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를 낚을 생각으로 들떠 낮은 숙면을 취하던 남자들은 새벽 5시에 맞혀진 휴대폰의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바다낚시를 하고 싶어 하는 자형과 조카가 종일 비 오는 가운데 낚시를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한 누이가 두 남자를 달래기 시작했다. 비를 맞아 감기 몸살이 날 것이니 가지 말라는 거듭된 설득에 조카는 낚시를 포기했다. 세상 어느 곳에나 남자의 갈 길을 아녀자들이 막아 나서고, 여자들의 말을 잘 따르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야 편하단다. 여자와 다투어 이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티격태격한다.
이른 새벽 아침을 먹고 낚싯배에 올를 때 제법 굵은 빗방울이 바다 표면 위로 뿌려지고 있었다. 졸망졸망한 대마도의 섬들을 헤쳐나가 수평선이 보일 때쯤, 크게 일렁이는 여울이 잠잠하던 바다를 깨우며 시샘하듯 우리의 낚시를 막아섰다. 하지만 누가 우리의 의지를 막을 수 있으랴.
옆 그룻 나루 머리칼이 하얗게 센 선장님이 배의 앙카를 내리고, 밑밥 새우 그물망을 배의 옆 언저리에 묶었다. 쫓고 쫓기는 물고기와 싸움이 시작되었다. 준비해 간 채비를 펼쳐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는 순간에도 장대비가 내렸다. 시야가 아득했다. 무슨 상관이람? 비옷 아래 피부로 내리 꼽는 굵은 빗줄기로 인한 통증을 느끼면서 물고기를 낚는 기분도 상쾌할 수 있을 것이다. 대어만 낚을 수 있다면. 그러나 전혀 입질조차 느끼지 못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선장님은 익숙하게 물고기 몇 마리를 끌어올렸다. 눈길이 마주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칭찬을 했더니만, 씩 미소를 짓는 선장님이 그제사야 공치는 우리들 낚시채비에 관심을 표하며 시스템을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밤에 채비했던 3B 수중 찌 대신에 V자형 수중 부력 고무로 교체하여 채비가 수면 상층부에 떠다니게 해 주었다.
흰 살 벤자리 회는 쫄깃거리는 식감이 뛰어나다.
채비를 바꿔 낚시를 드리우고 낚싯줄을 견제하지 않고 줄을 살살 풀어 주었더니 드디어 획 잡아당기는 어신이 왔다. 은근히 대어가 물려 릴이 역회전하면서 낚시 줄이 더 풀려 나가길 바랐지만, 낚싯대만 크게 휘면서 물고기가 천천히 끌려 왔다. 40cm 쯤되는 벤자리가 첫 수였다. 국내에서 벤자리는 6월쯤에 제주도에서나 회로 먹어볼 수 있는 귀한 고급 어종에 속한다. 서귀포에서는 찰지고 담백한 맛이 좋아 여름 최고의 횟감으로 벤자리를 꼽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양식이 되지 않아, 수족관에 벤자리가 보이면 회를 먹을 수 있는 횡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난류성 물고기로 해초류가 많은 암초 지대에 무리를 지어 서식하는 벤자리는 30cm 미만은 ‘아롱이’라고 하고, 40cm가 넘는 월척은 ‘돗 벤자리’라고 불린다. 연이어 어신이 들어오고, 간혹 벵에돔도 올라왔다.
벵에돔. 아가미 끝에 검은 줄이 그어져 있으면 긴 꼬리 벵에돔
낚시에 능한 형님은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견제를 하며 조심스럽게 낚싯줄을 흘렸다. 동행한 자형도 낚싯대를 드리우지만 초보인지라 손맛을 보지 못하고 이었다. 더구나 비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아 바지가 비에 흠뻑 젖고 말았다. 다행히 가스 스토버가 있어 낚시를 포기하고 온 몸을 녹이며 처남들의 낚시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얼마쯤 지나 형님도 감을 잡았는지 벤자리와 벵에돔을 수차례 낚아 올렸다. 그리고 얼마 후 입질이 멈추었다. 물살이 흐르지 않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낚싯줄이 풀리지 않는다. 물고기가 입질을 안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장님이 '시마이'를 선언했고, 우리는 낚시 릴을 감아 철수를 준비했다. 비를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바다 표면을 때리듯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대마도 섬들과 큰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배를 세우고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이곳에는 조류의 흐름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몇 마리를 더 낚았지만 낚싯줄이 좀처럼 풀려 나가지 않았다. 한 번은 낚싯줄이 풀려나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줄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끝까지 풀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200m 릴에 감긴 마지막 줄까지 풀고 난 뒤에 되감기 시작했다. 먼바다로 향하던 줄이 감기면서 중간부터는 줄이 배 오른쪽으로 역방향에서 끌려오기 시작했다. 새우가 끼여있는 낚싯바늘은 가라앉아 뱃전 뒤에 있는데 상층 부위 조류는 먼바다 쪽으로 흘러간 것이다. 묘한 기분으로 줄을 감다가 문득 어신을 느껴 릴을 조심스럽게 감았다. 다급히 감으면 약한 벤자리 입주둥이가 터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줄을 다 감고 보니 낚시 바늘에 벵에돔 한 마리가 걸려 있었다.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모양새이다. 비는 계속 내렸다.
한꺼번에 새우 세 마리를 미끼로 끼우고 낚싯줄을 드리우니 낚싯줄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풀리다가 나중에 줄이 느슨해서 손으로 잡아당겨 봤다. 전혀 저항감없이 줄이 당겨오고, 계속 당겨보니 원줄의 마지막 표시인 V자형 부력 찌가 바로 배 근처에서 올라왔다. 조류가 멈추고 있다는 징표다. 선장님에 말에 따르면 비가 계속 많이 와서 수면층의 바닷물 염도가 낮아져 상부층과 하부층의 조류가 이중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젠 조류가 멈춰 미끼의 활성도가 떨어져 물고기에 대한 유인이 어렵다. 더 이상의 낚시는 무의미하다. 이것으로 오늘 선상낚시는 정말로 시마이.아침 6시에 출발해서 11시에 낚시를 마쳤다.
비는 쉼 없이 내리고 거세게 비옷을 두드려 속옷을 모두 적셔 놓은 듯 한기를 느끼게 했다.
오늘 선상 낚시의 최종 수확물은 3,40cm대 벤자리 11마리, 2,30cm대 벵에돔 13마리. 대형 아이스박스에 벤자리를 깔고, 그 위에 벵에돔을 차곡차곡 쌓고 얼음을 채워 집으로 가져왔다. 대마도 낚시가 좋은 것 하나는 잡은 물고기를 세관원의 통제를 안 받고 집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 집에서 큰 대야에 부어 식구들에게 보였다. 다들 너무 많이 잡았다고 놀라워했고, 조카는 함께 낚시 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직장 근무로 동행하지 못한 아들은 바로 회를 처먹자고 부추겼다. 하지만 몸도 피곤하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서울까지 가야 하는 조카들을 위해 이만 정리해야 했다. 벤자리와 벵에돔 조림을 맛보기 위해 4마리만 남기고 35리터 아이스박스에 가득 채워 누나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은퇴 후 서울생활을 접고 문경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누이가 비늘을 치고 소금 쳐서 한 이틀 동안 깨끗한 공기에 말리면 그 맛이 최고가 될 것이다. 당일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그 날 말리면 그 맛이 절정에 달하는 법이다.
이번 가족과 함께 낚시와 관광을 목적으로 떠난 대마도 여행은 비바람으로 차질을 빚고 말았다. 다행히 마지막 날 먹을 만큼 물고기는 낚았지만, 맛집에 들리고 쇼핑을 하고 이색 풍광을 즐기려던 우리 여자분들의 기대는 져버렸을지 모르겠다. 여건에 따라 여행 일정이 변경되더라도 받아들이고 즐겼기를 바랄 뿐이다. 이다음엔 모든 것이 준비된 패키지여행을 계획해서 가족이 뭉쳐 행복한 시간을 즐길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