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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Dec 01. 2020

제주도 가파도의 청보리 물결

제주도의 자연에 묻히다.

업무에 치이고 몰리다 보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일에만 매달린다. 창의성과 성과에 상관없이 그냥 일만 한다. 일하고 월급을 받는 것은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나 보람은 얻을 수 없다.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씩은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은 일에 지친 심신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제주도로 떠났다. 코로나로 해외 하늘길은 막혔으나 제주도 가는 길을 열렸다. 다행히 제주도는 코로나 청정지역에 해당해서 환자 수가 적어 안심이다. 마스크 착용하고 손 자주 씻으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코로나 여파로 여행객이 줄어들었으나, 국내 여객기는 공항과 계약된 비행 운행 수를 맞추기 위해서 항공료를 덤핑으로 판매하는 까닭에 비행기는 만원이었다. 평소 요금의 3분의 1도 되지 않으니 당연히 승객수가 늘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답답해진 시민들은 제주도를 찾을 수 있는 호기회로 활용한다.


부산을 출발하여 오후 6시 반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머리 써지 않고 온전히 휴식을 취하기 위해 데려가는 대로 가고 주는 대로 먹는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패키지 일행은 모두 5명으로 단출해서 좋았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공항 근처 동문시장으로 갔다.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불을 환히 밝히고 야간시장이 개장되었다. 줄을 이은 작은 수레에서 다양한 퓨전음식을 팔고 있었다. 한 수레 앞에 수십 명의 관광객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 수레에서 파는 메뉴를 짧은 시간 내에 스캔한 후, 시장 깊숙이 들어갔다. 좁은 시장통은 젊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발갛게 까놓은 딱새우와 방어 등 회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갈치 한 마리 1kg 4만 원, 물 좋은 갈치 가격을 확인했다. 저녁식사 대용으로 수레에서 전복 김밥, 흑돼지 주꾸미 볶음 등을 포장해 와서 호텔에서 먹었다. 맛이 없었다. 제주 애플망고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동문 시장에는 애플망고를 파는 곳이 없어서 아쉬웠다.

다음날 가이드가 머체왓 숲길로 안내했다. 머체왓은 일대가 머체(돌)로 이루어진 왓(밭)이라는 데서 붙어진 명칭이다. 총길이 6.7km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머체왓 소롱콧은 편백나무, 삼나무, 소나무와 잡목 등이 우거져 있는 숲으로 트래킹을 즐기기에 최적지로 보였다. 이른 시간이라 다른 여행객이 보이지 않았다. 40분으로 제한된 시간이라 빠른 걸음으로 혼자 숲길을 헤쳐 나갔다. 숲이 짙어지고 빽빽한 편백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른 건천을 옆에 두고 상큼한 공기를 맡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철에 오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동행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겉옷을 벗어 허리에 동여 맺다. 온몸으로 파고드는 편백나무의 피톤치드로 인해 기분이 쾌적해졌다. 평화를 느꼈고,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다. 자연과 하나 되는 기분이었다. 다시 자유여행을 와서 충분히 시간을 내어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머체왓 소롱콧을 완주하리라 다짐했다. 짧지만 참으로 즐거운 트래킹이었다.

범섬 앞에서 차 한잔을 마신 다음, 석부작 관광농원에서 하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하귤은 일 년 내내 열매를 맺어 사시사철 제주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품종이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로 보기에는 맛도 좋을 것 같지만 쓴맛이라 먹지는 못한다. 도로변이나 관광지역에 많이 심어서 제주도가 귤 산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품종이라고 한다. 하귤은 몇 가지 신기한 것이 있다. 한 가지는 열매가 달렸는데도 또 꽃이 피어나 2대의 열매가 동시에 달린다는 것이다. 먼저 맺은 크고 표면이 쭈글쭈글한 하귤과 새로 맺은 매끈한 귤이 동시에 자란다. 때로는 먼저 맺힌 노란 하귤도 다시 파랗게 색을 바뀌는 경우가 있어 청춘을 다시 찾은 듯하지만, 속은 물끼 하나 없이 푸석푸석하다고 한다. 사람도 그렇다.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젊은 얼굴에 날렵해 보이는 외모를 유지할 수 있다. 명심할 것은 속이 푸석푸석하지 않도록 창조적 생활을 하고 생각을 늘 젊게 가지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맺힌 하귤은 표면이 쭈글쭈글하고 나중에 맺힌 하귤은 매끈하고 싱그럽다. 귤나무 하단은 탱자나무가 뿌리를 깊게 박아 땅속의 자양분을 끊임없이 열매로 올린다.

화산재가 덮인 제주 돌밭에서 귤농사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메마른 들판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탱자나무에 열매를 맺는 귤나무 가지를 접붙여 기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사실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거친 제주도에서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도록 많은 수확과 돈을 벌게 해 준 대학나무, 귤농사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에는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오래전 제주도에는 바나나 농사와 파인애플 농사가 성했고, 당시에 귀한 과일로 인정받아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다가 농수산물 수입 개방으로 값싼 열대과일이 들어오자 제주산 바나나와 파인애플 가격은 폭락을 했고, 그때부터 바나나, 파인애플이 베어나가서 더 이상 열대과일 농사는 짓지 않게 되었다. 대신 제주도의 특산품인 귤농사에 집중했다. 수입되는 값싼 오랜지에 대항하여 품종 개량에 박차를 가했다. 한라봉이 나오고 천지향이 개발되는 등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고, 최근에는 황금향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맛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이들 개발 품종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며 제주도민에게 고소득을 안겨주고 있다.

그 날 오후엔 가파도에 갔다. 면적 0.87km, 가구수 126호, 인구 227명의 가파도는 모슬포 항구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있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을 한 바퀴 둘러봤다. 초등학교, 절과 교회가 있고, 가족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집이 보였다. 바닷가 작은 마을 앞에 소금기 없는 돈물(담수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 용출되는 돈물깍이 돌담에 쌓여 보존되어 있다. 가파도의 최고 지점인 해발 20.5m에 2.5m 높이로 소망 전망대를 설치했다. 제주 본섬과 한라산, 마라도와 푸른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소망 전망대에서 풍어와 뱃길의 무사를 기원하는 풍어제 5색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가난한 섬 주민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가파도에서 바라다 보이는 마라도는 통신사의 광고 덕분에 짜장면 파는 중국집 여러 곳이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가파도에는 마리도와 달리 짜장면, 짬뽕을 파는 중국집은 단 두 곳뿐이다. 대신 한라산 정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아담한 카페가 자리 잡고, 문화예술공간이 조성되고, 가파도의 특산품과 경험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섰다. 가파도 주민은 좁고 사방이 평지인 섬 전체에 보리를 심어 바람에 살랑대는 청보리밭을 걷는 체험을 고안해 냈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 다수가 푸른 바다 물결에 대비되어 눈앞에 찰랑거리는 연녹색 청보리 물결을 보고 싶도록 만들었다. 초 여름 청보리를 베어낸 밭에 각종 꽃을 심어 여름과 가을에는 나부끼는 꽃길을 걷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청춘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이 모이면 돈도 모이는 법이다. 가파도 주민들은 삶을 영위하는 방법으로 열악한 환경의 가파도를 푸르게 푸르게 개발했다.   

가파도에서 바라다본 마라도
가족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집, 민물이 용출되는 돈물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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