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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n 06. 2020

한반도에 몽골의 피가 흐른다

몽골, 두 번째 이야기

몽골인이 주로 믿는 종교는 티베트 불교에 속한다.

세상의 근심이 있거나 즐거움이 계속되길  빌고 싶을 때

직접 불경을 읽는 대신 사원에 들러 경전이 새겨진 드럼을 굴린다.

절 건물 내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크기의 부처님이 우뚝 서 계신다. 키가 한 20m 되어 보인다. 머리를 뒤로 제쳐 부처님을 우러러  볼 때 인간의 미약함을 느끼고 스스로 겸손해질 법하다. 부속건물에는 어린 동자승과 큰 스님들이 마을 주민들과 마주 앉아 불경을 암송하고 있다. 신자들이 요청한 질고와 어려운 형편을 해결하기 위해 스님이 관련  불경을 목소리 높여 외우고 주민이 듣는다. 나팔과 징을 치는 모습은 TV에서 본 티베트 스님의 집단적 불경 외우는 모습 그대로다. 때 자국이 흐르는 낡고 붉은 승복을 입은 스님들의 집단적 기원으로 신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으니 앞에서 합장하고 있는 신자들의 표정들이 온화하게 바뀌고 있다. 종교적 기원으로 몽골인의 마음을 순화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가 걱정이 되었다. 어려운 상황을 초연한 듯 보는 이 스님들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다고 하는데, 이 스님들의 세상적 고민은 누가 해결해 줄  건가?

몽골이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1727년 옹정제 시대에 건설되었다는 간등사원


박물관에 들렀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나의 눈에는  유사 이전에  그린 벽화들이 들어왔다. 그중 소 그림은 현대의 회화를 능가할 정도로 현란한 기법을 사용해 놀랐다.

박물관 기록에 따르면 80만 년 전부터 몽골엔 인간이 살았단다. 그중 우랄 알타이 계통의 인종 한 분파가 극동 아시아로 이동하였고 한반도에 이르러  정착했다. 그 결과 몽골인과 한국인의 외모는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다. 어순이 같고 엉덩이에 푸른 몽고반점을 같이 가지고 있다. 세상을 자신의 말발굽 아래 놓았던 칭기즈칸. 흉노족이라  부르던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중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기도 했다.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이 기운을 잃어 분파 세력들이 훑어질 때  한 갈래가 우리 경상도 지역에 다 달았단다.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때가 신라의 내물왕 시기다. 4세기경 몽골족 선비 모용족이 신라에 정착해 김 씨 성을 얻고 김알지라는 이름으로 지배계급 자리를 차지했다.  그 후손이 마침내 왕이 되었고 그가 내물왕이다. 신라 토착 왕가의 맥이 끊기고 모씨가 신라왕으로 통치하다  법흥왕 때가 되어야 다시 토착 김 씨가 왕가를 되찾게 된다. 이 외에도 몽골의 한 갈래는 제주도에 정착하여 날쌔고 힘이 좋은 몽골말을 생산해 내기도 했다. 이 사실은 내가 몰랐던 한반도에 몽골 피가 흐르는 역사적 내역이다.   

강렬한 황색과 붉은색의 뼈대 있는 필선과 필획을 이용해 강한 인상과 감동을 주는 이 중섭의 황소와 너무나 비슷한 느낌의 유사 이전의 회화
그 옛날엔 오직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석기시대 인간들의 주요 회화의 주제는 먹거리이며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인 동물이다.  

 

지금도 몽골과 한국은 친분이 깊다. 몽골 정부는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도입하여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많은 몽골인이 한국에 유학을 다녀왔다. 이곳에서 만난 다수의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해 번 돈으로 자녀를 교육시키고  집을 샀다. 이들은 유학시절에 배운 한국어로 몰려드는 한국인들의 관광 가이드가 되어 현지 월급의 20%에 해당하는 돈을 하루에 벌고 있다. 울란바토르 도심지 내에는 500m나 되는 서울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한국식당, 호텔과 각종 가게가 즐비하여 현지인과 관광객이 넘쳐나는 이 도시의  활동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몽골 전통 뷔페식당에 들렸다. 마침 어린이 생일 파티와 어르신 생신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연로하신 집안 생신에 친척과 이웃이 몽골 전통복장을 차려입고 함께 모여 축하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한국과 다름없었다. 어르신을 경외하는 풍습이 보기 좋았다.

뷔페식당의 음식 종류와 질에 비해 인당 만 오천 원 가격이 현지  수입에 비하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울란바토르 시내인근 부자동네에 해당하는 지역 언덕에 조성된 자이성 공원에 올랐다. 1925년부터 1940년대까지 몽골과 중국은 전쟁을 벌렸다. 막대한 군수물자와 군인을 지원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준 러시아에 감사의 표시로 울란바토르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승리를 표시하는 조각물을 세웠다. 기술과  생산시설이 부족한 몽골은 여전히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보다도 러시아와 친분이 깊다. 30년 전까지 많은 러시아 기술자들이 이 도시에  거주하면서 기술을 전수하며  생산시설을 건설했다고 한다.


세계를 제패했던 칭기즈칸 이후의 몽골은 어떠한 시련을 겪었을까?   

조상인 훈누, 그 후 돌궐, 위그루, 거란을 거쳐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은 기운을 잃은 후 17~20세기까지 200여 년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한 후 1921년부터 1990년까지 사회주의 국가로  살아오다가 1990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몽골에 개혁의 길이 열렸다.  짧은 발전의 기간을 거쳤지만 여전히 사회적 인프라와 생산기술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국토의 18배에 해당하는 광활한 대지에서 생산되는 기름과 철광석은 풍부하나 제대로 활용이 되못하고 있다. 정제와 재련 기술이 없어 원물로 싸게 수출하여 정제된 생산품을 비싼 가격으로 수입한다. 그래서 물자가 귀하고 나라는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IMF 금융지원금과 국가에서 발행한 정크본드를 올해 갚아야 하는데 재정이 부족한 정부는 다시 대규모 금융 본드를 발행해야 할 지경이란다.


그래도 수도인  울란바토르  곳곳에는  높은 건물과 아파트 공사가  벌어지면서 빠른 발전을 꾀하고 있다. 부족한 자재와 부품을 메꿀 물자의 수입을 기다리며 공사가 중단된 곳이 많아 보인다. 도심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겨울난방을 위해 갈탄을 때고 있어서 도시 전체가 매연과 메케한 연기로 가득 찬다. 특히 겨울엔 숨을 쉬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도시내 높은 건물, 호텔과 아파트의 난방방식은 열병합발전소에서 덥힌 온수가 건물에 공급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호텔방에는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가 보이지 않았다. 도시내 모든 빌딩과 호텔 방의 실내 온도가 같다. 문제는 열병합 발전소가 도시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울란바토르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하는 4개의 열병합 발전소가 모두 도시 인접해 있다. 이 도시의 하늘을 부옇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러시아 기념탑이 서있는 자이 성에서 내려 다 보이는 울란바토르 바로 옆, 두 개의 발전소 초대형 굴뚝에서 끊임없이 회색빛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한국 포스코 건설과 합작으로 제5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하지만 협의과정이 순조롭지 않는 모양이다.

정부는 도시의 공해를 줄이기 위해 전기난방을 권하고 있단다. 저녁 9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전기가 공짜라고 하니 한국의 전기요와 전기담요가 인기를 얻겠다.


저녁을 먹기 위해 샤브샤브 맛집으로 유명한 The bull로 가는 길은 온통 차로  뒤덮여 있었다. 대중교통수단의 부족으로 집집마다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도시의 인구는 늘어나고 도로는 그대로니 교통지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신호등과 중앙차선 무시, 양보는 절대 금지. 조그마한 틈만 보이면 끼어든다. 그러다  보니 새 차가 아니면 차가 긁히거나 찌그러지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U턴하는 차를 피해 좌회전해 들어온다. 아슬아슬하게 공예하는 모습이 놀랍다. 중앙선 넘어 달리는 차들 틈을 치고 들어가는 운전의 귀재들에게 수차례 감탄을 보냈다.

    더 불의 내부 장식은 화려한데 음식의 맛은 한국에 비해 떨어졌다. 소고기, 말고기, 양고기,... 노린내를 없애지 않아 한국인에게 조급 역겹게 느껴진다.  생짜 그대로이다. 가이드는 전통음식이긴 하나 일반 가정에서는 좀처럼 해  먹지 않는다고 한다. 샤브샤브가 한국에서 역수출되지 않았나 싶다. 참깨  소스는 한국에서 개발된 것이 아닌가? 육수, 몽골에서 귀한 편인 야채, 국수와 볶음밥, 사이드 디쉬  등 개별적으로 주문해야 한다. 합치면 월 50만 원에서 75만 원쯤 버는 현지인이 먹기엔 만만한 않을 것이다.


물론 현지인의 생활이 빈곤하거나 부족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7년간 유학하며 부인과 돈을 벌어 이 도시로 돌아온 가이드는 그 돈으로 1만 불짜리 아파트를 샀단다. 지금은 4만 불로  올랐고, 대출받아 산 아파트를 임대 주어 월 30만 원 정도의 임대소득을 받고 있다. 도시 주민의 대부분이 그렇듯 가이드도 근교에 50m * 50m 부지에 목재로 된 여름 집을 가지고 있다. 주말에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여름 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하루를 즐긴다. 자녀의 방학기간에 가서 거주한다.  특히 난방을 위한 갈탄 사용으로 공해가 심한 겨울철에는 도시를 떠나 머무는 곳으로 사용된다. 이 여행이 끝나기 전에 가이드 여름 집에 들러 유유자적하는 삶을 확인해 봐야겠다.


내일은 일찍 출발해서 말을 타고 몽골의 넓은 들판 위를 달려 보고,

전통음식 허르헉을 먹어  것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 온통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는 곳,

그곳 테를지를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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