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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Oct 26. 2020

대봉감 따기

온전히 가을 즐기기

가을이 익어가는 절기에 지리산 함양을 향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감농사를 짓는 직장 동료의 일손을 돕기 위해 대봉감 수확에  동참했다.


다행히 나무 크기가 나지막해서 감 따기는 수월했고, 알이 큰 대봉이라 15kg 박스가 금방금방 채워졌다. 가끔은 나무에 매달린 온전히 홍시를 반으로 쪼개서 입으로 후루룩 들어  마시니  달콤하기가 그지없다. 감 수확하는 일꾼에게는 새참이 없다고 하는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일하는 중간중간 감홍시를  베어 물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간식거리가 별로 없던 내 어린 시절에 가을은 밤과 감 등이 있어 먹을거리가 풍족해지는 절기였다. 어릴 적엔 이웃집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를 주어 먹었다.  그 기억에 해마다 가을이 되면 대봉 한 박스를 주문해서 홍시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손가락으로 눌러 홍시를 골라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한두 개씩 물러지다가 일정 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박스에 든 감 전부 홍시가 된다. 아내와 먹더라도 다 먹지 못하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 해 여름철 더위가 기성을 부릴 때 꺼내서 먹는다. 살짝 녹였다가 먹으면 샤배트처럼 달콤하고 시원하다. 풍족하고 다양한 간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 기억에는 홍시가 없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감홍시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식생활 습관도 추억에 의존하는 모양이다.


한나절 감을 따고 나자 후배가 점심식사로 김밥, 라면과 갈비구이를 내놓았다. 이미 감홍시로 배를 채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함께 간 동료들은 지역 특산, 이순신 막걸리로 흥을 돋웠다. 얼마간 쉬었다가 다시 부지런히 감을 땄다. 사과 과수원을 하는 누이를 도와 여러 번 과일을 딴 경험이 있는지라 동료들보다 빠르게 감을 수확했다.

감농사가 사과농사에 비해 수월해 보였다. 감농사는 1년에 두 번 잡초를 베어주고, 두 번 병충해 예방약을 뿌리면 그만이란다. 감 수확도 나무에서 바로 감꼭지를 가위로 자르면 되고, 과육이 단단해서 서로 부딪혀 멍이 들 걱정도 줄어든다. 꽃 수정, 꽃 솎아내기, 격주마다 약 치기, 잎사귀 따주기, 반짝이 깔기 등 사과농사는 수확 때까지 과수원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감은 때가 되면 통째로 홍색으로 익어 간다. 하지만 사과는 잎이 가린 부분은 푸른색이 남고, 사과 아랫부분도 햇빛을 받지 못해 푸르뎅뎅한 색이 그대로 남아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잎사귀를 따 주어야 하고, 바닥에 반짝이를 깔아 햇빛을 반사시켜 주어야 한다.


사과농사와 감 농사 중 어떤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감은 농사짓기가 간편한 대신 수확량이 적다. 친구는 1,300그루 감나무에서 대봉 300박스를 수확해서 홍시용으로  직접 경매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상당한 양은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껍질을 깎아 곶감으로 만든다. 자연 상태에서는 한 달, 기계를 사용하면 2주가 지나야 곶감이 된다. 이에 비해 누이는 700그루 사과나무에서 1,500박스를 수확해서 일부는 농협  공판장에 넘기고, 일부는 냉장창고에 보관했다가 명절에 제값을 받고 판매한다. 농사짓기 쉬운 감농사는 수입이 적다. 일에 치일 정도로 바쁘고 힘든 사과농사는 판매방식이 쉽고 가격 측면에서 보상도 높다. 어느 농사를 짓으면 좋을지 농사꾼 나이, 개성과 노동강도를 고려하여 선택하여야 할 것 같다.

하루 꼬박 감을 땄다. 인건비를 받는 하루 품팔이였더라면 적당히 눈치도 보고 게으름을 피우며 시간을 보내련만, 자발적인 도움이라 다들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해가 질 녘에 감 따기를 멈추고 수확한 박스를 세어 보았더니 100박스는 되어 보였다.


지리산은 해가 일찍 떨어졌다. 깜깜한 새벽에 부산을 출발하여 늦도록 일해서 제법 허리가 굽어지고 다리가 뻑뻑해졌지만 나름 보람찬 하루였다. 노동의 대가로 대봉 한 박스 얻어 싣고 어두운 밤을 뚫고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내 어릴 적에 그랬듯이 홍색 감이 달린 감나무 가지를 꺾어와서 벽에 걸어 두었다. 가을이 익어감에 따라 대봉도 익고 익어서 홍시가 될 것이다.

하나 둘 홍시를 따 먹으면 가을은 깊고 깊어져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될 것이다. 이번 겨울에는 또 어떤 재미거리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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