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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an 06. 2021

Refresh를 위해 남미 여행을 떠나다.

스페인 세비야

20년 직장 생활 대가로 한 달 반 유급 휴가가 주어졌다. 자기 계발, 어학연수, 온전한 휴가 등 무엇이든 가능한 이 기간을 활용하여 난 남미 여행을 선택했다.


인터넷 동우회를 통해 39일짜리 배낭여행 패키지를 예약하고, 페루 리마행 왕복 항공 티켓을 예약했다. 며칠 후 근대 대해양시대를 열면서 세계를 제패했던 스페인을 둘러보고 싶었다. 유급휴가 중 남미 여행 39일을 사용하고 남은 며칠과 여름휴가 3일을 추가해서 Stopover를 통해 스페인에 머무르기로 했다. 항공 티켓 변경 수수료 25만여 원을 지불하고 여행 일정을 변경했다. 스페인은 한 해전에 딸 보담이가 2주 동안 배낭여행을 한 곳이라 가 보고 싶었다.


출발 전 스패니쉬 기본 학습 동영상을 찾아 여러 번 봤지만, 언어가 입에 붙지 않았다. 영어로 현지인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페인어 학습을 포기했다.




1월 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지체되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트래짓 시간이 짧아 마드리드 공항에 짐은 도착하지 않았다. 히드로 공항에서 내려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타는 게이트로 달려가서 겨우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몸은 탔지만 화물칸에 실린 여행가방은 미쳐 옮겨지지 못했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안내자가 다음번 항공으로 짐이 도착하면 내가 머무는 호텔로 가방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유명 관광지를 찾아가는 이동이 많아 특정 호텔 주소를 남길 수가 없었다. 가방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두 시간 이상 기다렸다. 다음 비행기로 온 가방을 찾은 후 지하철을 탔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 인근 지하철역에 밤 11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비는 오고 문패는 정확하지 않아 집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골목길 집들은 일련의 번지수로 연결되다가 내가 찾는 번지수를 뛰어넘고 다음 번지로 이어졌다. 우산을 받쳐 들고 배낭을 메고 비에 젖은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며, 여러 번 숙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결국 지하철 역 근처 wifi가 터지는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Skype를 이용하여 숙소로 전화해서 겨우 집을 찾아갔다.


숙소는 에어비앤비에서 보았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예쁜 주인이 경영하는 안락해 보이는 방 하나를 예약했다. 사진과는 달리, 사용할 방은 좁고 오래 사용하지 않은 듯 싸늘했다. 침대는 삐걱거렸다. 실제 얼굴을 내민 주인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70대에 가까운 노인으로, 예쁜 사진은 주인이 젊었을 때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 집 아들이 어머니가 젊었을 때의 옛 사진을 올리고, 빈 방을 근사한 각도로 찍어 임대 방을 소개한 것이다. 돈 몇 푼 벌려고 과장 공고를 한 탓에 이방인에게 스페인 마드리드 첫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좁고 좁은 샤워부스에서 샤워한 후, 준비해 간 비상식량을 전자렌지로 데워서 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방안의 히트는 작동되지 않아 추웠다.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고 두꺼운 옷을 껴 입었다. 내일 아침 일찍 세비야로 출발하기 위해 침대에 몸을 눕혔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추워서 몸이 움츠려 들었다.


이렇게 Refresh 여행이 시작되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 하는 법.




아침 일찍 고속철도 렌페를 타고 세비야로 이동했다. 세비야는 스페인 남서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위치한 대도시로 대항해 시대의 콜럼버스가 항해를 시작한 곳이다.


세비야 역에 내려 걸어서 시가지를 둘러보며 세비야 대성당을 향했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브라질 아파레시다 성모 발현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대성당이다.  처음엔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후에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고딕 등 여러 양식이 더해졌다. 세비아 대성당은 모스크로 1198년 지어졌으나, 1248년 레콩키스타에 의해 세비야가 가톨릭의 영향권에 속하면서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내부 공간은 일반 성당과 비해 폭이 넓었지만, 장식은 유럽 여느 성당과 유사해 보였다. 내부 여러 무덤 중 네 명의 왕들이 관을 들고 있는 크리스토퍼 콜롬비아의 관 앞에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콜럼버스가 '죽으면 자신의 무덤을 신세계에 묻어 주고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앞쪽에 있는 왕의 오른쪽 발등이 반질반질 빛을 내고 이었다. 오른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세비야를 찾게 된다는 얘기가 있어서 발을 만지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왼발을 만지면 부자가 된단다.

콜럼버스 관을 들고 있는 왕의 발등이 반질반질 빛났다.

세비야 시가지를 감상할 수 있는 히랄다 탑은 세비야 대성당의 종루이다. 이슬람 건축의 상징과 같은 히랄다 탑은 계단이 아니라 경사진 길을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종루에 올라 28개의 종과 16세기 청동 풍향계 엘 히랄딜로를 보았다. 첨탑으로 올라가는 중간중간에 설치된 창문을 통해 대성당의 지붕, 알카사르 궁궐과 멀리 투우 경기장과 세비야를 관통하여 흐르는 강이 눈에 들어왔다. 뒤뜰에는 정원수로 오렌지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서 처음엔 신기해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세비야의 가로수는 온통 오렌지 나무이다. 거리 곳곳에 노란 오렌지가 달려 있어 보기에 좋았다. 노란 오렌지를 따먹을 수는 있으나 먼지투성이로 먹기에 부적당해 보였다. 우리나라 영동의 가로수는 감나무인 것이 기억났다.       

대성당 종탑과 오렌지 나무

궁궐이며 성채인 알카사르는 페드로 1세가 지은 왕궁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잘 꾸며진 정원, 각양 무늬의 벽돌, 깊고 섬세한 부조로 꾸민 벽과 천장 등 절대 권력이 아니면 꾸밀 수 없는 화려한 사치를 확인했다.

알카사르 궁전

알카사르에서 걸어서 스페인 광장을 향했다.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해 조성된 스페인 광장은 세비야의 대표적 랜드마크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태희가 TV 광고을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 광장에는 바로그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을 혼합하여 지운 본부 건물이 반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 아래층에는 반원을 따라 스페인의 모든 도시의 문장과 지도, 역사적인 사건들이 타일로 새겨져 있었다. 스페인 광장을 둘러싼 마리아 루이사 공원의 아름드리나무와 잘 보관된 옛 건물을 둘러보고 에어비엔비에서 예약한 숙소를 찾아 나섰다.   

세비야의 숙소는 깔끔하고 공간도 충분했다. 주인은 친절하게도 2층 식탁 위에 다과도 차려놓고 마음껏 먹게 했다. 백팩을 풀어놓고 잠시 쉬었다가, 밤이 되어 플라밍고 공연을 보기 위해 알카사르 뒷골목 극장을 찾아갔다. 낮에 예약했던 극장이 닫혀있었다. 뒷골목이라 건물들이 거의 비슷하고, 소극장이라 특별히 다른 건물과 구분되지 않았다. 다들 문이 닫혀 있는지라 골목을 잘못 들어 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골목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거의 1시간 이상 헤매다가 이곳이 공연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낮에 예약할 때 담당자가 지도를 펴 놓고 뭐라 뭐라 설명했는데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낮 공연은 이곳에서 하지만 저녁 공연은 다른 곳에서 하니 그곳으로 오라는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헤맸던 것이다. 허탈해져 숙소로 돌아왔다. 48유로 날렸다. 낯선 곳에선 만사에 꼼꼼히 확인하고 움직여야 할 것을. 설명할 때 잘 듣고 지도를 받아서 간직해야 했던 것을...


대충이란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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