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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30. 2021

몬주익 경기장 황영조 기념비, 몬트까로를 향해

2018년 스페인 + 포르투갈 + 모로코,열한 번째

가우디를 세계적 건축가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에우세비 구엘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구엘은 가우디의 최대 후원자이며, 수많은 건축물을 맡긴 건축주이다. 구엘이 없었다면 가우디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오늘날의 명성을 얻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엔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구엘 공원, 구엘 궁전, 구엘 성당... 가우디가 최고의 건축가이니까 맡겼겠지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만, 당시 가우디는 낙제생으로 졸업이 어려웠고, 구엘이 일을 맡기기 전까지는 무명의 학생에 불과했다. 구엘은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구를 보고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는 예술에 대한 조예와 가우디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가진 건축주이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일을 맡긴 후 10년 동안 벽돌 하나 올리지 않아도 끝까지 후원하며, 무명의 학생에게 창의성을 무한대로 발휘할 기회를 준 자산가이다. 이러한 구엘이 있었기 우리는 가우디의 위대한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천재도 기회가 없으면 자기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나로 인해 내 자녀의 천재적 재능이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하다.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과 무한한 기대, 끝없는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에겐 왜 그러한 후원자가 없었던가?  




몬주익 운동장 입구로 달려 들어오는 마라토너 황영조를 기억할 것이다. 바르셀로나 도시가 우리에게 익숙하도록 만든 1992년 올림픽 마라톤에서의 극적인 우승. 결승점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점에서 황영조는 선두를 달리던 일본 선수를 제키고 몬주익 경기장의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 순간 황영조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우승자의 세리머니인 태극기를 흔들며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 행사를 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죽을 힘을 다해 달렸던 것이다. 의식을 차린 황영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몬주익 언덕을 오르는 도로를 뛸 때는 달리는 차에 부딪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앞에 달리는 선수가 일본인이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죽으라 달렸다". 황영조의 마라톤 승리는 대한 국민뿐 아니라 바르셀로나 교민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이국땅에서 겪었던 온갖 고생을 잊게 했고, 고국에 대한 애국심을 되살렸다. 살아 있는 자의  동상은 세울 수 없다는 시 규정에 따라 교민이 주동이 되어 바르셀로나 시와 경기도가 자매결연을 맺고,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으로 황영조의 달리는 모습을 담은 기념비를 몬주익 언덕에 세웠다.

몬주익 스페인 광장, 황영조 기념비와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념탑


바르셀로나에서 70km 떨어진 1263m 높이 몬트까로는 가톨릭의 성지인 동시에 카딸로니아인들의 성지이다. 몬트까로는 산이란 뜻의 몬, 톱니를 의미하는 까로를 합친 것으로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으로 봉우리가 수없이 많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양새가 나오는데, 그중 압권은 앉아 있는 낙타 형상이다. 삭도를 타고 오른 몬트까로 정상에서 둘레길을 만들기 위해 파헤친 흙더미에 둥근 돌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산은 옛날 바다 속이었으나 지각변동으로 융기되어 형성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몬트까로 산을 오를 때 무지개가 떴다.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톱니 모양의 산' 몬트까로를 오를 때 무지개가 떴다.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위 사진 오른쪽에 낙타가 앉아 있는 모양의 산봉우리

몬트까로 산은 검은 성모상을 모신 바시니까 대성당과 수도원으로도 유명하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누가가 나무에 성모상을 조각하여 스페인으로 선교사업 떠나는 베드로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또 다른 전설은 880년경 어느 날, 목동들이 양을 치고 있는데 하늘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고 빛이 쏟아져서 달려가 보니 동굴이 있었고, 그 동굴 안에 검은 성모님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대성당에 모신 성모상은 모형이고, 원형은 옛 동굴 안에 모셔져 있다. 성모상의 손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다.

성모님이 들고 있는 둥근원형은 지구로 인류를 상징. 유리벽으로 보호하고 손 하나만 노출되어서 신도들이 손을 잡고 소원을 말한다.


성가족 대성당의 수난의 문을 조각한 수비라치 작품의 주인공 만추수 조각상이 대성당 앞 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그는 1811년 나폴레옹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르셀로나를 침입할 때 주민들을 이 산의 동굴로 피신시켜 생명을 구한 영웅이 된 인물이다. 얼굴을 음각 처리한 이 조각의 특징은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조각상의 눈과 서로 마주친다는 것이다.

몬트까로는 검은 성모상을 모신 바시니까 대성당과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 군대로부터 바르셀로나 시민을 구한 만추니

쏟아 내릴 듯 가파른 삭도를 타고 산 정상에 올랐다. 길을 만들기 위해 파헤친 흙더미에서 돌 하나가 나를 맞이했다. 오랜 세월 바닷가에서 다듬어진 둥근 돌은 지각변동으로 흙더미 속에 갇혔다가 또 다른 지각의 변화로 융기되어 몬트까로 산 정상으로 올라왔다. 누군가 길을 내기 위해 파헤쳐졌다가 오늘 우연히 내 눈에 띄었다. 이 기막힌 인연, 억겁의 세월이 흘러 우리는 만났다. 80년 시간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이 돌이 지닌 세월을 헤아릴 수 있을까? 집에 잘 모셔 놓고, 짧게 생을 사는 내가 한낱 의식 있는 생명체로써 세상을 이해하고 겸손을 배워 가야 할 것이다.

 


이로서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이 끝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생업에 충실할 것이다. 세상에 살다가 기운이 쇠하고 정서가 메말라지면 다시금 배낭을 메고 어딘가로 훌쩍 여행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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