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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May 31. 2021

제주도에서의 벵에돔 낚시(2)

섭섬에서

아침에 일어나 숙소 거실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어제는 돼지고기, 무우채, 콩나물, 파절임, 김치와 마늘을 넣어 볶는 제주 특유의 두루치기로 저녁식사를 하고 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캄캄한 밤이라 확인하지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로에는 야자수가 심어져 있고, 그 틈 사이로 어제 낚시를 즐겼던 범섬이 보였다. 동남아 어느 리조트에서 봄직한 경치다.

어젯밤 E마트에서 사 온 김밥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어제 잡아 숙성해 둔 긴 꼬리 벵에돔 회도 곁들였는데. 식감이 찰지고 맛도 훌륭했다. 오늘은 광장 낚시점 주인이 섶섬을 추천해 주었다. 섶섬은 보목포구 지척에 있는 섬으로 상록수림으로 뒤덮여 있어 숲섬으로 불리었던 섬이다. 천연기념물 제18호인 파초일엽의 자생지이기도 하다.

섭섬에는 한 가지 전설이 전해 온다. 섭섬에는 용이 되고 싶어 하는 커다란 귀가 달린 붉은 뱀이 살고 있었다. 3년 동안 용왕에게 소원을 빌고서야 '섶섬과 자귀도 사이에 숨겨놓은 야광주를 찾아오면 용이 될 수 있다'는 약속을 받게 된다. 끝내 야광주를 찾지 못한 뱀은 죽고 말았다. 그 후 비가 오려면 섭섬 정상에는 안개가 끼었고, 사람들은 죽은 뱀의 조화라고 생각했다. 부락에서는 매달 초사흘날과 초여드레 날에 제사를 지내 주었으며, 제주도에 있는 뱀의 사당을 '여드렛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섶섬을 '줄푹도' 또는 '사도'라고 불렀다.    

산호가 잘 발달되어 있는 범섬, 문섬, 섭섬 바닷속

보목항에 도착하니 다이빙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부지런히 장비와 산소통을 배에 싣고 있었다. 이 일대 범선, 문섬, 섭섬 인근 바다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호초를 즐길 수 있는 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하다. 그래서 많은 다이버들이 이 지역을 찾아온다. 부산 앞바다나 동해 바다 밑으로 다이빙해서 들어가면 바위들이 하얗게 변해서 해초나 생물이 살지 못하는 백화현상이 나타난다. 생태보호가 절실하다. 대부분의 다른 곳도 산호는 없고 키 작은 해초만 보인다. 보통 다이버들은 해삼을 줍고 멍게를 따거나 작살을 들고 물고기를 찍으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 더러는 경비를 모아 필리핀 바탕가스나 보홀까지 가서 다양한 모양과 색상, 수 m나 되는 산호를 보고 즐긴다. 나도 한 때 다이빙을 즐겼으나 언젠가부터 '무섭다'는 생각이 든 후부터는 다이빙을 포기하고 말았다.  

내게 섭섬은 고슴도치처럼 보인다. 섭섬보다는 고슴도치 섬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아침에 숙소에서 바라다본 바다는 잔잔했으나, 포구에서는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다. 섭섬 갯바위에 도착하자마자 낚싯대를 드리웠고, 친구 분들이 채비를 하는 동안에 볼락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첫 조짐이 좋다. 하지만 시작은 좋았으나 오랫동안 입질 한번 없다. 발아래에 친 밑밥에 새까맣게 몰려드는 자리돔은 인근을 맴돌다가, 찌 주위로 던진 한 두 스푼의 밑밥을 먹으려고 찌 주변으로 몰려든다. 정작 찌는 꼼짝하지 않는다. 볼락만 몇 마리 더 올렸을 뿐, 벵에돔의 확신한 어신은 오지 않았다.

김밥과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부지런히 밑밥을 쳐도 벵에돔은 어디를 갔는지 감감무소식이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다. 오는 6월 중순에 강의를 듣는 광운대학 학생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와서 현장 낚시 수업을 할 것이라는 낚시 박사, 민 프로님도 계속 빈 낚싯대만 드리우고 있었다. 아무리 낚시 박사이고 프로에다 명인이라고 할 지라도 고기가 물어주지 않는데 별 수가 있겠는가?


낚시는 되지 않고, 배가 섶섬 앞 다이빙 포인트에 다이버들을 빠트리는 것을 묵묵히 바라다보았다. 다이버들이 물 위로 솟구치고, 배가 이들을 싣는 약 3,40분 동안 한 번도 어신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저녁 무렵이 되었다. 경험상 낚시가 잘되는 시간대가 왔다. 하지만 일기예보의 예측대로, 하늘이 검게 짙어지고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뿌려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긴 꼬리 벵에돔 각 한 마리씩, 겨우 세 마리 잡고 철수하기로 했다. 우리가 자리를 뜨자 옆에서 낚시를 놓던 사람들이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두 사람이 동시에 어신을 받아 낚싯대를 재빨리 낚아챘다. 낚싯대가 크게 휘었다. 꽤 커 보이는 벵에돔이 낚싯대에 매달려 있었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고문님은 '우리는 낚시하러 왔지, 물고기 잡으로 온 것이 아니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건넸다. 배가 포구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강해졌다. 하마터면 꼼짝하지 못하고 비를 흠뻑 맞았을 것이다. 고기를 못 잡았더라도 철수하는 것이 바른 판단이었다.


우리는 낚시를 즐기러 왔을 뿐이다.

부산 앞바다나 거제 바다나. 서귀포 앞바다나 모두 똑같은 바다다.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기분으로 낚시를 즐겼는지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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