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는 통영의 한 바닷가 콘도에서 출발하여 부산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고 서둘러 차를 몰았다.
Y는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을 자주 갔다. 통영 산양읍 달아 공원에서 한려수도 해안선을 바라보기를 좋아했고, 통영 시장의 값싼 횟거리와 충무 김밥을 즐겨 먹었다. 오늘도 제철 횟감인 감생이의 찰진 회도 맛보고, 바람도 쐴 겸해서 통영에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예전에는 부산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마산까지 간 다음, 국도로 진동, 고성을 거쳐 통영을 가는 길을 애용했다. 진동에서 고성을 이어주는 도로 중 편도 2차선으로 비교적 도로 폭이 넓고 길이 곧은 구간이 있는데, 곳곳에 설치된 속도 감지 카메라가 운전자들의 질주의 본능을 억눌렀다. 혹자는 넓은 도로가 나오자 무의식 중에 급하게 차를 몰아 속도위반 딱지를 떼이는 구간으로도 알려졌다. 그래서 부산에서 통영으로 가는 길은 운전하기에 조심스럽고 지겨운 구간으로 유명했다. 나라의 경제적 형편이 좋아지고 개인 보유 차량 수도 늘어나는 추세에 맞추어 전국의 도로 건설이 많아졌고, 부산에서 통영으로 가는 길도 편해졌다. 부산에서 거제도를 잇는 해저터널로 유명한 거가대교가 건설되고, 대전과 통영 간에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Y는 오늘 이른 아침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장유를 거쳐 마창 대교를 타고 고성까지, 고성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통영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양읍 작은 마을에 위치한 펜션 앞에는 가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다가 일렁거리고 파도가 해안가를 넘나들었다. 좁은 해안 자갈밭에는 바닷물이 쓸고 온 어구용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빈병 등 잔해물이 지저분히 널려져 있었다. 지난 가을에 붐볐던 카페나 해안가에는 사람 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적막감에 잠겨 있었고, 차가운 겨울 바람만이 동네를 휘감아 돌고 있었다.
잠수병 예방을 위해 감압실에서 산소 치료를 받고 좀 늦게 도착할 것이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은 Y는 잠시 해안 자갈밭을 걷다가 방향을 바꾸어 낚시 배들이 정박한 데크를 향해 걸어갔다. 늘 데크 위에서 자리돔이나 볼락을 잡던 낚시꾼들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지난 초겨울까지 전국에서 몰려드는 낚시꾼을 싣고 남해 먼바다 백도까지 갈치를 잡으러 가던 갈치 배 2척과 인근 갯바위로 낚시꾼들을 실어 나르던 작은 배들이 정박해 비를 맞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날씨에도 감성돔이 깊은 바닷속 바위 밑 동굴에서 자기 영역을 지키며 두 눈을 껌벅이고 있을 것이다.
Y는 겨울바다에서 6자, 7자짜리 감생이를 찍어 올라 올 다이버 양래 씨를 기다렸다. 지난밤 낮에 잡은 감생이 사진을 SNS에 올린 잠수 경력 30년이 넘는 양래 씨가 Y를 통영으로 초대한 것이다. 작년 한 해 여러 번 선상 낚시를 갔으나 변변한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Y는 작살로 대물을 찍어 올린다는 양래 씨의 얘기를 믿고 아침 일찍 통영을 향했던 것이다.
감압실을 다녀온 양래 씨는 동네를 한번 돌아보자며 Y를 데리고 컨테이너 다이빙 샾 옆에 있는 카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손님 하나 없는 카페를 지키고 있던 이 동네 토박이 동형 씨는 양래 씨에게 커피를 권하며 올여름 코로나가 물러가면 낚시꾼을 싣고 나르기 위해 구입한 보트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동형 씨는 카페를 운영하는 건물 1, 2층에 거실과 방을 꾸며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낚시꾼에게 임대하는 일도 겸하고 있는데, 요즈음은 코로나로 인해 예약 손님이 하나도 없어 걱정이라는 했다. 그리고 작은 마을에 민박형 숙소가 여러 곳 늘어나자 정식으로 등록된 콘도에서 민박형 숙소가 손님을 받는 것을 감시하고 신고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불평도 늘어났다. 온라인으로 사용 후기라도 댓글로 남기게 하고, 광고라도 해야 손님 한 두 팀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콘도의 눈치를 봐야 해서 이런 것도 막혀 버리니 어떻게 버텨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양래 씨는 마을 초입에 위치한 한 때 콘도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Y를 데리고 갔다. 이 건물을 최근에 매입한 민 사장이 ‘어서 오세요! 선배님’이라고 인사하며 양래 씨를 반갑게 맞이했다. 전입자 민 사장은 젊어서 억척같이 일하고 부지런히 몸을 놀려 큰돈을 벌어서 현재 대전에서 여러 개의 큰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 돈은 벌만큼 벌었고, 젊어서 누리지 못한 휴가도 가고 유흥도 즐기는 인간적인 삶을 누리고 싶었다. 젊었을 때의 고생을 보상받고 싶었다. 민 사장은 콧수염을 길러 위엄을 더하고, 비교적 고급 스포츠에 해당하는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 틈틈이 통영으로 내려와 물 질을 즐겼다. 통영에 내려오면 각 처에서 휴식을 위해 모여드는 다이버들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다이빙을 즐기면서 복잡한 사업상 스트레스와 짐을 벗어나는 경험을 하였다. 이 곳에서 만나는 다이버들 중 양래 씨는 다이빙 경력 30년 차 베테랑 잠수부로 때때로 민 사장의 잠수 멘토가 되어 주었다. 이런저런 다이빙 기술과 물속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법과 작살 사용법 등 자신의 경험을 친절히 전달해 주었다. 사업으로 복잡한 민 사장은 통영에 내려와 휴식과 여유를 즐기던 중 양래 씨로부터 이 건물이 매물로 싸게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별생각 없이 덜컹 사 버렸다. 내 건물이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쉴 수 있고 다이빙도 더 자주 즐길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 본관 방 한쪽 벽이 통 유리로 되어 있다. 방에 누워 일렁거리는 바다와 함께 출렁거리거나, 때때로 달밤에 항해하는 황톳배에 몸과 마음을 싣고 한산도로 향하는 자신을 상상하기도 했다.
어제 민 사장은 부산에서 온 김 실장, 지리산에서 온 김 선배님과 양래 씨와 함께 다이빙을 가서 감생이를 여러 마리 찍어 올렸다. 오랜만의 수확에 만족한 민 사장은 선배님들에게 “내일은 내가 책임을 지고 횟거리를 마련하겠다”라고 장담을 하면서 대전에 사는 친구 다이버들을 불렀다. 내친김에 양래 씨도 부산에 사는 친구 Y를 통영으로 초대했다.
이렇게 모인 다이버들은 양래 씨가 1세대 다이버이라며 깍듯이 모시는 지리산에서 온 김 선배님, 부산에서 온 식자재를 공급하는 김실장, 대전에서 육가공업을 하는 K, 역시 대전에서 와서 오늘 횟거리를 장만하는 책임을 진 총 잘 쏫는다는 T, 그리고 이제 막 다이빙을 배운 대전에서 온 막내와 Y 등이다.
바람이 불더니만 통영 앞바다에 풍랑 주의보가 떨어졌다. 배가 못 뜨니 오늘 감생이를 찍어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번 대전 팀에서 두 번이나 놓쳤다는 1m짜리 광어를 오늘 기필코 잡을 것이라고 벼르고 온 대전 T도 광어를 잡을 기회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 횟거리를 책임지겠다고 장담하던 민 사장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지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드라이 슈트를 만지작 거리며, 함께 비치 다이빙을 해서 멍게와 해삼이라도 주어 오자고 버디가 될 다이버를 찾았다. 모두가 주저주저하고 나서지 않았다. 모두 하고잽이가 아닌 모양이다. 먼 곳에서 통영까지 다이빙을 즐기러 왔으면 풍랑 주의보가 내렸더라도 비치 다이빙이라도 해야 하는데 나서는 사람 하나 없었다. 다이빙을 즐기러 왔다기보다는 도시 생활에 지치고 코로나로 답답해진 환경에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신선한 바다 공기가 있는 곳으로 휴식을 취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대전 막내와 T는 어제 야간작업을 했다고 옆 방으로 잠자러 나가고, 김 선배님은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병을 꺼냈다. 안주도 없이 막걸리를 걸치는 김 선배님이 보기에 안타까웠던지 육가공업 K가 냄비에 물을 붓고 가브리살을 넣어 돼지 수육을 장만했다. ‘선배님은 깍듯이 모시고 후배들은 엄격히 가르쳐야 한다’는 양래 씨의 말에 늘 막내 역할을 한다는 50대 초반 김실장이 나서서 ‘내가 모든 일 다 한다’며 장단을 맞추었다. 김 실장보다 한 살 많은 민 사장은 요즈음 젊은 애들은 빠져도 너무 빠져서 선배들이 일을 다 한다며 잠자러 간 대전 막내들을 힐난했다.
돼지 수육을 안주 삼아 막걸리가 한두 잔 오고 가면서, 자신들이 잡은 물고기에 대해 자랑하는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말 수가 적고 점잖은 1세대 다이버가 말했다. “옛날 짝 다이빙으로 물에 들어갔는데, 버디가 손을 잡아끌면서 바위 밑을 가리켜서 보았더니 오백 원 동전보다 큰 눈이 끔벅끔벅거리고 있더군. 그래서 버디와 같이 둘이 동시에 총을 쏴서 물고기를 명중시켰어. 한 명은 작살을 물고기 몸에 박아두고, 다른 한 명이 작살을 빼내서 다시 쏘고, 다시 한 사람이 작살을 빼내 쏘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작살을 번갈아 가며 쏘았지. 겨우 물고기를 바위 밑에서 꺼냈는데, 물고기가 너무 커서 살림 망에는 들어가지 않았어. 두 팔로 물고기를 겨우 안았는데, 가만있던 물고기가 퍼드덕 몸을 튕겨 쏜살같이 빠져나갔어. 작살을 수십 발 맞아서 어딘가에 가서 죽었겠지. 이제까지 다이빙하면서 그렇게 큰 물고기를 다시 만난 적이 없어”.
우리 양래 씨도 자신의 전설을 얘기했다. “난 지난번에 사량도 인근 바다에 떨어졌는데, 그곳에 크랙과 큰 짬이 있는 거야. 짬 밑을 보니까 감생이가 수십 마리 있더군. 그래서 가만히 뒤로 돌아가서 플래시를 켜서 바위틈에 끼워 놓았어. 그러면 감생이가 그쪽으로 빠져나가지 않거든. 그리고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감생이를 쏘았어. 7자는 되는 감생이였어. 다른 감생이들이 도망가지 않고 있는 거야. 그래서 차례로 총을 쏘아 잡았지. 한 30마리는 돼. 엄청나게 잡았어. 그런데 말리지. 말이 30마리지. 생각해 봐. 고무줄을 30번을 잡아당겨 총에 걸어야 되는 거잖아. 물 위로 올라오니 팔이 말을 안 듣는 거야. 팔이 저리고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거야. 그래서 감압기에 들어가서 산소 치료를 받고 왔지. 산소치료를 받으면 저린 팔이 금방 낫거든”.
소파에 누워 있던 식자재 김 실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옛날에는 말이지, 지금처럼 총도 좋지 않았어. 그때 우리는 대검을 하나씩 차고 들어갔어. 물속에서 대왕 문어를 만나면 작살을 날리진 못했지. 문어가 몸을 감아버리면 위험하거든. 대신 대검을 작살 뒤에 끼운 후 '앞에 총' 자세를 취하지. 그리고 문어를 향해 찔러 총을 하지. 수십 번 찌르는 거야. 문어는 특히 다리와 머리를 연결하는 부위가 약하거든. 그 부위를 막 찔러 대면 문어 다리에 힘이 빠지거든. 그렇게 해서 문어가 너덜너덜하면 다리를 몇 개씩 잘라서 물 위로 끌어올렸지” 지난 경험을 회상하며 신나게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얘기를 덧붙였다. “한 번은 물아래로 떨어졌는데, 바위 위에 문어 한 마리가 떡 앉자 있는 거야. 문어 크기가 큰 부처만 했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잡겠다가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거든. 그래서 못 본 것처럼 내가 피해 갔지.
김 실장 얘기를 듣고 있던 양래 씨도 한 마디 덧붙였다. “바위에 붙어 있는 문어는 잡아 낼 수 없어. 이 놈들 빨판이 얼마나 힘이 좋은지 말이야. 바위에서 떼어 놓을 수 없거든. 대왕 문어를 잡으려면 반드시 소시지 2개쯤을 가지고 들어가야 해. 긴 로프로 고리를 만들어서 머리 위로 씌워 조이고 소시지에 묶어 두는 거야. 한 참 후에는 문어가 소시지에 끌려 올라와 물 위에 뜰 수밖에 없어. 그때 주어 배 위로 끌어올리면 돼”. 양래 씨가 말하는 소시지는 다이버의 위치를 표시하는 부력 장치이다. 해저에서 펼치면 자동으로 공기가 주입되어 소시지 모양으로 부풀어 올라 물위로 상승한다. 노련한 양래 씨는 자신의 경험 하나를 더 자랑하는 듯 얘기했다. “물속에 내려갈 때 락스 반 통과 물 반 통을 섞어 플라스틱 병에 넣어가야 해. 문어는 아무리 크더라도 작은 동굴 틈 안으로 숨어 들어갈 수 있어. 바위 밖으로 대왕 문어 다리가 보이면 락스 물을 동굴 안으로 쏘아 붓는 거야. 그리고 준비해 간 그물을 동굴 입구에 대고 있으면, 문어가 동굴에서 스스로 나와서 그물 안으로 들어가지. 그러면 그 그물을 소시지에 묶어서 물 위로 띄우면 돼. 아주 쉬워.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어. 문어 잡으러 들어갈 때는 반드시 미니 산소통 하나는 차고 가야 해. 문어를 만나면 호흡이 가빠지거든. 문어 잡으려고 신경 쓰다보면 금방 시간이 흘러가고, 산소를 다 써버려. 그러면 위험해지지. 그래서 비상용 미니 산소통을 가져가야 해. 이것은 참 중요한 거야. 선배 말을 들어."
다이빙 경험이 적은 민 사장과 육가공업 K는 열심히 선배들의 전설 같은 얘기를 집중해 듣고 있었다. 나도 물속에서 대왕 문어를 만나면 저렇게 잡아야지 다짐을 하면서. 이들이 말하는 문어는 적어도 30kg를 넘는 대왕 문어를 말한다. 양래 씨가 잡은 대왕 문어의 기록은 67Kg. 사람보다 더 큰 문어를 찍어 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민 사장이 “설전 다이빙을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제안을 했다. 다들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수긍을 했다. “동해 울진 대진 항에 가면 문어를 만날 수 있어. 대진 항에서 가까운 포인트에 가서 늘 대왕 문어를 잡아 왔거든. 한번 가자고.” 1세대 김 선배님이 말했다. 그리고 “대진 항 근처 바닷속에 우리 선배님을 기리는 비석을 심어 났어. 나이가 많이 든 후에도 다이빙을 즐겼던 선배가 죽었거든. 그래서 후배들이 선배를 기리기 위해 비석을 준비한 거야. 한 십 년은 된 것 같네. 이번에 가서 그 선배를 만나 봐야겠어. 물속 비석 앞에서 인사라도 해야지.” 지난날을 회상하듯 김 선배님이 술회하였다. 다들 구정 전에 울진 앞바다에 가사 대왕 문어를 잡아오자는 제안에 모두 동의하며 뜻을 모았다. 누군가 웅얼거렸다. "겨울철에는 도치도 많거든. 8자짜리, 미터 짜리 도치를 잡아서 탕을 끓여 먹으면 얼마나 시원한데...".
그때 Y는 ‘술안주 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의 얘기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도 바로 앞바닷 속에 늘려져 있는 멍게와 해삼, 15m 거리 바다 위에 떠있는 바지를 고정시키기 위에 메어 놓은 밧줄에 붙어 있는 따개비를 먹으려 모여드는 감생이 조차 찍어오지 못하는 수십 년 경력의 다이버. 이들이 풀어내는 그 들만의 전설을 더 이상 듣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내 만에는 파도가 크지 않으니 다이빙을 해서 안주라도 잡아오자고 하면서도 선뜻 나서는 사람 하나도 없고, 라테 얘기만 풀어가는 모습들이 우습게도 느껴졌다. 식자재 김실장이 “통영 나가서 광어 한 마리 사 오자. 한 5kg짜리 사 오면 안주 거리는 해결될 거야.” 라며 다이버들의 동의를 구하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사 와서 우리가 회 치자. 물에 담그면 맛이 다 빠져 맛이 없어”... 그렇고 그런 얘기들. 그런 얘기들이 한가롭게 오가는 가운데 1세대 김 선배님은 슬며시 자리를 빠져나와 차를 몰고 지리산 자기 집으로 달려갔다. 그들만의 전설 얘기를 나누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김 선배님이 보이지 않아 전화해서 알아봤더니 딸내미와 저녁 약속이 있어서 먼저 집에 간다고 전해 달라고 한 모양이다.
김실장이 통영으로 광어를 사러 나갈 때 Y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를 나눈 후에 차에 올랐다. 코로나로 답답해진 가슴속에 통영 바다 바람을 불러 넣어 주었으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바람 불고 바다가 거칠어졌는데, 무엇을 기대하며 이곳에 더 머무를 것인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