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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Dec 02. 2020

제주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제주도 자연에 묻히다. 2탄

가파도에 가는 배 시간이 남아 모슬포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송악산에 들렸다. 송악산은 대정읍 해안가에 위치한 해발 104m의 나지막한 오름으로, 바닷속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나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작은 화산체이다. 송악산 주변 퇴적층에는 새발자국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화산 폭발 당시 송악산은 얕은 바다나 해안선 부근 개벌 지역의 철새 도래지로 추정된다.

산방산과 형제섬이 한눈에 보인다. 송악산  해안 데크에서 마라도로 가는 배를 탈 수도 있다.

 제주도내에 한라산을 비롯해 350여 개의 오름이 있지만 송악산처럼 가까이서 분화구를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바다에 떠있는 형제섬을 바라보며 잠시 낮은 오름을 오르면 산 정상에 도착한다. 분화구의 온전한 모습을 바로 발아래에서 생생히 내려다볼 수 있다. 경외감을 느끼게 되는 장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자연 휴식년제가 적용되어 2021년 7월 31일 이후에야 송악산 정상부 분화구에 접근할 수 있다. 6년간 식생복원과 오름 보전관리를 위해 전면 출입통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송악산 인근 풍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분화구에 오를 수 없는 대신 해안선을 따라 송악산의 주변을 즐길 수 있는 2km 남짓 트래킹 코스가 개발되었고,  산방산,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용머리해안이 가까이 있어 특별한 해안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 때문이리라. 송악산 해안절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군사용 굴을 뚫어 기지화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어두운 역사를 확인할 수도 있다. 송악산 인근은 TV 일일 드라마가 촬영된 장소로 선택될 정도로 아름답다. 내년 송악산 정상에 대한 출입통제에서 풀리고 나면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송악산 전경

송악산은 경치가 수려하여 몇 년 전부터 중국 투자자에 의해 많은 토지가 매입되었고 인근 지역을 대규모 관광단지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다. 자연보존을 내세운 주민의 반대에 부딪쳐 관광지로의 개발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법원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현재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의 발걸음은 뚝 끊긴 상태이다. 과거 제주도의 거리와 관광지를 가득 채운 중국인들이 과연 제주경제에 도움을 주었을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 관광객들은 중국 동방 항공기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 묵고, 중국인이 요리하는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먹는다. 노는 장소만 빌려주고 대부분의 이익은 중국인이 거두어 갔다. 중국인의 대규모 투자 속에서 제주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하다. 면세품 외에 중국인이 좋아하는 음식과 그들의 성향에 어울리는 한국 토종의 무엇을 발굴해서 공급하여야 중국인에게 놀이터만 빌려주는 노른자는 그들이 취하는 주객전도의 역할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거문오름 전경

천년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된 해발 456m의 거문오름은 조천읍과 구좌읍 일대에 펼쳐져 있다. 수차례에 걸쳐 분출된 현무암질 용암은 거문오름에서부터 지표를 따라 북북동 방향으로 약 13km 떨어진 해안까지 흘러내리면서 여러 용암동굴을 형성하였다.

약 30만 년 전부터 10만 년 사이에 형성된 일련의 용암동굴들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많은 용암동굴 중 벵뒤굴, 만장굴, 용천동굴, 당처물 동굴은 내부 구조와 동굴생성물이 잘 보존되어 있고, 경관이 아름다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계속적으로 더 많은 용암동굴이 발견될 것이라고 한다.  

거문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 풍력 발전소

2007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후로는 매년 국제 트래킹 대회가 개최되고 있는 거문오름은 사전 예약제로 운용된다.  1일 450명 제한된 인원을 예약받아 자연유산 해설사가 동행하여 탐방이 이루어진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형성한 모체로 알려진 거문오름의 분화구에는 깊게 파인 화구가 있고, 그 안에는 작은 봉우리가 솟아 있다. 거문오름은 북동쪽 산사면이 터진 말굽형 분석구 형태를 띠고 있어서 잘 발달한 다양한 화산지형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거문오름 트래킹 코스. 붉은색이 정상 코스, 청색이 분화구 코스, 황색이 태극길 코스다.

탐방로는 거문오름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정상 코스(1.8km, 1시간 소요), 분화구 내의 알오름과 역사유적지를 볼 수 있는 분화구 코스(5.5km, 2시간 30분 소요), 분화구와 정상을 완주하는 전체 코스(10km, 3시간 30분 소요)로 구분된다. 전체 코스는 그 모양이 태극을 닮았다고 해서 태극길로 불려지고 있다. 패키지여행이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가장 짧은 정상 코스를 선택했다. 비교적 낮은 오름이라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고, 제주도 섬 전체를 바라다보며, 수많은 오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한된 시간이라 호기심과 아쉬움을 남기며 갈대밭을 거쳐 트래킹 출발 출발지점인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로 돌아왔다. 거문오름도 다시 제주도를 올 때 반드시 둘러보아야 할 곳으로 꼽아 두었다. 다음에는 충분히 시간을 내어 센터에서 운영하는 한라산의 숨소리, 용암동굴, 제주의 자연생태계 등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실을 둘러보고, 제주의 섬과 지하세계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4D 영상관과 용을 타고 용암동굴을 탐험하는 VR영상관을 체험할 것이다.     

용머리 닮은 나무둥치와 까마귀도 날아와 목을 적시는 약수터

다음으로 들린, 제주도 봉개동 화산 분화구 아래에 위치한 제주 절물 자연휴양림의 총 300헥타르의 면적에는 50여 년생 삼나무가 빽빽이 둘러서 있었다. 원래 삼나무는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감귤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방풍림 목적으로 심어진 것이데, 이곳은 지역주민이 심어 자영 휴양림으로 개발되어 안락한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절물이란 지명의 유래는 옛날 절 옆에 물이 있었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으로 현재 절은 없고 약수암이 남아 있다. 약수터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는 신경통과 위장병에 큰 효과가 있다고 전해져서 음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내가 찾아가서 물을 마시고 난 뒤에 까마귀도 날아와서 목을 적셨다.

산책로는 완만하고 경사도가 낮아 유유자적 걷기에 좋고, 해발 697m 고지까지 오르는 등산로도 1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했다. 숫모르 편백숲길(8km)은 아름드리 편백숲과 삼나무림, 활엽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활옆수가 우거지고 노면이 데크로 되어 있는 생이 소리길은 산림욕을 하면서 걷기에 좋은 코스다. 단이 없고 오름 중간까지 숲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너나이 들길에서는 울창한 활엽수가 하늘을 가리는 숲터널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등산로 정상에는 분화구 전망대가 있어 맑은 날에는 동쪽으로는 성산일출봉과 서쪽으로는 제주에서 제일 큰 무수천 하천을 볼 수 있고, 북쪽으로는 제주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활엽수 숲에서는 나무들이 서로 얽혀 각가지 사연이 담겼을 것 같고 , 삼나무 숲에서는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두 숲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고, 각 숲에서 걷는 재미가 달랐다

이번 제주 여행은 이전과 다른 코스를 선택했다. 인공으로 조성된 테마 파크가 아니라 제주의 자연을 찾아 그 속에 묻혔다. 재미보다는 편안함을 느꼈고, 삶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충분히 시간을 내서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 제주의 자연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여유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와 힐링의 시간이었다.




한 가지 더, 제주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에 대해서 추가하고 싶다. 짧은 시간 제주도에 머물게 되면 무엇을 먹을까 고민된다. 제주에서 맛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고기국수, 흑돼지구이, 고등어구이, 갈치구이와 조림, 대방어 회, 성미 가든의 토종닭 백숙... 그리고 진기한 음식은 말고기와 몸국이다. 손에 꼽히는 많은 종류의 음식 중에 단 몇 개만 선택하려면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여진다. 이번에 선택한 음식은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이었다. 오래전 가족과 함께 와서 제주 연동 물항 식당에서 먹었던 입에 살살 녹고 맛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을 주문했다.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간은 싱겁고 식감은 냉동되었던 살집을 씹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팍 상했다. 비싼 가격에 이 정도의 음식을 제공하다니... 가만히 최근 몇 년간에 제주에서 먹었던 갈치구이를 생각해 봤다. 탑동으로 옮긴 물항 식당에서, 인터넷에서 소문난 공항 뒤 유명한 식당에서 먹은 갈치구이는 제 값을 하지 못했다. 부드러우나 간이 너무 심심했거나, 해동한 갈치처럼 살이 단단하고 갈치 고유의 고소한 맛이 나지 않았다. 가장 기본인 갈치를 노랗게 굽는 것조차 서툴어, 생선 등에 칼집을 내고 재를 잔뜩 묻힌 구이를 내오는 식당이 많았다. 앞으로는 절대 제주도에서 갈치구이를 먹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제주 은갈치를 구입해서 집에서 제대로 구워 먹는 것이 제주갈치를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이번에 발견한 맛집은 신제주 로터리 인근 뒷골목에 있는 객주리 조림을 파는 두루두루 식당이다. 가이드의 추천을 받은 식당으로 제주도 주민들만 간다는 곳이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미 자리가 찼고, 다행히 식탁 한 개가 남아 겨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객주리는 쥐치의 제주도 방언이다. 쥐치는 식감이 쫄깃하고 탄탄해서 회감으로도 훌륭하다. 최근에는 그 흔하던 쥐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식당 입구 여러 개의 큰 어항 속에는 객주리들이 노닐고 있었다. 수족관에서 살아있는 객주리를 바로 잡아 조림을 만들어 내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쫄깃한 식감에 맛깔난 양념이 입을 즐겁게 했다. 중자를 주문했더니 객주리 두 마리가 조리되어 나왔다. 양이 적어 다소 아쉬웠다. 조림 양이 조금 부족했지만, 콩가루 배춧국과 계란말이를 반찬삼아 맛있게 먹었다. 다음엔 대자를 주문해 먹어야겠다.

살아있는 객주리들로 조림이 만들어진다.  

비싼 은갈치를 주문해서 빈번히 실망하기보다는, 비교적 저렴하지만 쫄깃한 식감에 감칠 난 맛이 돋보이는 객주리 조림을 선택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이다. 제주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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