 줄기를 걷어내고 호미로 빨간 고구마를 파냈다. 제법 수확량이 많았다. 고구마를 그늘에 펼쳐 놓았다.  3, 4일 동안 수분이 증발시켜야 잘 썪지않는다. 두고두고 보관하면서 겨울까지 에어플라이에 맛있게 구워 먹을 것이다. 저녁엔 가족 모두 둘러앉아 고구마 줄기 껍질을 깠다. 전라도에서 담그는 고구마 줄기 김치를 담그고, 나머지는 고등어 찌게 할 때 넣어 끓여 먹을 것이다.  특별한 맛을 기대한다.

올해는 긴 장마와 여러 번의 태풍으로 고추, 가지, 토마토와 사과 등 과실에 탄저병이 와서 수확물이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을 하지만, 여전히 시골의 가을은 풍성하다. 호두가 길 위에 떨어져 나뒹굴고, 떨어져 줍지 않는 알밤을 벌레들이 배불리 파먹고 있다. 주워 모아둔 붉은 홍시가 양념재료가 된 배추김치는 감칠맛이 추가되어 맛있게 익어갔다.  사과와 노란봉지를 씌운 배는 가을 햇살을 맞아 막바지 단맛을 내고 있을 때, 한편에서는 하얀 사과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과 이모작이 가능할까?


좋은 절기에 풍성한 추석을 온전히 즐기다가 부산으로 돌아왔다.

차 트렁크에 추석 제사 음식, 홍로, 사과즙, 고구마, 땅콩, 밤, 대파, 호박과 호박잎, 그리고 고구마 줄기 김치 등을 잔뜩 채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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