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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Nov 07. 2020

사과수확, 그리고 참기름 한병

온전히 가을 즐기기

노오란 은행잎이 내려앉은 이  가을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을 때 친지나 동료가 가꾸는 과수원으로 나들이 가는 것입니다. 일손을 도와주어 좋고,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온전한 결실을 수확해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이 가을에 감과 사과 수확이 제격입니다. 재미가 솔솔 합니다.      

지난주엔 지리산에서 대봉 감을 땄습니다.

과육이 단단해서 거침없이 따서 바구니에 담고, 손이 닿지 않으면 감 두 세알 달린 나무 가지를 부러뜨려서 대봉을 수확했습니다. 그래서 감나무는 남성에 비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지를 꺾고 거칠게 다루면 연단이 되어 내년에 더 많은 감이 달린 답니다.

이번주엔 문경에 가서 사과를 땄습니다.

과육이 연해서 살살 다루지 않으면 안됩니다. 따다가 살짝 떨어뜨리면 멍이 들고, 바구니에 담다가 사과 꼭지가 서로 닿으면 흠집이 생겨 상품가치가 떨어집니다. 바구니에 담을 때 조심하거나 꼭지를 가위로 잘라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과나무는 여성에 비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과꽃 수정, 꽃 솎기, 햇빛 가린 잎사귀 따주기 등 손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모릅니다. 곱게곱게 정성을 기울러야 가을에 예쁘고 과육이 달고 사각거리는 과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애정을 쏟아 기른 딸내미 같습니다.

지난주 지리산에서 대봉을 따주었더니 고맙다며 참기름 한 병을 건네주더군요. 오늘은 고모집에 인사차 들렀더니 반갑다며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참기름 한 병을 내주셨습니다. 시골에선 귀한 손님에게 내주는 선물이 참기름인 모양입니다. 시골에서 차린 밥상은 도시인에겐 특별할 것도 없고 거친 입맛 거리일 것이지만, 소금단지 안에서 내어 주는 고소한 참기름은 따뜻한 시골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 그 의미가 진하게 전달됩니다. 우리 도시인은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고향에 계시는 친지 분들의 마음에 여운을 남길 수 있을까요?

P.S

너무 오랜만에 고모를 찾아뵈었습니다. 그분이 눈물을 글썽인 것은 당신의 자식들에 대한 섭섭함 때문입니다. 우리들을 보면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십니다. 조카들은 자주 모이고 초대해서 함께 먹고 선물이나 용돈도 드리는데, 당신 4명 자식 중에는 명절에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이 있어 많이 섭섭해하십니다. 고모는 많이 쓸쓸해 보였습니다. 입맛이 없어 먹는 것이 줄어들어 많이 여위셨습니다. 오늘 고모는 조카들에게  이 얘기를 하지 누구에게 할 수 있겠냐 하시며, 봇돌 논마지기를 파신다고 합니다. 객지살이 밑천으로 논밭 팔아 갈 때는 매월 생활비를 주겠다던 자식들이 이제는 단 한 명만 제외하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답니다. 더 속상한 것은 제일 생활이 힘든 막내아들만 돈을 부친다는 거죠. 내가 알기에도 고종사촌 큰 형님은 부동산으로 엄청난 부를 축척한 것으로 아는데... 그래서 땅을 판답니다. 1억 4천만 원 한 푼도 자식들 주지 않고 당신께서 쓰시겠답니다. 손자들 용돈 주고 먹고 싶은 것도 사 먹고...  


올해 고모 연세 아흔입니다. 어찌 자식 4명이 구순 어머니 한분 못 모실까요? 얼마나 드시고 얼마나 쓰신다고. 이제 몇 년을 더 사실 건 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많이 해 주어도 늘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자식들에게는 아낌없이 퍼 주면서 나이드신 부모님에게는 소홀해도 되는 것인가요? 조금만 챙겨드려도 감동하시며, 당신보다도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을 기뻐하신 부모님이 기억나지 않나요? 평생 고생하셨으니 그냥 그렇게 사셔요 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먼 훗날 자식들에게 외면당하고 홀로 지내게 될 때 외로워하셨던 부모님 생각이 날 겁니다. 그때 가서 후회할 겁니까?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에겐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세대가 우리 세대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부양하고 외롭지 않게 해 드리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의무입니다.


부디 늦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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