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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an 18. 2021

세계의 배꼽, 쿠스코를 향하여

남미 여행 9

이카에서 쿠스코로 가기 위해 크루즈 델 수르의 풀 까마 버스를 예약했다. 페루의 대표적인 버스 회사 크루즈 델 수르는 두 종류의 버스를 제공한다. 풀 까마는 등받이가 180도까지 뒤로 젖혀지고 두 발을 뻗어 얹을 수 있는 발 받이가 있다. 간이침대같이 펼쳐져서 장거리 목적지를 잠을 자면서 갈 수 있도록 최적화되었다. 풀 까마가 세미 까마에 비해 버스비가 비싸고, 담요를 제공한다. 공항에서 처럼 몸과 짐을 수색한 후, 버스에 타니 기사가 메말라 보이는 샌드위치를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다. 쿠스코까지 18시간을 버스를 타고 달렸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페루의 산하, 안데스 산맥

야간 버스를 타고, 의자를 뒤로 젖혀 반가면 상태로 달리던 중 새벽 2시쯤에 잠이 깨었다. 숨이 가빴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도 시원하지 않았다. 왜 이러지? 첫 경험이라 원인을 몰라 가뿐 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증세가 개선되지 않았다. 이른바 고산 증상이다. 해발 4,000m가 넘는 안데스 산맥을  오르는 중이라 산소가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다. 깊은 한숨을 들이쉬면서 간신히 버텼다. 다행히 낮은 고지로 내려오면서 증상이 사라졌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한다. 1200년대부터 스페인의 점령이 시작된 1532년까지 잉카제국 타완틴수유의 수도로 건설된 도시로서 지금도 페루의 유수한 도시 중 하나이다.    


버스는 18시간 오직 외길을 사막과 거대한 산맥을 거쳐 마을 중심지를 지나, 때로는 시속 10km, 평균 40km로 쿠스코를 향해 달려갔다. 쿠스코는 페루의 옛 수도로 해발 3,500 고지에 위치해 있었다. 숨 가쁨이 여전하고 머리가 아프고, 속 울렁거림이 계속되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고산증 증세가 내게도 오는 건가? 버스에서 내려 울퉁 불퉁하게 돌이 막힌 골목길을 걸어서 도착한 쿠스코의 한 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낡고 오래된 호스텔은 이층으로, 방에는 이층 침대가 세 개가  있었다. 6명 각자가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라커가 있었는데, 자물쇠를 걸 수 있는 고리가 망가져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요리할 수 있는 주방이 작고 좁아서 식사 때마다 번잡을 피할 수 없었다.

삐걱이는 호스텔 대문을 열고 나와, 쿠스코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마을 한쪽 광장에서는 우리 어릴 적에 시장에서 약을 팔던 약장수같이, 유희적 몸놀림으로 현지인의 웃음을 자아내는 약장사들이 판을 벌리고 있었다. 구경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모퉁이에서는 동전 굴리기, 뺑뺑이, 바람잽이들이 호객행위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3개 중 표시된 한 개를 찾으면 건 돈 3배를 주는 야바위 등 우리 70년대 초 시장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이국 만리 떨어진 곳에서도 인간들의 삶의 과정과 발전이 우리의 과거와 똑같아서 신기했다.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전통 재래시장 '산 페트로'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천장을 갖춘 1층짜리 큰 건물로 여러 개의 입구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시장 내에는 야채와 과일, 건과류, 생선과 육류, 화려한 색깔의 옷과 장식품, 그리고 즉석에서 짜주는 생과일 주스와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간이식당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재래시장에 오면 의례히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사 먹어야 되는데, 속이 울렁거리는 고산증세로 맛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신 알파카 털로 짰다는 알록달록한 무늬가 놓인 스웨트를 하나 샀다. 


숙소에 돌아와 얼큰한 것 먹으면 속이 좀 풀리려나 하고 가져간 라면을 끓여 먹었지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약들이 몇 개밖에 보이지 않아 이곳이 약국일까? 의심스러운 근처 가게에서 고산증 예방약을 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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