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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26. 2021

취미, 그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취미는 전문적인 것이 아니라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다.

효율성이나 숙련도와 상관없이 자기가 즐겁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취미이다.


취미생활에는 비용이 지불된다.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수월하다.

비용을 투자하면 더 가치를 부여하는 속성이 있어

깊게 빠지게 되면 투입되는 비용의 규모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더 좋고 비싼 것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비용과 투자 대비 효율성이 정비례하지 않는다.

금적적 부담이 없는 취미도 다양하므로 자기 수준에 맞는 선택이 필요하다.


경제적 뒤받침이 되더라도 시간이 없으면 취미 생활을 할 수 없다.

미술, 악기나 스포츠 등은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만족을 못하게 되고 즐길 수도 없다.

시간을 투입하고 제대로 즐기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하는 가운데 몰입을 경험하게 되는데,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본인은 수채화를 배우고 있는 중인데,

8시간 동안 몰두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깨닫지 못했다.


취미가 있다면 사회성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같은 취미를 즐기는 온라인 동호회가 활성화되어 있다.

동일한 취미를 가진 자들이 모여 인간관계도 넓히고 재미도 키울 수 있다.

골프동우회를 통해 몇 번 낯선 이들과 라운딩을 한 적이 있고

몇 년 전에는 온라인 남미 커뮤니티를 통해 40일간 남미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       




난 비교적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며 여가를 즐기는 편이다.

취미 활동은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사는 재미를 추가해 주고

살아가는데 윤활유 역할을 한다.


몇 년 동안 주말농장에서 농작물을 키우다가

이제는 문경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누이집에 가서 일손을 돕는다.

사과꽃을 따내고 사과알을 키우기 위해 작은 사과들을 솎아내고, 가을에 사과 수확을 돕는다.

내 손길이 간 사과가 자라나고, 가을에 사과를 수확하는 즐거움이 있다.

고추 모종을 심고 곁가지를 추려내고, 가을 언저리에 홍고추를 딴다.

고구마 줄기를 심고, 시험 삼아 뿌리 근처 줄기를 흙으로 덮었다.

올 가을엔 그 줄기에서 고구마가 달리는지 지켜볼 것이다.

농작물은 농부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데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내 손길을 간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이 대견하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수년간 수채화를 배우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 느리게 깨달아 가는 것들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 그리는 동안 몰입하게 되므로, 그 시간에 모든 부담과 세상의 근심이 사라진다.  

한 주에 두 번 화실에 가는데 그날들이 기다려진다.


벌써 몇 년이나 되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매일 아침 30분간 원어민과 Skype로 영어 대화를 나눈다.

대화 내역은 제한이 없어 정치, 코로나, 일상생활, 나의 생각과 철학 모든 것을 얘기한다.

아마도 Neva Jean만큼 나의 속 속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익힌 영어 밑천으로 여행을 다녔다.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 남북미 등 40여 개국을 다녔다.    


그리고 글을 쓴다.

몇 번 여러 잡지에 글을 보내 투고료를 받은 적이 있고

요즈음은 생활중에 느끼는 소소한 것들을 글로 남긴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사는데 재미를 더하고자

취미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좋아서 즐기는 것들 중 고통이 동반되는 것들이 있어서 왜 계속하는지? 이런 것들도 취미에 해당하는지 정리하기 위해 이 글을 적는다.


누이집에서 물려받은 문경 뒷산에는 송이버섯이 난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문경지역에 비가 많이 뿌려지기를 바라고 가을이 접어들면서부터는 밤낮의 일교차가 심해지기를 기원한다. 습기가 많고 기온이 19도 이하로 떨어져야 송이버섯이 자라기 때문이다. 매년 송이버섯이 나는 시기에 두, 세 번은 문경에 간다. 겨우 사물 구분이 가능한 어스름한 새벽에 산에 올라 눈을 크게 뜨고 샅샅이 산을 훑는다. 처음에는 버섯 하루 한 두 개밖에 찾아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송이가 잘 자라는 토양을 알아내고 볼록 솟아오른 나뭇잎을 헤치고 송이를 캐낸다. 향긋한 송이 냄새와 식감이 뛰어난 송이버섯을 식용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섯을 찾아내는 과정이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에 가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 6월 중순에 문경 누이집 뒷산을 올랐고 7월 말에 가파른 앞산을 올랐다. 올여름 비가 많이 와서 여름 송이버섯을 기대해서 뒷산에 올랐고 6월부터 5개월 간이 수확시기라는 능이버섯을 따기 위해 온통 땀을 흘리며 앞산을 뒤졌다. 잡 버섯은 여기저기에서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송이나 능이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몸과 옷이 땀으로 절고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왜 한 여름에 산에 오르는가?


아버지는 어부로 불러도 좋으리만큼 낚시를 즐기셨다. 매일 낚시를 가셨다. 날씨가 좋지 않아 낚시를 가지 못하는 날에는 어구를 다듬는 일로 하루를 보내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형과 나도 자연스럽게 낚시를 취미로 즐긴다. 제주도 갯바위 낚시도 가고, 다대포 선상낚시를 가서 참돔과 부시리를 잡기도 하고 코로나 이전에는 가끔씩 대마도에 낚시를 가기도 하고, 미국 마이애미 앞바다에서 참치를 잡고 상어도 낚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2년 전부터 낚시 수확물이 너무 저조하고, 몇 번은 멀미에 시달렸다. 선상 낚시는 사전 예약제라 당일 바다 사정이 좋지 않더라도 취소를 할 수 없다. 지난주 오랜만에 다대포 선상낚시를 갔는데 바다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배에 올라 밤 8시에 돌아왔으니 10시간 동안 선상에서 멀미에 시달렸다. 멀리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예보에 따라 평소 낚시배가 많던 다대포 외섬 인근 바다에는 선상 낚싯배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직 우리가 탄 배만 있었다. 나이 든 선장이 하루 전 부시리를 5,60마리를 잡았다는 위치에 앙카를 내렸다. 파도가 뱃전에 와서 부딪쳐 배가 크게 울렁거렸다. 낚시 초반에 어신이 있어 형과 나, 또 한 낚시꾼이 각자 부시리를 한 마리씩 낚았다. 부시리의 강한 힘을 느꼈다. 두 번째 어신에 낚싯대를 빠르게 채었으나 부시리가 배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뱃바닥에 붙은 날카로운 조개류에 낚싯줄이 베어나가 버렸다. 바다는 사나워졌고, 해수면 위에는 하얀 파도가 날름거렸다. 바다에서 하얀 파도는 위험신호이다. 바다가 심하게 성을 내고 있다는 징조이다. 낚싯바늘을 새로 매고 미끼를 가는 짧은 시간 시선을 한곳에 집중하는 동안에 위에서 멀미 신호를 보내왔다. 속이 울렁거려 점심을 먹지 못했다. 그때부터 배에서 하선하는 시간 동안 멀미에 시달렸다. 두 번 토했다. 어제 수없이 잡아 올렸다던 부시리는 다 어디로 갔는지 어신이 사라져 버렸다.  선상 낚시꾼 다섯 명은 포기하지 않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해류의 흐름에 의존하여 낚싯줄을 풀어내렸다. 해류가 심상찮다. 물이 잘 흐르는 듯하지만 방향이 엉뚱 하다. 몇 사람의 낚싯줄이 엉켜서 줄을 풀고, 또는 원줄을 잘라 내야 했다. 나는 낚시를 포기하고 먼발치를 바라다보았다. 울렁거리기 시작한 속이 가라앉지 않았다. 어신이 오고 사람들이 고기를 잡아낼 때 다시 낚싯대를 드리울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기회는 끝까지 오지 않았다. 해가 바닷밑으로 가라앉고 석양이 지면서 서쪽하늘을 홍빛 감색깔로 물들인 후 어둠이 짙어질 무렵에 선장은 앙카를 뱃전으로 올리고 귀항을 서둘렀다.

다섯 명이 선상 10시간 동안 겨우 부시리 4마리 잡았다. 바다는 거칠고 파도가 배를 뒤흔들었다. 장시간 멀미와 구토에 시달린 나는 기진맥진했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그날 멀미가 스멀스멀 일어나 속이 편하지 않다.


서두에서 취미는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름철에 버섯을 따기 위해 가파른 산에 오르고, 거친 파도에 시달리면서도 선상낚시를 가는 것이 취미활동의 일환이라 할 수 있을까? 온통 몸과 의복이 땀으로 절려 지고, 장시간 멀미에 시달려 심신이 어지러운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며 즐기움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고통스러운 일을 반복하는가?


인간의 뇌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뇌는 많은 것들을 기억시키지만 내용에 따라 가중치가 다르고 활용하는 기준이 다른 모양이다. 즐겁고 유쾌한 것은 더 오래 기억하고 가중치가 높은 반면에, 힘들었거나 불쾌한 기억은 낮게 평가하는 모양이다. 낚시에 대한 기억 중 다대포 앞바다에서 68cm 참돔을 잡았던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이 고기를 잡지 못하고 멀미로 시달렸던 기억보다 가중치나 중요도가 높아서, 선상낚시를 떠올릴 때 멀미에 시달린 고통의 나쁜 기억은 좋았던 기억에 묻혀 선상낚시를 가도록 행동을 부추기는 모양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 사고로 판단하고 활동으로 이어나가도록 진화된 것 같다. 한 곳에 뿌리를 내어 영양분을 흡수하며 살아가는 식물에 비해, 활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먹이 활동을 해야만 생존을 유지하는 동물적 특성에 맞추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뇌의 긍정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 같다. 불쾌하고 위험한 것을 회피하려는 부정적 사고가 앞선다면 인간은 한없이 움츠려 들었을 것이고,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뒤로 물러가는 것에 익숙해져서 인간의 진보는 늦어졌을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거에 경험했던 좋은 기억을 되살리고 반복하기 위해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맛난 것을 다시 먹고 싶어 하고, 해외여행을 다시 가고 싶어 하고, 환상 같은 짜릿한 기억, 게임이나 도박, 마약 등을 잊지 못하고 반복하려는 성향이 긍정적인 것을 우선시하는 인간 뇌의 작동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뇌가 선택하는 것을 단순히 그냥 따를 것이 아니라, 나름의 분석 과정을 거치는 것은 어떨까? 행위에 앞서서 그것에 대한 과거의 경험, 장단점, 유쾌와 불쾌를 구분해서 점수를 부여하고 종합점수가 높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후회도 줄어들 것 같지 않는가? 뇌의 일반적 습성에 추가하여 논리적 분석과정을 거치는 것이 본능에 의존하지 않는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나름 생각해 보았다.


그래야만 비용, 시간, 물리적 사회적 윤리적 한계를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안전하게, 고통을 동반하지 않고 기쁘게 즐길 수 있는 온전한 취미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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