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의 버스 대장정을 마치고 마침내 아침 8시에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칠레는 남태평양과 남미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길게 남북으로 뻗어 있다. 길이 4,300km, 길이 175km의 특이한 지형으로 인해 칠레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 국토 가운데 쪽에는 지중해성 기후, 남쪽에는 피오르, 빙하, 호수가 있는 서안 해양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남미 여행코스. 난 39일에 걸쳐 남미를 둘러 보있다. <출처. 혜초 여행사>
181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883년 태평양 전쟁 때 페루와 볼리비아를 무찌르고 북부지역을 영토로 확장하였다. 칠레는 민주주의 전통으로 다른 남미 국가에 비해 쿠데타나 독재정부가 적은 편으로 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국가로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산티아고를 수도로 둔 칠레는 남한 면적의 8배, 인구는 1,630만 명, 원주민은 3%에 불과하고 대부분 스페인계 백인이다.
이른 시간이라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어딘가를 다녀와서 체크인을 해야 했다. 산티아고에서 북서쪽으로 120km 떨어진 천국의 골짜기라는 발파라이소를 다녀오기로 했다. 태평양에 면한 칠레 제1의 항구도시로, 미로처럼 얽힌 아름다운 거리가 2003년에 '발파라이소 항구도시의 역사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언덕 위 교회의 첨탑, 색색의 페인트로 칠한 낡은 집과 가파른 언덕에서 오래된 항구의 옛 정취를 느끼게 하였다. 발파라이소는 1980년대부터 화가들이 벽화를 그리면서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났다. 골목골목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벽화가 이 도시를 유명 관광지로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운다. 도시 전체를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했다.
100년 역사를 가진 아센소르 승강기가 사람들을 가파른 언덕 위로 싣고 날른다.
특이한 것은 급한 경사지역들을 이어주는 100년 이상 사람들의 발이 되어준 아센소르라는 엘리베이터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번 타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이다.
전망 좋은 네루다 집
발파라이소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네루다의 집이 있다. 칠레 민중 시인이며 사회주의 정치가, 외교관이었던 그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물건들이 5층 건물에 나열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한 날에도 몇 명의 시인과 평론가들이 패널이 되어 수 십 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네루다의 문학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스페인을 모르는 나에겐 소귀에 경읽기이다.
현지인이 먹는 으슥한 식당에 들러 생선 튀김과 볶음밥을 먹고, 인근 고급 휴양도시인 비냐 델 마르로 이동했다. 발파라이소에서 9km 떨어져 있다.
비냐 델 마르로 가는 해안길, 도시의 상징물인 꽃시계
멋진 굴곡진 해안과 백사장, 유럽풍의 성채들로 이루어진 비냐 델 마르는 유럽의 휴양지를 떠올리게 했다. 해안선을 따라 해변이 끝없이 펼쳐지고, 공원에는 꽃들이 만개하고, 도시 거리에는 식민지 시대의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볼프 성, 성 밖 바위에는 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비냐 델 마르의 대표적 건축물로 1905년에 지었다는 볼프 성은 해안 절벽 위에서 탑과 테라스를 자랑하고, 내부는 한 때 유행했던 패션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성 밖 해안의 암초에는 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갈매기와 더불어 페리카나가 하늘을 나른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조용한 도시의 풍경과 바다를 여유롭게 즐기는 현지인들을 눈에 띄었다.
비냐 델 마루의 고고학 박물관과 모아이 상
도시의 거리의 울창한 야자나무 길을 따라가면 베네치아풍 멋진 궁전이 나오는 베르가르 공원이 나온다. 공원 안에는 이스터섬에서 가져온 모아이 석상이 서 있는 고고학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사람의 상반신 모양을 한 모아이 석상이 900여 개나 있다는 이스터 섬 방문은 이번 계획에 포함되지 않아 이곳에서 모아이 석상을 보는 것으로 대체했다.
무더위를 뚫고 걷고 또 걸으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길거리에서 2천 원짜리 과일 모듬을 사 먹으면서 거리를 걷다가,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