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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an 06. 2022

한라산 겨울 등반

제주도를 여러 번 갔지만 한라산 정상을 등반한 적이 없다. 이번 겨울에는 마음을 다잡고 정상을 밟아보리라는 각오로 지인 두 분과 겨울 등반을 결정했다. 1박 2일 저렴한 제주도 패키지를 구매하고, 새벽 일찍 부산을 출발하여 한라산 서남쪽 영실코스에서 출발했다.


눈 뒤덮인 한라산이 우리를 반가이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겨울철 한라산 등반은 하산 시간을 고려하여 윗세오름 산장까지 12시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 시간 관리를 잘해야 한다. 하지만 온통 눈으로 뒤덮여 바닥이 미끄럽고 백설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여 발걸음이 늦어졌다. 함께 간 큰 형님뻘 지인이 힘에 겨워 뒤쳐져지기 시작했다. 결국 부담을 줄여주고자 백팩을 내가 받아서 등과 앞에 이중으로 둘러메고 정상을 향해 발을 옮겼다.

 

한참을 오르다가 뒤쳐진 일행을 기다리곤 했다. 추운 겨울임에도 땀으로 흥건한 얼굴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쉬는 시간 잠시 둘러보는 설경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묘한 귀한 풍경이다. 막 도착한 동료에게 쵸코렛을 나누어 주며 힘내서 걷자고 격려를 했다. 하지만 평소 운동이 부족하고, 조금씩 기력이 빠져가는 육신의 한계를 이길 수 없는 지인은 빠른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내게 먼저 올라가길 권했고, 나는 하얀 눈 속을 헤치며 걸음을 재촉했다.


앞선 등반객을 제쳐가면서 혼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윗세오름 대피소에 12시 전에 도착했다. 산장 지킴이에게 동료가 곧 도착하니 함께 정상에 오르게 해달라고 시간 말미를 구했다. 지인들의 늦은 도착에도 불구하고 한라산에 오를 수 있는 허가를 받았으나, 정상을 오른 후 지쳐버린 지인들이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직 한라산 등반을 목적으로 벼루고 온 여행이지만 여건을 헤아리지 않고 강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보는 것을 남겨 두어야 다음에 다시 제주도에 올 수 있다'는 말을 남기며 정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우리가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 올라 맛보는 쾌감이 아니라도 산을 오르면서 눈앞에 펼쳐진 설경을 만끽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 나누는 맛있는 간식과 진지한 대화, 그리고 자신 내면의 속삭임에 귀 기우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또 훌쩍 이곳을 다시 찾을 거라고, 그래서 언젠가 한라산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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