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영 Mar 07. 2021

갑자기 춘란이 보고 싶어

초등학교 동창이 보내온 봄 나들이 소식에 춘란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는 순간 춘란 꽃이 보고 싶어 졌다. 예전 지리산 산행과 그때 채취했던 춘란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난초 채집하러 갈꺼나!


십수 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해 1월 말이 되자 날이 풀렸다. 겨울 내내 움츠려 들었던 몸과 마음도 덩달아 풀려 근질거렸다. 어디든 상춘을 떠나자고 친구들을 부추겼다. 토요일에 지리산으로 춘란 캐러 가기로 했다. 이곳저곳 지리산 등성이를 뒤졌다. 더러 마른 낙엽 사이로 푸른 풀잎이 눈에 띄었다. 낙엽을 뒤질 때마다 누군가 스쳐간 흔적이 보였다. 이미 푸른 잎에 노란색이 끼였거나  화려한 색의 꽃을 피울 귀한 춘란은 고이 모셔 간 뒤였다. 그래도 어떠랴! 봄을 알려 줄 꽃을 피울 것이라면 족하다.


봄기운도 콧구멍에 넣고, 꽃대가 오른 춘란을 채취해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그 해 봄은 싱그런 춘란 꽃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친구들에게 난 채집을 하러 가자고 권했지만 모두 시큰둥하다. 바쁘다고 해서 한 주 기다렸다가 다시 권해도 여전히 바쁘단다. 진짜 바쁜 것이 아니라 춘란에 관심이 없을 테지. 화려한 꽃도 피지 않는 한낱 풀뿌리에 무슨 관심이 있으랴? 하지만 난 한번 마음에 담은지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디 가면 춘란을 캘 수 있는지 묻고 다녔다. 1월 초 아버지 제사 지내러 고향 가서도 형님에게 춘란 얘기를 했다.


동행자를 찾지 못한 체 채집 장소도  마땅치 않아 시간만 흘러갔다. 이러다 채집 시기를 놓치랴 조바심이 났다. 혼자라도 가야겠지. 산에 오르면 그곳에 있을 거야.


그러던 중 업무차 대전에 갔고, 잠시 짬이 나서 대전역 인근 중앙시장을 둘러보았다. 큰 시장이었다. 봄나물이 많았다. 특히 머위가 눈에 띄었다. 머위를 뜨거운 물에 데쳐 쌈장을 찍어 먹으면 쌉싸름한 맛에 겨우내 잃어버린 입맛이 되살아난다. 야생은 제법 비싸지만 매년 이른 봄에 별미로 챙겨 먹는다. 한참을 둘러보는데 시장 옆에서 주름 투성이 할머니가 춘란을 팔고 있었다. 망설인다. 이번 주말에 산에 갈 것인가? 저 춘란을 살 것인가? 나이가 들어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산에 가 봐야 춘란을 찾는다는 보장이 있나? 이런저런 핑곗거리가 마구 떠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주저 거 린다. 봄맞이 나들이는 어쩌고? 상춘을 해야 굳어버린 몸과 마음이 풀리지!...


결국 춘란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 화분에 옮겨 심었다. 앙상한 뿌리, 말라버린 잎을 잘라내고 여러 촉을 합쳐 한 다발로 만든 춘란이지만 꽃을 피우기엔 충분해 보였다. 물을 흠뻑 주고 거실장 한 모퉁이에 올려놓았다. 옆에서 며칠 전에 분양받은 황금빛 베타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5일 후 마침내 춘란 꽃대가 망울을 터뜨렸다.


다가오는 봄!

나는  춘란과 골드 베타로 황홀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이 오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