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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an 20. 2021

잉카 유적지를 돌아보며

남미 여행 10

아침 일찍 쿠스코 근교 투어를 나섰다. 성스러운 계곡이라 불리는 잉카의 돌 유적지가 있는 삐삭으로 가는 길에는 안데스 산맥의 아름다운 풍경과 넓은 들판, 우람밤바 강이 흐르는 비옥한 논이 펼쳐졌다.    

우람밤바 강이 흘러 비옥한 논을 만들었다.

잉카인은 삐삭의 가파른 언덕과 계곡에 석축을 쌓아 계단식 밭을 만들고 농작물을 경작했다. 수로를 통해 계단식 밭에 물을 공급하여 수확량을 높였다. 수확한 농작물은 접근하기 어려운 더 가파른 곳에 저장소를 만들어 보관했다. 곡식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다.  

삐삭 가파른 계곡에 석축을 쌓아 계단식 경작지를 조성했다.

버스를 타고 거대한 계단식 밭이 아득히 눈앞에 펼쳐지는 오얀따이땀보로 이동했다. 아랫동네 흙집에는 지금도 잉카시대 때 만들어진 하수구와 수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돌과 바위를 이용해 거대한 계단식 밭을 만들고 지배층이 사는 집을 만들고, 신을 숭배하기 위한 건축물을 지었다. 잉카인의 돌을 다루고 다듬는 기술이 놀라웠다. 거대한 바위를 이어놓은 구조물 사이에는 빈틈이 하나도 없다. 외부의 침입을 피해 고지에 축조된 지배층이 사는 집과 계단식 밭, 곡식 저장소의 돌 울타리 등 고지의 유적지를 돌아보는데 힘이 들었다. 숨이 가쁘고 땀이 삐질삐질 났다.

오얀따이땀보 계단식 경작지와 거대 석축물. 바위사이 틈새 하나 없이 정밀하게 축조된 석재 다루는 솜씨가 놀랍다.

버스가 안데스 산맥을 달리는 동안 넓고 비옥한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렵과 채집의 삶을 살던 잉카는 작물 시험장인 모라이를 통한 농업을 발전시켰다. 농사 기술의 발전은 잉여 생산물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경제 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모라이는 계단식 원형의 고대 농작물 시험장을 말한다. 쿠스코 등 인근 각 지역의 흙을 가져와 그 토양에 맞는 농작물을 다양하게 키워 냈다고 한다. 토양에 따라, 온도 차이에 따라 농작물의 작물상태를 시험 관찰해서 양질의 품종을 개발했던 것이다. 참고로 안데스의 옥수수 모양은 참으로 다양하다. 듣기에는 옥수수 품종만도 수 천 가지를 개발해 냈다고 한다.

모라이 계단식  작물 시험장

살리네라스는 산속에 있는 염전이다. 암염이 녹아 흐르는 계곡물을 칸칸이 만든 염전 밭으로 흘려 건조해 소금을 얻는다. 잉카시대에 당시 금보다 귀한 소금이 끊임없이 생산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스페인 이전 마지막에 나타난 잉카제국이 어떻게 짧은 시간 내에 남미대륙 전체를 통일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 살리네라스와 모라이이다. 이곳 염전은 지금도 연합체로 운영되고 있다. 소금밭 한 칸에서 건기 6개월간 200kg의 소금을 생산해 내고 있으며, 자식들이 분가할 때 이 소금밭 한 칸을 유산으로 물려주기도 한다.

살리네라스 염전

잉카시대에도 먹는 것은 중요했다. 지배층은 고지에 돌과 바위를 이용하여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고, 모라이에서 우수한 품종을 개발했다. 열심히 일하고 수확한 농작물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 잉카시대의 부지런한 농부의 유전자는 현재의 페루인의 모습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지금 남미 께추아인을 생각하면 비탈진 밭에서 열심히 농사일을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부지런함이 늘 먹거리를 풍족히 제공했고, 그들의 몸통이 굵은 넉넉함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들의 한 끼 식사는 밥과 고기 덩어리, 약간의 야채 등 참으로 풍성하다. 동남아의 가난한 한 끼와는 비교가 안된다.


내일 마추픽추에 오르기 위해 영국 차관으로 설치된 53불이나 하는 비싼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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