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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an 11. 2021

세고비아 성, 마드리드 왕궁

남미 여행 4

아침 일찍 500년 전통의 벼룩시장, 엘 라스트로에 가기 위해 나섰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만 만날 수 있는 시장인데, 무작정 갔으니 또 헛 걸음 한 것이다. 칠칠하지 못한 판단과 행동으로 몸을 피곤하게 했다.


가이드북에서 세고비아 가는 버스가 있다는 지하철역을 찾아갔더니, 노선이 변경되어 몽클레아역에 출발 버스가 있다고 했다. 다시 몸을 옮겨 세고비아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선교사를 만나 인사 나누었다. 오늘은 왕궁, 솔, 마요르 광장을 보고, 마지막으로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페루 리마로 출발할 것이다. 밤 12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출발 예정이다.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세고비아는 과다라마 산맥의 해발 1,000m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고비아는 유명한 기타를 생산하는 마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클래식 기타 브랜드 세고비아는 기타 연주의 가장 '안드레스 세고비아'에서 따온 이름으로 이 마을과는 상관없다. 세고비아는 기원전 700년 무렵부터 이베리아 인들이 거주했으며, 기원전 1세기 말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11세기에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카스티야 황국의 알폰소 10세는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 로마시대의 수도교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찾는 이가 많다.    

2,000년 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수도교

세고비아 시내에 들어서면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은 2,000년 전에 세워진 수도교이다 . 1세기에 로마인이 16km 떨어진 아세베다 강물을 끌어오기 위해 축조한 수도교를 둘러보았다. 화강암을 쌓아 128개의 2층 아치로 총길이 813m, 최고 높이 30m의 수도교는 로마시대의 뛰어난 토목 공학 기술을 보여 주었다. 1906년까지 고지대에 물을 공급했다고 하니 견고함과 규모에 놀랐다.    

'백설 공주의 성'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알카사르 궁전

세고비아에는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로 유명한 유네스코 지정 알카사르가 있다.  '백설 공주의 성'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알카사르 궁전에서 1474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이 즉위식을 가졌다. 이사벨 여왕은 페르난도 왕과 결혼한 뒤, 1492년에 이슬람을 물리치고 스페인을 통합한 스페인의 역사적인 왕이다. 콜럼버스를 후원하여 대항해시대를 열기도 했다. 또한 스페인을 최고의 전성기로 이끌었던 16세기 펠리페 2세가 결혼한 곳으로 스페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세고비아 서쪽 시내를 끼고 흐르는 에레스마 강과 클라모레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는 성 내부의 각 방에는 옛 가구와 갑옷, 무기류가 전시되어 있었다. 성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세고비아 아랫마을은 황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세고비아 대성당

식당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꼬치니요 아사도(어린 돼지라는 뜻)를 보면서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잠시 전율을 느꼈다. 태어난 지 2, 3주밖에 안된 새끼 돼지를 화덕에서 구워 내놓는 요리는 필리핀의 통돼지 바비큐 레촌과 비슷했다. 꼬치니요 요리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과거 이 마을을 점령한 아랍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모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종교적 신념을 착안해 모든 식당에서 돼지고기만 구워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아랍인들은 없지만 오직 꼬치니요를 먹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꼬치니요 아사도

식당에 들려 새우 볶음밥을 먹고 있는데,  한국인 커플이 들어와 맞은편 식탁에 앉았다. 어제 톨레도에서 보았던 커플을 세고비아에서 다시 만났다. 마드리드로 신혼여행 온 커플 같았다.


마드리드로 돌아가기 위해 정류장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젊은 사내가 봉지에 담긴 붉고 까만 사탕을 먹고 있어서,  호기심이 일어 사탕을 서로 바꿔 먹어 보자고 제안했다. 그 사내에게는 처음 먹는 한국의 홍삼 캔드 맛이 이상하겠지만, 몸에 좋은 홍삼이라고 설명하며 사탕 몇 개를 서로 교환했다. 산딸기같이 생긴 사탕은 젤리였는데, 건네받은 젤리의 모습들이 모두 제각기 달랐다. 빨간 딸기 모양, 보라색 포도, 분홍 자두 등 모양에 따라 맛도 다 달랐다.

      



스페인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펠리페 2세 때부터 궁전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마드리드 왕궁을 찾아갔다. 2,800여 개의 방과 135,000 평방미터의 크기로 서부 유럽에서 가장 큰  왕궁에서, 한 때 유럽뿐 아니라 남미까지 식민지를 넓히고 세계 곳곳에 스패니쉬 언어를 퍼트리면서 세계를 제패했던 스페인의 막강한 힘을 보았다. 왕궁은 온통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대규모의 장식품과 액세서리가 모두 금이다. 하나가 수 백 kg은 될 것 같다. 스페인 왕가가 수집해 온 역사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벽과 천장을 뒤덮은 그림들. 예수님과 천사 등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찾고 찾아 찬란한 중세 기독교 문화를 표현해 냈다. 옷만 해도 얼마나 섬세하고 화려한지 왕자가 입는 옷 하나를 제작하는데 수년은 걸렸을 것 같았다. 옷이 완성되면 아이가 너무 자라나서 맞지 않아 못 입게 되는 건 아니었을지?

마드리드 왕국의 전경
궁전 내부의 화려한 장식과  그림

그 화려했던 과거를 자랑하는 스페인이 지금은 쇠락해서 유럽의 여느 나라 중 하나에 불과하다. 거리는 지저분하고 건물의 담벽들은 낚서들로 뒤덮이고...


마드리드의 중앙인 마이요 광장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산 미구엘 시장 옆 먹자 식당에서 다양한 먹거리들이  나를 유혹한다. 하몽 등 몇 가지 주문해서 맛을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솔 광장은 젊은이들로 넘쳤다. 지도를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이 거리의 흥을 돋운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이 많이 눈에 띈다. 특히 젊은 이들이.

솔 광장의 마스코드 곰 동상과 공연을 펼치는 예술인들
산 미구엘 시장 옆 먹자 식당의 다양한 먹거리,  도토리를 먹인 발톱까지 까만 흑돼지 뒷다리 하몽과 게살과 크림으로 토핑한 빵이 맛있었다.

스페인 광장에는 돈키호테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지극히 현실적인 산쵸와 진취적 이상적 충동적인 돈키호테를 대비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한다. 무모한 도전, 꿈과 이상 추구,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입을 통해,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주저앉는 것이 더 미친 짓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모두가 노력하면 꿈과 이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세르반테스는 권고한다. 사람들은 그의 저서를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많이 읽히는 책으로 화답하고 있다.


사람들은  세르반테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는 관심 없고, 단지 돈키호테와 산쵸의 동상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고 싶을 뿐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의 식사비는 한국보다 조금 높았다. 야채 해산물 초무침이 만 오천 원 정도다. 물 500ml가 거의 2천 원. 교통비는 많이 저렴했다. 한 시간 거리의 세고비아 왕복 요금이 15유로. 한 끼 밥값에 불과하다.

마드리드에서 Stopover 하면서 세비야, 톨레도, 세고비아와 마드리드의 박물관과 전시관...  계획했던 모든 것 다 보고 즐겼다.


이제 페루 리마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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