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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Mar 21. 2021

달콤한 고구마, 그 용도에 관하여

군 고구마의 맛이 꿀맛이다. 실제 '베니 하루카'라는 품종을 꿀고구마라고 부른다. 당도가 어느 과일에도 못지않게 높다. 식감과 향기도 며칠 전에 사서 먹은 칠레산 애플망고에 버금간다. 에어프라이어에서 막 꺼낸 고구마는 타지도 않고 속이 촉촉해서 이맘때 간식으로 먹기에 최적이다. 껍질을 깐 속이 노란 군고구마는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돋는다.

간식거리가 귀했던 어릴 적에 누이와 나는 10여 리 떨어진 고모집을 자주 갔다. 한참을 비포장 도로를 걷다가 버스나 짐차가 달려오면 도로 바깥쪽으로 돌아서서 몸을 움츠렸다. 차가 지나고 나면 덮어쓴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한 5리를 걸은 후부터는 도로 옆 논둑으로 접어들었다. 논둑길을 걷다가 때로는 메뚜기도 잡기도 하고, 논바닥에 고인 물이 언 얼음 위를 달려 미끄름을 타기도 했다. 조그마한 내를 지나 고모집에 닿으면 마당 한쪽 채반 위에서 늦가을의 햇볕을 받아 말라가는 고구마 빼때기가 우리를 기다린다. 꾸들꾸들 말라가는 고구마 빼때기가 어린 나와 누이를 먼 고모집까지 오게 한 이유 중 하나이다. 고구마를 수확하면서 큰 놈들은 선별하여 겨우내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광에 저장하지만, 손가락만치 가늘고 작은 고구마들은 버리기엔 아깝고 쪄먹기에는 어중간하다. 고모는 가는 고구마의 흙을 털고 물에 깨끗이 씻은 후 쪄서 채반에 널어 말렸다. 이때쯤 어린 조카들이 먼 곳에서 걸어와서 고모에게 인사는 대충 하고, 바로 채반으로 달려가서 먹기에 좋을 정도로 마른 고구마 빼때기를 골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입을 다시는 것이다. 훗날 고모님은 당시엔 먹을 것이 귀해서 자주 오는 조카들에게 내어 줄 것이 없어서, 고구마 빼때기라도 만들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시간이 흘러 누이가 결혼을 하고, 나도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바쁜 생활을 하는 동안엔 고구마 빼때기에 대한 기억이 깊이 감추어져 버렸다. 시간이 흘러 가족이 있는 부산으로 이동하기 위해 다른 직장으로 옮긴 후, 몇 해가 지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말에 시간이 나면서부터 재미 삼아 주말 농장에서 농사를 지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몇 가지 채소를 심었다. 고구마도 그중 하나였다. 둔덕을 높이 만들고 고구마 순을 사서 심었다. 고구마 잎과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 가을에 풍성히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주말농사를 짓는 가족이 여럿이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주말농사를 짓는 사람들끼리 자주 모여 채소 기르는 재미와 경험에 관해 자주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최고 연배의 엄형제 님께서 다음 주 토요일엔 자신의 텃밭에 한번 같이 가보자고 했다. 고구마를 심었는데 100년에 한 번 핀다는 고구마 꽃이 많이 피었다는 것이다. 고구마 꽃을 볼 수 있는 귀한 기회이고, 꽃말이 '행운'이니 반드시 가 보겠다고 약속했다. 토요일에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니, 낮은 산 언덕을 개간하여 올해 처음으로 고구마를 심은 텃밭이었다. 이곳저곳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원통형의 꽃잎에 자줏빛 속살을 내비친 고구마 꽃은 나팔꽃을 그대로 닮았다. 이 텃밭의 경우는 흙속에 수분이 부족해서 뿌리로 가야 할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운 것 같았다. 원래 고구마 꽃은 남아메리카의 아열대 기후에서는 흔히 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30도 이상의 날씨가 지속되는 이상 고온 현상으로 아열대 환경과 비슷해지면서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고구마 꽃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 행운이라는 꽃말과 달리 이상 기후의 지표이자 지구 온난화의 경고로 받아 들려야 할 것 같다.

가을이 무러 익어갈 때쯤 고구마 잎도 노랗고 붉게 물들어 갔다. 먼저 낫으로 고구마 줄기를 잘라내고 비닐을 걷어 냈다. 삽과 호미를 이용하여 고구마를 캤다. 잡초 방지용 비닐 속 땅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골이 깊고 흙이 부드러워야 고구마가 많이 달린다고 했는데, 실패인가? 무성한 잎과 줄기와는 달리 고구마 굵기가 잘았고 개수도 적었다. 농사도 경험과 know-how가 필요했다. 수개월 동안 정성 들여 키운 작물이라 손가락만 한 크기의 고구마도 주워 자루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집 앞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고구마를 쏟아부었다. 갖 캐어 낸  고구마의 습기를 말려야 고구마를 썩히지 않고 보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구마를 수확하면서 잘라 온 고구마 줄기의 껍질을 깠다. 줄기가 연하고 잘 부러져 껍질 까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몇 시간동안 껍질을 까다가 포기했다. 다음 날 아내는 고구마 줄기를 삶아 참기름, 다진 마늘과 간장을 넣고 볶아 맛있는 고구마 줄기 볶음을 만들었다. 사각거리는 식감에 감칠맛나는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그 날 저녁엔 삶은 고구마 줄기를 깔고 고등어를 얹고 양념을 뿌려 조렸다. 싱싱한 고등어 살도 맛있었지만 잘 양념된 고구마 줄기가 더 맛있었다. 그리고 며칠간 습기 제거를 위해 펼쳐진 고구마가 베란다 한쪽으로 치워져 방치되고, 아깝다고 주워 온 손가락 크기 고구마는 말라비틀어져 갔다. 고모님처럼 고구마 빼때기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시중에서 건강식품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고구마 말랭이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동남아 여행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말린 망고를 여행 선물로 사 왔다. 달고 쫄깃쫄깃 식감도 좋아 간식거리로 즐겼다. 몇 사람들은 비슷한 식감과 맛을 내는 고구마 빼때기를 생각해 냈다. 어릴 적에 먹었던 고구마 빼때기 맛이 말린 망고 맛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리고 대량으로 고구마를 생산하는 해남이나 김제 등에서 고구마 판매량을 늘이기 위해 고구마를 쪄서 말려, 말린 망고처럼 팔았다. 어릴 적에 고구마 빼때기를 먹었던 사람들은 익숙한 맛의 고구마 말랭이를 사 먹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사서 집에서 직접 고구마 말랭이를 만드는 가정도 늘어났다. 그 쯤에 나도 '리킴'이라는 건조기를 샀다. 왕 고구마를 싸게 사서 찌고, 잘라 건조기에 넣어 하루 정도 말리면 노란 고구마 말랭이가 되었다. 고구마 10kg를 말려서 비닐 주머니로 두 개쯤의 말랭이를 만들어 하나는 냉동실에 넣고 하나는 냉장실에 넣어 놓고 수시로 꺼내 먹었다. 그전에 사서 먹었던 딱딱한 고구마 칩은 어떤 기름에 튀겨냈는지 위생상 걱정이 있었지만, 고구마 말랭이는 직접 만든 것이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건설회사에 다니던 자형이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사과 과수원을 하고 있다. 사과 농사는 손을 많이 타서 잠시라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전지를 하고 화분을 시키고 사과 꽃을 추려내야 한다.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엄지손톱만 한 사과를 골라 따내야 가을에 굵은 사과를 수확할 수 있다. 풀을 베어내야 하고 영양제를 공급하고, 병충해 예방을 위해 유기농 약제를 뿌려야 한다. 바쁜 누이는 집 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채소를 가꿀 시간이 없다. 작년 5월 연휴에 형과 함께 누이 집에 가서 누이 대신 고구마를 심었다. 30cm쯤 되는 고구마 순을 비스듬히 묻어 주었다. 땅에 묻힌 줄기 아래로 뿌리가 내려 영양분을 저장할 것이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누이집에 가서 일손도 돕고 쉬면서 매일 고구마가 자라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추석 연휴 때 다시 가서 고구마를 수확했다. 20kg 사과 박스로 5 상자정도 수확을 거두었다. 이만하면 수확물이 많은 편이라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번에도 고구마 줄기를 추려왔다. 어머니, 형수, 조카, 누이 등 여럿이 붙어 고구마 줄기 껍질을 깠는데도 진도가 느렸다. 껍질 까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꾀를 내어 고구마 줄기를 뜨거운 물에 한번 되치기로 했다. 어차피 익혀 먹을 것인데 살짝 삶는다고 해서 무슨 해가 되랴? 예상한 데로 줄기가 부러지지 않고 껍질이 잘 까졌다. 껍질이 제거된 고구마 줄기가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고구마 한 상자, 누이가 직접 담궈 건네주는 전라도식 고구마 줄기 김치, 껍질을 깐 고구마 줄기를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러 차례 고구마 줄기 고등어조림을 만들고, 고구마 줄기 볶음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5천 년 전부터 길러졌던 고구마는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고구마라는 이름도 일본말 '고귀위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구마는 1600년경 중국에 전해진 후 일본 오키나와로 전해졌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1663년 김여휘 등의 백상들이 일본 오키나와에 표착하여 껍질이 붉고 속이 희며 맛은 마와 같은 식품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고구마 재배를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이다. 1763년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부산 동래에 심었는데 월동 방법을 몰라 모두 얼어 죽었다. 1764년 동래부사 강필리가 대마도 사람에게서 종근을 구해 동래와 영도에 심어 재배에 성공했다. 그 재배법을 기록한 책자를 발간함으로써 고구마가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못하고 있다. 집에 머무면서 자연히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입이 심심해서 간식을 찾을 때가 많다. 누이 집에서 가져온 사과 대신 껍질 까기 쉬운 오렌지를 주문했다. 애플 망고를 주문해서 먹다가 고구마를 주문해서 구워 먹어 보았다. 연탄불이나 장작불에 구운 고구마는 타서 눌어붙기도 하고  껍질이 타서 손과 입이 더러워지는데, 요즈음은 에어 프라이어가 있어서 쉽게 깔끔하고 맛있는 고구마를 구울 수 있다. 군고구마의 맛이 꿀맛이다. 이쯤 되면 애플 망고 대신 군고구마로 간식을 대신해도 부족함이 없겠다.


 군고구마를 먹고 있노라니 옛 생각이 나서 이런저런 기억을 되살려 고구마의 용도에 관해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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