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영 Aug 08. 2021

그녀를 떠내 보냅니다.

그녀에 대한 최초 기억을 떠 올려 봅니다. 부산 북구 쪽으로 이사 왔다면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구포 와드를 방문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와 달리 남편은 덩치가 산만큼 커 보였고, 어린 딸은 그녀를 닮아 몹시도 작고 가냘펐습니다. 마치 나비가 하늘하늘거리며 날듯이 그녀의 딸은 아장아장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녀 딸의 초롱 거리는 눈망울은 '은별'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렸습니다.


우리 집은 개발을 마치고 입주를 시작한 해운대 좌동 신도시로 이주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가족도 해운대 신도시로 이사 와서 같은 와드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녀는 대동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소형 트럭으로 과일 장사를 하던 그녀의 남편은 신도시 중앙에 위치한 재래시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신도시에 입주하는 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장사가 잘되자, 그녀는 어린 자녀들을 집에 두고 남편의 일손을 돕기 위해 시장으로 나섰습니다.


그때까지는 해운대 신도시 중앙에 위치한 곳에는 소규모 재래 마을이 있었고, 재래시장도 정리되지 않아 난전 형태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개발과 보상 방식으로 부산시와 재래 마을 주민이 충돌을 빚을 때, 그녀의 남편도 상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룹에 속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재래시장을 정비한 후 일부 상인은 권리를 인정받아 시장 내 작은 땅을 분양받아 장사를 계속했는데, 그녀는 보상을 받는 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때 나는 그녀가 재래시장의 땅을 분양받아 안정적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인데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인근에 대우아파트를 구입해서 이사를 갔습니다. 형편이 좋아지는 모양이구나 싶어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4명의 어린 딸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일광에 가게를 얻어 식당을 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생 고생해서 마련한 아파트를 정리해서 오리고기 장사를 한다는 얘기에 마음을 졸았습니다. 음식 솜씨는 좋으나 다섯째 아이를 가진 그녀가 장사를 잘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일광역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위치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가게를 방문했을 때, 그녀의 배는 많이 불러 이었습니다. 콧잔등에 땀방울을 맺혀가면서 음식을 준비해서 여러 종류의 오리고기를 내어 왔습니다. 부디 이번에는 장사가 잘되어서 돈 많이 벌기를 진심으로 기원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장사가 잘되지 않고 그녀의 몸도 무거워지자 결국 가게를 정리하고 말았습니다. 훗날 일광의 그 가게는 아귀찜으로 유명한 맛집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작은 체구로 다섯 아이를 키우랴, 남편을 도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랴 고생하는 그녀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얘기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힘든 삶이 나아지지 않고 악운이 겹치다니...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5년 동안 별 탈없이 지나 완쾌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교회의 구역이 정리되면서, 정관에 살고 있던 그녀의 가족이 금정 와드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시 같은 와드에서 신앙생활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녀와 남편은 미녀와 야수와 같은 커플이었습니다. 그녀는 체구는 작았지만 강단이 있고 말투는 늘 당당했습니다. 몇 살 나이가 어린 남편은 덩치는 컸으나 순하고 마음이 어질었습니다. 그녀의 집에서 집들이가 있던 날엔 얼마나 많은 음식을 준비했던지, 수십 명의 교회 회원들이 먹고도 남아서 음식을 조금씩 싸서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호탕하고 마음이 넓고 손이 컸습니다. 만사에 적극적이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당당했습니다.


고성에서 함께 잡았던 새조개. 재첩 조개는 그녀가 아침에 나가서 잡아 온 것입니다.

그녀의 가족은 해마다 장사하던 트럭에 짐을 잔뜩 싣고 여름휴가를 갔습니다. 지리산 계곡, 동해 바다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그녀의 가족과 함께, 어느 해인가 함께 전남 고성지역으로 여름휴가를 떠났습니다. 딸들은 바다에 카누를 띄워 서서 노를 젓고, 낚싯대를 던져 보리멸을 낚았습니다. 그곳 캠프장 앞바다에 뻘이 형성되어서 새조개가 잡힌다며 2년째 그곳으로 휴가를 간다는 가족과 동행한 나도 부지런히 새조개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부지런한 그녀 역시도 쉼 없이 잡았습니다. 하루를 텐트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일찍 그녀는 바닷가로 조개를 잡으러 가서 재첩을 많이 잡아 왔습니다. 그녀는 낚시도 좋아하고 조개잡이, 봄나물 채취 등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차귀도로 달려갔고, 체험 낚싯배를 탄 우리들은 운 좋게 고등어 떼를 만났습니다. 한꺼번에 몇 마리씩 고등어가 달려 나왔습니다. 선장님이 구워주는 돼지고기와 고등어구이를 먹을 틈도 내지 않고, 그녀는 고등어 잡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그날 저녁 그녀의 남편은 옛날 생선 장사하던 실력을 발휘하여 고등어 살을 포로 떴고, 제주도에서 돌아오던 날 일행들은 냉장고에 저장해 둔 고등어를 한 덩어리씩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광안리 근처에서 과일장사를 한 적이 있었고, 연산동 신축 아파트 단지에 입주하는 때를 맞추어 가게를 얻어 과일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때는 생과일주스가 인기를 얻고 있었던 때라, 그녀의 큰 딸, 은별이는 주스를 만드는 장비를 구비해서 과일가게 한 코너에서 생과일주스를 팔기도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장사가 시원찮다는 얘기가 들리더니만 결국 장사를 접고 말았습니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쯤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녀의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첫 수술하고 5년이 지났으니 완쾌했다고 철떡 같이 믿었던 가족에게는 절망 같은 비보였습니다. 수술 후 8년 만에 재발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번에는 수술을 하지 못하고 항암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만 그녀의 건강은 느린 속도로 악화되어 갔습니다. 건강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했고 잘 버텨 나갔습니다. 교회에서 간증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미소는 옅어진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했던 해인 2020년 10월 추석 연휴를 맞아 그녀와 함께 대마도 낚시 여행을 갔습니다. 지루하게 병원과 집을 오고 가던 그녀의 건강이 다소 회복되어,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가벼운 여행과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했습니다. 첫날은 근처 갯바위에서 함께 낚시를 즐겼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낚시를 했고, 벵에돔 몇 마리를 잡아 냈습니다. 그녀는 좋아라 했습니다. 다음 날 부산이 보인다는 언덕에 올라 함께 사진을 찍고, 그녀는 절벽 인근에서 자라는 달래를 캐어와서 고추장 초무침으로 반찬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녀는 일찍 민숙 앞 오솔길을 가볍게 걸었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쉬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그 후 10개월간 그녀는 병원과 집을 오갔고,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코로나로 대면 예배는 볼 수 없었지만, 비대면 예배에서는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지만, 눈물도 젖어 있었습니다. 남편을 통해 그녀의 안부를 듣고, 경우 민어 생선이나 송이버섯 조금을 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그녀의 남편과 다섯 자녀들이 위축되지 않고 밝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줄을 잡고 있어야 하니까요.


오늘 아침 그녀의 발인식에 참여했습니다. 11년을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그저께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녀의 빈소에는 "성도 이명옥" 명패가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백성으로 살아왔던 그녀의 삶이 그려졌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한 지아비를 섬기는 아내로 다섯 자녀의 어머니로 살면서, 가족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한 지상에서의 그녀의 가치와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자녀들의 마음속에 심어진 그녀 삶의 가르침과 흔적은 또 어떻게 이어질까요?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그녀 얘기를 들었습니다. 늘 당당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상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 했노라고, 세상의 소풍을 마치고 이제 돌아가노라고...


각자는 자신의 방식이 있는 법입니다.

나는 그녀와 맺은 인연을 풀어내면서 그녀를 떠내 보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