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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Feb 17. 2021

해발 2850m 토레 데 아고스티니를 배경으로

남미 여행 27

아르헨티나와 맞닿은 칠레의 국경 바로 건너에 토레스 델 파이네를 상장하는 3개의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다. 북쪽으로부터 2,700m의 토레 몬시노, 2,800m의 토레 센트랄, 2,850m의 토레 데 아고스티니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탁 틔워준다. 주봉인 쿰브레 프린스팔이 3,052m로 가장 높다.

     

아침 6시에 해발 2850m 토레 데 아고스티니 등 3개의 토레(tower)가 나란히 있는 니도 더 콘도르를 향해 출발했다.

처음에는 평지라 수월하게 초원 위를 뛰노는 토끼를 보며 유유자적 걸었다. 평지를 지나 빙하가 녹아 흐르는 작은 개천 위에 설치된 다리를 건넜다. 시간이 갈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자갈과 바위로 된 언덕배기를 수없이 지나야 했다.

2시간 만에 제1 칠레노 산장에 도착했다. 목제 건물 두 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근처엔 여기저기에 1인용 텐트가 쳐져 있었다. 어제 늦은 오후 한나절에 도착했으니, 2시간을 더 걸어와서 이곳에서 잠을 잤으면 좋았을 걸. 국립공원 진입로 인근에서 텐트와 간단한 캠핑 도구를 빌려 준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칠레노 산장에서 2천 원에 뜨거운 물 한 통을 사서 준비해 간 컵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1시간 반을 더 올라 토레스 캠프를 지났다. 1시간을 더 올라가 Las Torres에 간신히 올랐다. 올라오는 동안 수 백 년 된 고목이 찢기고 부러져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햇빛이 비치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었다. 만년설이 녹아 형성된 작은 개천을 건너기 위해 마련된 나무다리를 아슬아슬 건너는 재미와 풍치를 즐겼다.

아센시오 계곡을 지나 수 백 년 된 고목이 쓰러져 있는 숲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코스는 아니다. 상당한 트레킹 강도로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특히 트래킹 출발지점에서 4시에 마지막 버스를 타야 하고, 그전에 도착해야 숙소에서 샤워라도 할 수가 있다는 조건을 지켜야 했다. 시간적 제약을 받게 되어 트래킹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4, 5시간을 걸어 오르고, 또 바로 지친 상태에서 하산해야 하니 발을 겹지를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토레스 산장까지 짐을 나르고, 때로는 등산을 포기하거나 부상당한 환자를 실어 나르는 말들

다리가 풀려서 토레스 산장부터 베이스캠프까지 말을 타고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내려가기로 했다. 토레스 산장에는 등산을 포기한 사람들을 태워갈 여러 마리의 말들이 기다린다. 이틀 후 승마 예약을 해 두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말 타고 내려갔을 것이다. 아쉽다.

토레스 델 파이네 산들은 1,200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융기되었다고 한다. 지각 변동이 일어났는지 의심할 정도로 정상부터 산 등성이까지 1/3 정도가 무너져 내린 흔적이 역력하다. 검으로 자르듯 검은빛의 산이 희고 붉은색으로 직벽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베이지 색은 화강암이고, 그 위를 덮고 있는 검고 푸른색은 점판암이다. 백악기의 퇴적암들이 빙하에 의해 침식되거나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제 아무리 웅대하고 수 억년을 버텨온 산일 지라도 자연의 직각 변동과 작용을 거스릴 수 없는 법이다.

목표 지점에 다달을 즈음에서 돌과 바위가 무너져 내린 가파른 산을 마지막 힘을 다해 올라가야 한다. 3개의 토레스, 봉오리 Tower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눈이 녹아 호수를 이루고 있다. 그 경치가 과히 4, 5시간의 힘든 트레킹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하다. 다들 이 경치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배낭객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내려올 때 등반 방향을 알려주는 작은 표시판에서 'Life is a long weekend.'이라는 글을 발견했다. 그렇다. 천상병 시인이 얘기했듯 인생은 잠깐 이 세상에 소풍 온 것이다. 사는 것이 빡빡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일만 해야 하는 weekday가 아니라, 그 일조차 기쁨과 재미를 주는 것으로 여겨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토, 일요일뿐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날이 주말이 되어 더불어 나누며 재미를 추구하며 함께 즐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트래킹 초반에는 그냥 묵묵히 스쳐지났다. 등산 중반부터 등에 땀이 차이고 이마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배인다. 이때부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올라, 하이, 헬로, 굿모닝 인사를 나눈다. 좁은 길에서 하산하는 등산객이 올라오는 승산객을 위해 잠시 멈추어 길을 양보하며 그라시아스 인사를 한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경쟁보다는 양보와 격려, 더불어 힘내서 함께 오르는 동행자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긴 주말과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여행을 통해 '인생은 긴 주말과 같다'는 깨달음을 가지길 있으면 좋겠다.


밤 10시 반에 칼라파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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