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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Mar 19. 2021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밀양 석굴사

동서들과 모임을 밀양 산내면 석굴사 앞 식육식당에서 가졌습니다.


9남매를 둔 밀양 박 씨 집안에 장가든 여섯 동서들이 분기별로 갖는 동서남북 모임으로 지난번 모임에 빠진 큰 형님 집 가까이에서 모였습니다.


석굴사는 내 결혼 초기, 그러니까 처가 식구들이 단란할 시절에 1박 2일로 모든 가족들이 염소고기 먹으러 온 추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토요일 저녁에 모여 염소 육회, 불고기, 고깃국을 먹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염소 뼈를 고아 구수한 곰국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식사 후에는 큰 해머  하나 어깨에 걸치고 계곡을 따라 산에 올랐습니다. 얼음이 언 계곡에서 제법 큰 바위를 해머로 내리치니 바위 밑에서 겨울잠을 자든 개구리가 충격을 받아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개구리를 기름에 튀겨 먹었던 기억이 생생한 곳입니다.


그땐 주 6일 근무로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친 후 출발해서 저녁에 만나는 가족 모임에도 다들 빠지지 앓고 참석해서 가족 간 우애와 재미를 함께 즐겼습니다. 밤을 꼬박 새웠고, 20여 명이나 되는 식구가 큰 방 하나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다들 사는데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고, 처가 식구나 동기간 우애도 줄어들어 만나도 전처럼 흥겹지  않습니다. 좋았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동서 간 모임을 별도로 갖기로 한 것입니다.


한 5개월 만에 나타난 큰 형님의 모습은 충격에 가까왔습니다. 머리칼은 희어지고 얼굴은 작은 상처와 마른버짐으로 부석거리고 눈은 퀭하고 이빨엔 고춧가루가 끼어져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술을 마셨던지 정신은 과거로 회귀해 좋았던 옛 얘기를 반복했습니다. 시간과 사물의 구분이 애매한 상태로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젊은 시절의 왕성한 활동을 접고, 외부인의 왕래가 드문 구만산 자락에 자리를 잡아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집만 덩그런히 클 뿐 사람 사는 온기가 식어있는 곳입니다. 상대가 없어 말이 줄어들고 행동반경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겠죠. 시름에 앓다 결국 깊은 우울증에 빠져버린 모양입니다. 의사 아들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가까이 보살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호전의 기회는 보이지 않습니다. 형님은 병원에 가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지만, 아무래도 처조카들에게 전화해서 병원으로 모실 것을 권해야겠습니다. 요즘 나이 칠십은 왕성하게 활동하는 청춘인데, 병원 치료로 회복하여 새로운 젊은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 형님을 구만산 댁으로 모셔야 하기에 동서 간 모임은 점심식사만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들 지속적인 운동과 식습관 조절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어 심혈관이 약해지고 어깨가 아프고 인대가 늘어나는 것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요. 조심해서 아껴며 살아간다면 한 90세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이제는 세상과 맞서 자신을 주장하기보다는 본인의 작은 즐거움과 행복을 찾을 나이가 되었습니다. 동서 간 서로 격려하며 함께 살아가 봅시다.


날씨가 풀리고 코로나 비상사태가 해결되길 바랍니다. 모아 둔 회비로 가까운 해외여행이나 하면서 동서 간 함께 살아가는 재미를 더해 보자는 약속을 하며 헤어졌습니다. 큰 형님을 모셔 드리고, 둘째 형님과는 잠시 석골사에 들리기로 했습니다. 석골사로 올라가는 길은 옛길 그대로 좁았고, 오른쪽은 길 따라 계곡이 이어졌습니다. 중턱에서 옛날 1박 2일 동안 흑염소 고기 먹고 개구리 튀겨 먹던 그 집이 옛 모습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좋았던 옛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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