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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Feb 11. 2021

지구 최남단 우수아이아로 출발

남미 여행 23

지구의 끝 우수아이아로 가기로 했다.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의 티에라 델 푸에고 섬 남단의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이다. 1869년 영국 선교사들이 거주하였고, 1873년 아르헨티나인이 이 도시를 방문함으로써 아르헨티나 영토로 귀속되었다. 1893년 백인 인구는 149명으로 늘어나고, 1911년에 이르러 이곳 원주민 야간 족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인구는 약 5만 명 정도이다. 우수아이아 기후는 겨울엔 평균 -1.3도, 여름엔 평균 9.6도로 툰드라 기후를 띠고 있어서 이곳 원주민들은 옷은 입지 않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불을 피워야 했다.  


아침 8시 반에 예약된 버스가 9시 20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아 서둘러 택시를 잡아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택시기사는 서둘러 달라는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운전 중에 이것저것을 뒤지고 딴전을 피우고 느리게 차를 몰아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속이 탔다.


공항에 도착해서 '서둘러 달라'는 안내원의 촉구에 빠른 수속을 마치고 10시 40분 항공 보딩을 기다렸다. 기계적 확인이 필요해서 11시 10분으로 항공기 출발이 연기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줄 서서 기다리던 관광객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대기의자로 흩어졌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대기줄이 형성되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우리만큼 급한 사람들이다. 좀 일찍 타려고 긴 대기줄을 만들고 비행기 착륙 때는 또 먼저 내리려고 모두 일어나 기다린다. 이번에는 안내조차 없이 12시로 출발시간이 바뀌었다. 시간이 다가오자 또 1시 15분으로 변경되었다. 일부 승객이 항의를 하는 둥 마는 둥 실랑이를 벌이다가 잠잠해졌다. 항공 출발 시간이 임의로 변경되는 상황이 현 이 나라의 정황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타국인인 나조차 심히 우울해졌다. 국가의 무능과 잦은 정책 변경에 이젠 국민조차 무관심해진 모양이다. 정치가 실종되고 국민이 가난해졌다. 달러로 부를 독점하는 기업과 개인이 늘어나 결국 국가부도 상태에 이르게 되는 꼴이 남의 나라 사정으로 그치길 비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2시간 반을 기다렸다가 항공기를 타고 3시간 반을 날라 지구 최남단 도시인 우수 아이아에 도착했다. 바다를 향하는 급경사 산비탈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병풍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등성이에는 눈이 덮여 있었다.  

그동안 작열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를 피하는데 익숙해진 두뇌의 작용에 반해, 몸은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기를 요구했다. 바깥 기온이 35도 열기에서 10도 추위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섬주섬 옷을 겹쳐 입고 호스텔 Yakush에 여장을 풀었다. 주인이 일본인인가?

저녁으로 탱고를 함께 춘 핀란드 변호사가 추천해 준 킹크랩을 먹으러 갔다.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기대로 충만해졌다. 어항에서 직접 선택한 4kg 킹크랩 두 마리가 붉게 서 나왔다. 굵기가 아이 팔뚝만 한 다리를 비틀어 몸통에서 떼어내는데 왈칵 누런 물이 흘러나왔다. 다리살은 다리통의 1/3 만큼만 붙어 있었다. 에라 그러면 그렇지. 나라가 이 모양이니 음식도 믿을 수 없구나. 이국에서 물렁 게로 바가지를 쓰고 말았다.

  

오늘은 이리저리 재수 없는 날이다. 항공기 지연, 킹크랩 바가지, 호스텔 여종업원이 방 키를 주지 않아 주방에서 20분간 대기. 그냥 비행기 타고 지역을 이동한 것밖에 없는 오늘 하루.


많은 좋은 날 후 하루 억울한 날. 모두 잊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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