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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Nov 27. 2020

전신마취에서 깨어나기

새로운 경험 추가


좁고 불편한 침대 위에서 밤새 뒤적이다 새벽녘 간호사의 호출에 정신을 가다듬는다.


속옷 모두 벗고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대기하세요. 양말도 벗어야 되고요. 몸에 있는 모든 장신구는 다 빼내세요. 안경도 벗어야 되는데 눈이 나쁘다고 하니 수술실 앞에서 벗으세요.


위 잇몸 속에 숨어있는 잠정 이빨과 염증을 제거하는데 무슨 이 난리람? 발가벗긴 기분으로 준비하고 대기해 있으니 간호사가  오른팔에 명찰을 채우고, 링거를 꼽기 위해 왼팔 위 혈관을 뒤진다. 살갗에 가볍게 주사기를 꼽아 알레르기 검사를 한다. 주사부위가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준비 완료.


수술방 앞으로 갔다. 기다리던 감청색 옷을 입은 덩치 큰 간호사가 안경과 실내화를 가로채 갔다. 수술방 문이 열렸다. 녹색 수술복을 입은 남녀 간호사들이 달려들었다. 다들 새파란 젊은이들이다. 신뢰하기엔 부족해 보였다. 충분한 경험과 기술이 있을까? '내가 나이가 들어 어려 보이겠지' 생각하고 믿기로 했다. 그중 한 명이 이름을 묻고, 남자 하나가 수술실로 안내했다. 우르르 달려드는 간호사와 곁눈으로 수술을 참관할 인튼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두려운 마음으로 수술실을 들어오는 환자를 완전히 제압하는 분위기다. 이름을 묻고 수술실로 안내하는 사람은 한 명으로 족한, 나머지는 수술실에서 조용히 대기나 하지...


수술대에 누웠다. 좁은 침대 위에 놓인 굵은 끈으로 팔과 다리를 동여 묶었다. 오른팔에도 무언가로 묶이는 듯하더니 무겁게 조이는 느낌이 왔다. 반복되는 것을 봐서 혈압을 재는 모양이다. 가슴이 열리고 차가운 기계 단자가 붙여졌다. 머리에도 캡을 씌운다. 머리카락을 캡 안으로 갈무리하고 밴드로 고정한다. 이마에 붙이는 단자는 제법 짜릿한 통증을 유발했다. 양쪽 코에도 무언가 꼽히는 듯하다. '이름이 무언가요?',  '무슨 수술을 받나요?', 마지막 확인을 한다. '이재...'  입술이 마르고 목이 칼칼해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가벼운 기침을 토한 뒤 겨우 명료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주사는 좀 아파요'. 간호사의 말이 들리자마자 왼팔에서 묵직한 통증이 올라왔다. '무슨 주산 가요?', '마취제입니다'. 전신마취를 해서 육체는 굳어지더라도 의식은 온전히 깨어 있으면 어쩌지? 아프다고 고함지르고 싶지만 혀가 굳어 말이 안 나오면 어쩌지?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지? 공연한 걱정을 한다. 영화를 많이 본 탓이다... 순간 눈을 떠본다. 회오리 모양을 한 등 3개가 차가운 빛을 내고 있다. 수술실 천장에 설치된 에어컨 필터는 청소가 잘 되었을까? 내가 떨고 있나? 담담한 것 같은데... 두 번 찍찍 한번 뚜. 규칙적 심박동 소리가 울린다... 눈을 감는다. 잠시 후 '안녕하세요?' 담당 의사의 굵은 목소리로  인사가 들리고 청량하고 빠른 간호사의 인사가 들린다.


잠에서 깨어났다. '어디죠?', '회복 중입니다'. 어느 순간 수술은 끝나고, 간호사 한 명이 남아 깨어나길 기다린 모양이다. 일반 병실로 옮겨지고 링거에는 지혈제, 통증완화제가 보충되었다. 한 시간은 깨어 있어야 마취가스가 몸 밖으로 배출된단다. 부종 완화를 위해 얼음팩으로 얼굴 찜질을 한다. 시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을 뒤척이다  수술 중에 보호자로 온 해찬이를 돌려보냈다. 별다른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취업이 잘된다며 간호대학을 선택했다가 한 학기 만에 전과한 해찬이에게 포기한 간호 경험을 가급적 주지 않으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입안을 절개한 수술인데 위 입술 위에 붕대가 붙어 있는 이유는 수술부위 지혈을 위해서란다. 콧속으로 넣은 산소호흡기 튜브를 고정하기 위해 집었던 양쪽 콧날 부위가 계속 따끔거린다. 목구멍이 컬컬하고 입이 말랐다. 간호사가 장운동을 확인 후 물을 마셔보고 복통이 없으면 차고 부드러운 것을 마시란다. 그리고 오줌누기를 권했다. 별다른 요의를 느끼지 않았지만 착한 환자인양 화장실에 들렸다. 힘을 주지만 방광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왜 이러지?  쫄쫄쫄 오줌이 흘러나올 때 재삼 힘을 준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전신마취를 하면 방광도 마취가 된다. 마취가 다 안 풀렸다는 징조다. 이제 막 마취가 풀리기 시작해서 오줌만 흘려보낼 뿐이다.


뱃속에서 꾸럭꾸럭 소리를 내며 마취가스를 밀어낸다. 그리고 조금 후 물을 조금 먹어 본다. 통증이 없다. 무엇인가 먹을 수 있다는 얘기. 계속 링거액이 몸에 보충되어 배는 고프지 않다. 하지만 규칙적 식습관에 따라 허전함을 메꿀 양으로 식사를 청했다. 저녁 식사로 죽이 나왔다. 구수한 맛이 감도는 콩죽이다. 초등학생 때 먹었으니 얼마만 인가? 50년도 더 된 맛의 기억을 지금 생생히 구분해내다니 뇌 기억 회로가 신비하다. 반찬은 정어리 한쪽, 잘게 다진 계란 후라이와 오이, 시원한 물김치 국물과 무우와 황태가 스쳐간 국물, 그리고 요구르트 하나. 반찬이 싱겁다. 콩죽을 한술 뜨고 반찬을 한 숟가락 먹으니 맛이 섞인다. 콩죽과 오이가 맛을 잃는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비빔밥에 익숙해진 식습관으로 혼합된 맛을 즐기게 된지라, 음식 재료 고유의 맛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콩죽만 다 먹고 나서 다진 계란을, 그다음에 오이, 물김치 국물, 황태 국물을 차례로 떠먹었다. 재료 고유의 싱그러운 맛이 온전히 느껴졌다. 이 병원에서 귀한 체험을 했다. 앞으로는 가끔씩 음식을 싱겁게, 한 가지씩 차례로 먹어볼 작정이다. 이 또한 생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수술 후 지루한 회복 시간을 죽일 방법으로 수술 회복 과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얘기거리가 끝나가는데도 시계는 겨우 6시 28분을 가리킨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나? 얼굴에 얼음찜질을 계속하고, 편히 누워 수술 전에 읽고 있었던 유발 하라리의 '21가지 제언' 대신 팟방에서 일당백을 듣거나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들어야겠지. 이리저리 뒤척이다 아침이 찾아오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퇴원을 해야지. 어차피 수술부위는 시간이 흐르면 아물 것이고.


생후 처음 겪은 전신마취와 수술방 체험

싱겁게 하나씩 먹어야 생생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진리를

내 생의 경험에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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