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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Dec 23. 2020

토미, 캐빈의 '여명의 벽' 암벽 등반 이야기

넷플릭스 다큐 영화,   엘 캐피탄 'The Dawn Wall'

재택근무를 하고, 주말에도 집콕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집에서 업무를 본다고 하지만, 집에서 가만히 먹고 자는 것도 하루 이틀 지나니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세수하는 것도 귀찮고 수염도 깍지 않아 덥수룩하다. 꼴이 말이 아니다. 이 많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면 피폐해져서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 지경에 놓이게 될 것 같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위해 '기본 영작' 책 한 권사서 매일 몇 쪽씩 영어로 작문을 한다. 나의 영작 실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기본적인 관사가 빠지고, 때로는 의미만 비슷할 뿐 잘못된 단어를 사용해서 영문법적으로 틀린 경우가 많아 고치고 또 고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인터넷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여행자들이 올리는 세계 곳곳의 현지 소식을 자주 찾는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즐겨 본다.   


넷플렉스에서 본 다큐 몇 가지는 흥미로울 뿐 아니라 나의 인식을 바꾸기도 했다. 중범죄를 다룬 '고양이를 건드리지 마라'는 가볍게 시작한다. 고양이에 대한 잔인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루카를 잡기 위해 네티즌들이 연합한다.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루카는 살인까지 불사한다. 중범죄로의 확대를 우려한 네티즌의 집요한 추적은 마침내 루카의 주거지를 찾아내고 국제수사에 공조하여 체포한다. 인터넷 너드들의 협력과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BTS가 세계 음악계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전 세계에서 모인 ARMY, 방탄소년단의 팬덤 네티즌의 단합된 힘이 이룬 업적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변신에 가까울 정도로 위장술이 뛰어나고, 경험을 통해 학습능력을 발휘하는 문어에 대한 얘기를 다룬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감정을 표현하고 먼저 손을 내밀고 안기는 등 인간과 교감을 하는 문어에 대해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개나 고양이 같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존재. 나는 앞으로 문어를 단순 식용 거리로만 취급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다큐 영화 '던 월(The Dawn Wall)'은 프리 클라이밍계의 전설인 토미 콜드웰과 빈 조거슨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미국 요세미티 공원의 914m의 암벽을 등정하는 얘기를 담고 있다. 미국 요세미티 공원에는 세계 암벽 등반의 성지인 높이 914m의 엘 캐피탄이 있다. 엘 캐피탄에는 암벽을 맨손으로 오르는 여러 개의 루트가 있지만, 새벽빛이 가장 먼저 닿는다는 '던 월(여명의 벽)'은 누구도 시도조차 하지 못한 불가능한 직벽으로 여겨졌다. 발을 디딜 틈은 물론 손끝조차 들어가지 않는 미끈한 벽면은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다.

토미는 요세미티 공원에서 20분 거리에 집을 마련하고 수시로 요세마티를 등반한 결과, 사라테 월, 엘 코라존, 더 노즈. 엘 리노, 조디악과 같은 이전에 개발된 엘 캐피탄의 모든 루트를 오르게 다. 토미는 새로운 루트를 찾아 처음 등반하는 목표를 세웠고, 뮤어 월 루트를 처음으로 개척한다.  꿈을 이룬 토미는 던 월을 목표로 5년에 거쳐 치열한 준비를 다. 로프를 타고 엘 캐피탄 정상에서 아래로 오르내리면서 던 월을 오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찾았다. 발을 딛고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는 모든 돌출 부위와 암벽의 틈새를 찾고 확인하고, 한 치의 오차가 허용하지 않는 치밀한 계산에 의해 마침내 새로운 루트를 확정한다. 전체 구간을 45m 로프로 연결할 수 있는 걸이(피치)로 나누어, 32개의 피치로 구분했다. 암벽 등반은 로프의 도움 없이 손과 발만 이용해서 자연 상태 그대로 암벽을 오르는 것이다.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떨어질 때를 대비하여 바위틈에 앵커를 박는다. 그 사람은 그 피치의 시작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고, 다음 사람이 차례로 올라간다. 한 피치를 올라가면 암벽에 박힌 앵커에 의지해서 다음 피치에 도전한다. 모든 구간이 다 힘들다. 그리고 32개 구간 중 350m 지점 한 구간의 수평 피치는 팔과 다리를 최대한 뻗더라도 미치지 않는 구간이고, 점프해야 돌출 부위를 두 손으로 잡아야 하는 '다이노' 구간이 최대 난관으로 확인되었다. 집 인근에 두 난관과 똑같은 형상을 만들어, 건너고 점프하는 연습을 수천번 반복하였다.  

엘 캐피탄을 자유 등반한 등반가들은 많았지만 여명의 벽(던 월)은 아무도 못 올라갔다. 말 그대로 매끈한 암벽이다. 2014년12월 27일 토미와 빈은 2주 정도를 예상하고 던 월 등반을 시작한다. 정말 힘든 등반을 시작했다. 수 백 kg의 장비를 등에 지고, 암벽 등반 중 휴식을 취하거나 야간에 잠을 잘 수 있는 포털 렌지를 옮긴다. 19일간 암벽에 매달린 체 먹고 자며 계속된 도전에, 세계 언론이 주목을 하게 되고 등반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사람들은 휴가를 내고 요세미티 공원을 찾아와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어릴 때 전기톱에 검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와 키르기스스탄의 반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트라우마를 함께 겪은 아내와의 이혼의 아픔을 겪은 토미는 던 월 등반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손가락이 잘라졌을 때 의사는 토미에게 다른 직업을 찾을 것을 권했다. 암벽을 오르는 데에는 손가락으로 작은 모서리를 잡고 온 몸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손끝의 힘과 감각에만 의존하여 목숨을 걸고 암벽을 오르는 등반가의 검지 손가락 절단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토미는 덩치가 작았고 친구들과 잘 섞이지도 않는 조용한 소년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해마다 여름에는 가족과 요세미티 공원에 가서 암벽 등반을 했다. 아버지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역경에 대처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토미도 암벽 등반을 즐겼고, 수줍음이 많은 그는 '자신이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자랑거리는 암벽 등반'이라고 생각했다. 암벽 등반에 관심을 가지고 실력을 닦던 중, 1995년 7월 23일 전문 등반기들이 37m 인공 암벽에 도전하는 스노버드 초청경기가 열렸다. 토미는 대회 하루 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일반인을 위한 경기에 참여해서 우승을 하였다. 경기 당일 일반인인데도  불구하고 전문 등반가 대회에 초대받았고, 16세 토미가 유일하게 37m 암벽 등반에 성공했다. 스노버드에 우승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에게 열정이 생겼다. 이 계기로 말미암아 그는 미국에서 가장 높고 힘든 곳을 자유 등반하고, 기록을 세워 세계 최고의 암벽등반가로 불리게 된다.     

토미와 빈은 그들이 설계한 엘 캐피탄 여명의 벽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잡으며 한 발씩 전진하여 약 360m 정도 올라가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3일 만에 피치 10까지 올라갔다.

피치 15는 마의 구간이다.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수천번 연습하고, 실제 구간에서도 반복해서 연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에서 또 실패한다. 토미는 베이스캠프에 머물면서 암벽 등반에 적합한 시간을 기다린다. 겨울철 추워진 날씨로 암벽의 밀도가 높아지는 야간에, 작은 구멍을 꼭 잡고 피치 15의 '트래버스'에 재도전한다. 면도날같이 날카로운 모서리를 잡고 몸을 최대한 뻗어 보지만 역부족이다. 또 실패했다. 결국 다음 날 재시도에서 성공한다. 다음은 빈 차례다. 캐빈은 몇 번이고 반복해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동안 토미는 점프해서 맞는 편 돌출 부위를 잡아야 하는 최대 난 코스 피치 16의 '다이노'에 도전한다. 여러 차례 실패한다. 토미는 '다이노' 구간은 도전이 아예 불가능한 구간은 아닌가 의구심을 품게 되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고민한다. 다시 여러 번 시도한다. 결국 수년 동안 면밀한 조사와 계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우회 루트를 발견한다. '다이노' 주변으로 큰 원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와 다시 등반함으로써 피치 16을 통과했다. 2.5m를 가기 위해 60m를 우회 등반한 것이다. 피치 16을 통과한 토미는 캐빈의 '다이노' 피치 공략을 위해 자일을 맨다. 그리고 캐빈의 피치 15 등반 성공을 기다린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토미는 혼자만의 등반을 생각한다. 토미처럼 오랫동안 암벽에 머물렀던 사람은 없었다. 더 이상 기다렸다가는 정상에 오를 기회를 아예 놓치고 말 것 같았다.  피치 16을 통과한 그는 계속 등반을 해서 중간 기착지로 예정한 '와이노 타워'에  오른다.  한 사람이 간신히 눕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이다. '와이노 타워'에 오른 토미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오를 건지 고민한. 결국 '캐빈 없이 혼자 오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혼자 오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캐빈과 함께 정상에 오르고 싶어졌다. 캐빈이 '와이노 타워'에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는 로프를 타고 피치 14에 설치된 포털 렌지로 돌아온다. 캐빈에게 '함께 정상에 오르자. 너와 함께 등반을 끝내고 싶다'라고 말한다. 캐빈은 3일간 재도전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손 끝이 까이고 피부가 벗겨진다. 이틀 동안 처가 아물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캐빈은 '자신의 등반을 포기하고, 토미의 등반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토미는 '함께 정상에 오르자'고 말하며 캐빈의 심적 부담감을 들어준다. 며칠을 더 기다리며 캐빈을 격려한다. 마침내 7일을 기다린 끝에 캐빈이 성공한다. 토미가 점프로 실패했던 '다이노' 구간을 캐빈은 몇 번의 점프만에 성공한다.

함께 '와이노 타워'에 오른 토미와 캐빈. 이제는 순조로운 등반으로 정상을 향한다. 암벽 아래 성공을 기원하던 많은 관중들이 엘 캐피탄을 뒤로 돌아 정상에 올라 , 두 사람이 마지막 피치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본다. 정상에 도착하는 토미와 캐빈을 맞이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사 랑 해'.


토미와 캐빈은 19일 만에 요세미티 국립공원 엘 캐피탄 여명의 벽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이 되었다. 추락 방지를 위한 로프만 착용하고 오직 맨 손만으로 914m 암벽을 올랐다.

두 사람이 엘 캐피탄 여명의 벽을 올라간 사실이 세계 언론에 보도되고, 각 국의 정상과 오바마 대통령이 축하를 해 주었다. "자랑스러워요. 엘 캐피탄을 정복한 토미 콜드웰과 캐빈 조거슨.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었어요."

토미와 캐빈은 지금도 요세미티 공원 근처에 살면서 암벽 등반을 즐기며, 일반인에게 암벽 등반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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