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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22. 2021

생일날

어머니와 생일 축하

아이 생일날에 부모들은

악귀의 접근을 막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붉은 수수팥떡을 해 먹이고

고려시대부터 전통으로 전래되어 내려온 미역국을 끓어 주었다.


요즘 다수의 부모들은 아이 생일날에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유명 뷔페에 가서

남들이 만들어 놓은 음식으로 수수떡과 미역국을 대신한다.


과거 자녀의 건강과 행운을 비는 진실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의례만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없어지고

축하한다는 말과 상품권이나 얼마의 용돈으로 대체되었다.

비대면 학습과 인터넷 게임 등 각자의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도

함께 모여 자신의 생일을 축하받는 것을 성가시게 생각해서

저녁에 모이자는 제안을 가볍게 거부한다.


부모는 출근을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고

밤늦도록 게임이나 개인 사이버 세계에 빠진 아이들은

늦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과 방식대로 아침, 저녁 식사를 해결하게 되고

각자의 Life Cycle 이 달라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점차 식구(함께 밥을 먹는 사이)라는 개념에서 한 명씩 개별화되고 있다.

가족이라는 결속력도, 부모 자식 간의 애정과 기본 의무감도 흐려가고 있다.


*      *      *      *      *


올해 생일날에는 특별히 기대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매년 내 생일날을 기억하시어 아침 일찍

"아무것도 못해 주어  미안하다. 맛있는 거 사 먹어래이 ~"라고

안부 말씀을 해 주시는 여든여들 살 되신 어머니의 전화가 그것이다.


시골에서 홀로 계시고

코로나로 인해 바깥나들이도 할 수 없어

늘 TV의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앞에만 계시는 어머니.

해가 갈수록 신체가 약화되시고 의식과 관심이 줄어들어

가까이에 있는 딸 내 집에 가는 것도 귀찮다고 하신다.

그 깔끔하게 닦고 쓸어내시던 습관도 무디어져  

대충 손으로 훔치거나 옆으로 밀어내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바라보노라면

총기로 가득 찼던 눈망울도 흐려지고 탁한 시선으로 TV를 보시는 그 모습에

자식은 안타까움으로 마음을 쓰러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어머니의 전화를 내 생일날에 다렸다.


생일날.

그랬듯이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메일과 국내외 뉴스를 확인하고 Neva와 통화를 하고

사내외 홈페이지에 등록된 댓글과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쓰면서 오전을 보냈다.

그때까지 어머니의 전화가 없었다. 잊어 버려셨나...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와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차분히 휴대폰을 살펴보았다.

세 번의 미수신 전화가 들어왔었다는 표시를 클릭하니 어머니 전화였다.

식사도 하지 않고 아침 일찍 출근하기 위해 차를 몰고 있는 동안에

걸려 온 어머니의 전화가 차단되어 있었다.


급히 전화를 거니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데. 니 생일인데 아무것도 못해 줘서 미안타.

맛있는 것 사 먹어래이 ~"

한결같은 어머니의 생일 축하 말씀을 들었다.


여든 여들의 어머니 기억 속에는 여전히 자식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살아있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눈이 흐려져 가까이 있는 것들이 멀게 느껴질 지라도

자식들과 이어진 의식과 소망은 마지막까지 꼭 붙잡고 계신다.


내 생일날.

어머니의 생일 축하 전화가 최근에 받은 것들 중 최고의 선물이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생일날 아침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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