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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Nov 08. 2021

사과 수확, 한 해의 결실을 마무리하는 법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잦았다. 여름날 비가 산하를 촉촉이 적실 때마다 내심 속으로는 기뻐했다. 문경 누이집 뒷산에서 피어날 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송이버섯 포자가 습기를 잔뜩 머금고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보일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올 가을엔 송이버섯을 많이 채취하고, 오랫동안 송이 향기에 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정작 절기가 되어 산을 올랐을 때 송이버섯의 성장 양은 예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누이와 자형과 함께 한번 산을 오르면, 송이버섯 3, 4kg 채취가 고작이었다. 여름에 내린 소낙비는 가을 송이버섯 성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송이버섯이 자라는 시기에 비가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요할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송이버섯이 번성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버섯을 따기 위해 산을 오른 지 십 수년만에 가장 많은 수의 송이버섯 군락을 발견하고 즐거워했던 기억을 간직하게 된 한 해가 되었다.


그렇게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내렸던 잦은 비는 누이 내외가 한 해동안 내내 정성을 기울여 가꾸었던 사과 수확에 나쁜 영향을 주고 말았다. 여름날의 뜨거운 햇살이 사과 빛깔을 붉게 만들고 과육에 단맛을 스며들게 한다. 하지만 잦은 비와 구름은 햇볕을 가려 사과가 무르익을 기회를 잃게 했다. 햇볕 반사필름을 깔고 사과 수확 시기를 최대한 늦추어도 사과가 빨갛게 익는데 필요한 햇살이 절대 부족했다. 그래서 올해 전국 부사 사과 맛은 단맛이 줄고 빛깔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문경 용원에서 가꾸진 대부분의 사과는 단 며칠 만에 수확되었다. 지난 주말에 이곳을 왔을 때만 해도 붉은 사과가 달려던 과수원엔 지금은 나뭇잎만 달린 사과나무들이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제법 단풍이 물든 누이집 앞산과 뒷산을 배경으로 과수원 사과나무들은 누른 나뭇잎을 바람에 떨구고 있다.   


한송이로 자란 작은 사과 중 중심과만 남기고 측과를 제거하는 적과 과정부터 사과를 수확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누이를 돕기로 했다. 자형은 통상 1주 안에 사과를 수확하던 예전과는 달리 올해는 사과 수확을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나는 그 결정에 따라 빨갛게 잘 익은 사과만 골라 수확했다. 옆집 과수원엔 사람을 동원하여 하루 만에 사과를 다 따내는데, 누이집 사과 수확은 2주를 넘기고 있다. 다른 집은 단 며칠 만에 수확을 끝내고 한 해의 긴 사과농사를 마무리하고 휴식 기간에 들어가는데 비해, 누이 내외는 최상의 사과를 수확하고 수입도 늘리기 위해 수확 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한 해의 사과 농사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며칠 더 일한다고 해서 뭐가 문제가 되랴.


다른 농부는 숙성된 사과와 붉은 빛깔이 부족한 사과들을 한꺼번에 따서 농협에 출고하지만, 누이는 익은 사과만을 단계적으로 수확해서 그때마다 농협에 출고한다. 농협에서 빛깔 좋은 사과는 박스당 1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햇볕을 충분히 받아 빛깔 좋고 맛있는 사과는 선별해서 냉장창고에 저장해 두고, 일 년 내내 주문받아 택배를 보냄으로써 소득을 높인다. 사과 농사로 얻는 소득을 최대화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경쟁이 치열한 도시에서의 오랜 생활을 체득한 먹물들의 바람직한 선택이라 할 것이다. 일의 좋은 마무리가 성과를 최대화하는 법이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기 시작하는 때에 사과 따기를 멈추고, 사과 꼭지를 따고 택배로 보낼 사과를 선별하여 냉장창고에 보관하고 나니 주변이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간 서산에는 밝게 빛을 내는 장경성과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 금성이 출현하는 시기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여진다. 새벽에 나타나면 샛별, 저녁 무렵에 나타나면 장경성이라고 부른다.


(*) 사과를 수확하면서 발견한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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