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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Feb 10. 2021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의 발생지 보카

남미 여행 22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직후에 브라질과 파라과이 등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남미의 강대국으로 급부상했다. 20세기 초까지 농업과 목축업으로 부를 쌓아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속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1차 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 중공업과 제조업으로의 산업 전환 실패와 1930대 미국발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적 타격을 입고 경제적,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강대국이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인구의 80%는 유럽계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스스로를 남미의 백인국가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독일계 혈통이 많으며, 독일계 혈통 덕에 금발의 벽안들도 눈에 많이 띈다. 세계 8위의 넓은 국토를 가진 아르헨티나의 인구는 4천3백만 명으로 인구밀도는 평방킬로미터당 14명으로 세계의 195위 수준이다. 인구수가 너무 낮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 높은 빌딩들이 있을 뿐 대부분이 땅이 나대지들이다. 그래서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넓은 목장들이 이 나라의 상징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1946년 도시 건설 400주년 기념을 위해 건립된 높이 67m 오벨리스크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한때 크게 호황을 누리던 도시였다. 150년 전 계획도시로 설계되어 도시 전체가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하다. 4, 5층 석제 건물의 외곽은 유럽의 그것처럼 조각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도시 군데군데 고풍의 건물들과 광장들이 번성했던 그 당시의 흔적들이다. 하지만 경제가 쇠퇴하면서 이들 건물들엔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고, 오랫동안 보수가 되지 않아 대리석들이 검게 시간의 흔적을 덮어쓰고 더러는 시멘트로 조잡하게 부서진 틈을 메꾸고 있다.

그리고 빈부 격차도 완연해 보인다. 도시 진입 길에서 성냥갑같이 좁은 사각형 집들이 층층이 쌓아 올라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난한 서민들이 사는 집으로 아르헨티나의 현 국가 경제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으로 보였다. 공인 달러 환율은 8.55인데 암달러 환율은 12.9다. 이 나라 오기 전에 달러를 확보하여 이 도시 골목길 깜비오를 외치는 환 달러상과 페소로 환전하면 그만큼 이득을 본다. 그 덕에 달러를 보유한 여행자들은 여유 있게 먹고 마시고 물건을 사며 즐길 수 있다.

아침부터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시 탐방을 위해 나섰다. 대통령 궁으로 불리는 행정부의 중심 건물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5월 광장 동쪽에 있다. 분홍빛의 저택이라는 뜻의 '카사 로사다'라고 불리는 이유는 건물 전체 색깔이 분홍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현 대통령이 근무하는 대통령궁 일부가 서민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곳에는 전 대통령 사진들과 엠마,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인물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서민들이 국가를 친근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아 보인다. 저 극단적인 단절의 군출신 권력자들도 청와대를 열어 국민과 대화하는 장을 열었으면 좋았을 것을.

대통령궁 옆에서 시작된 일요일 벼룩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온갖 것들이 거리 난전에 펼쳐져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과일과 야채, 빵, 개인 수공예품, 골동품, 심지어 중국에서 본 등을 긁어 두꺼비 소리 내는 것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즐비하다. 수십 블록에 거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산텔모 거리는 특히 여자들에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군데군데 액세서리와 기념품을 사기 위한 흥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자들에게는 처음의 호기심을 제외하곤 똑같은 시장 모습들이 연속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빨리 이 거리를 지나치고 싶은 것은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이 한몫을 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다행히 산텔모 거리는 시장 역할만 할 뿐 아니라 작은 공연장 역할도 겸하고 있어서 연주를 하거나 마술을 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한 평생을 이 장에서 탱고 춤을 추고 있다는 늙은 부부의 행복한 춤사위도 볼 수 있었다.  주름진 얼굴의 노부부가 입고 있는 화려한 의상이 젊었을 때의 그들의 모습을 반영해  주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의상도 주인과 함께 낡아가고 있었다.

  

책자에서 소개된 맛집에서 스테이크와 피자로 점심을 먹는 동안 남녀 한쌍이 나와 땡고 춤을 추었다. 오늘 저녁으로 예약된 땡고 쇼를 이 식당에서 다 봐 버린 느낌이다. 계산서에는 공연을 볼 수 있는 실내에서 식사했다고 해서  인당 15페소씩 추가되어 있었다. 댄서는 춤 값으로 테이블을 돌며 팁을 요구하였다.

택시 타고 라 보카로 이동했다. 한 때 이 나라 축구영웅 마라도나가 거주했고, 그가 선수로 뛰었던 축구경기장이 있는 곳이 보카이다. 해안가에 위치한 이 지역은 배에 칠하다 남은 페인트로 건물 외벽을 원색의 다양한 책으로 칠한 것이 뭇사람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젠 부에노스아일레스를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둘러봐야 할 명소가 되었다. 겨우 수십 가구가 모인 한 블록 크기의 이 지역이 세계적 관광명소가 되어, 보카의 식당과 가게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식당마다 한 커플의 댄서와 가수가 나와서 땡고 춤을 춘다. 보카는 땡고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땡고는 아르헨티나가 원산인 세계적 춤이자 춤곡이다. 탱고는 유럽으로 넘어가 그 나라의 춤으로 토착화되었다. 스페인의 플라멩코, 투와 함께 추는 포르투갈의 탱고와 달리 아르헨티나의 땡고는 리드미컬하면서도 우울하고 춤이 진하게 느껴졌다.  저녁에 예정된 땡고 쇼는 기본 교습, 식사와 쇼가 포함되어 요금은 5만 8천 원이다. 식당에서 여러 댄서의 춤을 본 지라 흥미가 떨어진 체, 픽업 온 차량을 타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춤을 배울 수 있는 이층의  좁은 공간이 마련된 곳으로 안내되었다.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고 계속 예약자들이 모여들었다. 이스라엘,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7, 8개 나라에서 온 4, 5십 명의 관광객이 땡고의 기본 스탭을 한 시간가량 배웠다. 남자의 수가 적어 이 나라 저나라 젊은 처자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기회를 가졌다. 그중 2주간 휴가 온 핀란드 여 변호사와 여러 번 춤을 췄고, 저녁식사도 함께 하며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공연장은 좁은 무대에 식사를 할 수 있는 한 백석 미만의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다. 150년 된 건물에서 배치를 잘해서 공간 활용도가 높다. 풀 코스 식사로 스테이크가 맛있었다. 무제한 술과 음료 제공되었다. 식사만으로도 지불한 돈 값을 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춤의 변천과 남녀 간의 사랑을 담아 춤으로 표현했다. 나이 든 가수가 생 음악으로 스토리를 이어갔고, 네 명의 악사가 배경음악을 깔고 댄서는 무대와 관객석을 돌아다니며 춤을 췄다. 좁은 통로에서도 훌륭한 춤사위를 펼치니 땡고야 말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땡고의 발생지인 부에노스아일레스에서의 원조 탱고는 그 발놀림이 현란하다.  남녀 간의 밀착된 몸으로 그려내는 형상이 다채롭다. 어느 여행자는 땡고에 빠져 몇 달을 이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는데 공감 가는 얘기다.

  

핀란드 변호사와 Have nice tour 인사를 나누고 거의 11시 반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 1주일간 지구 최남단 우수아야 방문과 빙하 트래킹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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