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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Dec 09. 2021

혼돈 2

옛 상하이 이야기, 두 번째

상해는 다수의 지하철 노선이 있어 시내 관광에 요긴하다. 한국의 그것보다는 거의 두배 정도 깊은 지하에 설치하여 운행되고 있다. 시설은 좀 둔탁해 보인다. 공항에서 처럼 먼저 보안 강화를 위해 지하철 입구에서 가방 등 큰 소지물은 반드시 엑스레이 검색대를 거쳐야 한다. 자동발매기로 지하철 티켓을 사서 긴 엘리베이터를 두 번 타고 내려가야 지하철을 탑승할 수 있다. 지하철 내 일부 승객은 한류의 분위기에 편승해 화려하고 편리한 등산복을 평상복으로 입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삼성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갤럭시 탭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의 사유재산 인정 정책으로 인해 풍요가 넘치고, 겉으로 봐서는 공산국가인지 자본주의 국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3일째 되는 날, 1시 반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아시아 통신 엑스포를 다시 둘러봤다. 11시쯤에 회사 부스 전시 담당자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에 도착하자마자 막 출발하려는 지하철이 보였다. 지하철 외부 창에 'international airport'라는 안내 자막이 보여 달려가서 탑승했다. 마침 빈자리가 있었고, 덜썩 앉았다. 열다섯 정류장쯤 지나면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느긋하게 이틀 동안 찍은 사진을 보면서 짧은 여행을 정리하기로 했다. 한 삼, 사십 분쯤 지났는데도 푸동공항에 대한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노선표와 도착하는 역을 비교해 보았다.  한두 정거장을 지난 후에야 지하철이 푸동공항 반대쪽으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순간 당황했다. 다시 노선표를 보고 타고 있는 지하철 노선 양쪽에 푸동 국제공항과 홍차오 국제공항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앗!!! 3일간 상해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이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international airport'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서둘러 지하철을 잡아 탔는데. 난 푸동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지하철은 푸동 공항의 반대편에 있는 홍차오 공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위 푸동 국제공항, 아래 홍차오 국제공항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그리고 여긴 어디지? 반대편 지하철로 옮겨 타고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갈까?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데 시간이 될까? 택시가 빠를까?...' 민첩하게 머리를 굴리다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서둘러 지하철 지상구간으로 달려 나갔다. 넓은 광장이 나왔다. 재빨리 위치 파악해 보니 '인민광장'이다. 낮시간에도 택시잡기가 너무 힘든데... 도로변까지 나가서 목소리를 높이고 발을 동동 굴리다가 다행히 택시를 겨우 잡았다. 'Pudong Internation Airport' 목적지를 외쳤다. 기사가 중국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간신히 '푸동'이라는 말이 귀에 들렸다. 'OK, OK'...


택시가 몇십 분을 달렸고 내 마음은 타들어갔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4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가슴이 답답하다. '급하니 빨리 가자'라고 말해야 되는데... 문뜩 떠오르는 말로 크게 주문했다. '콰이!!  콰이!!' 빨리 가자는 말인데 중국어로 맞나? 어쨌든 다행히 통했던지 기사가 빠르게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한참을 달려가다 보니 도로변 안내판에 푸동 공항이 적혀 있었다.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기사가 뭐라 얘기하는데 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멀뚱멀뚱. 그래도 재차 얘기한다. 또 멀뚱멀뚱. 한참을 지나다 보니 차창밖으로 푸동 국제공항 터미널 1, 터미널 2로 구분 안내 표시판이 보였다. 기사는 '몇 번 터미널로 갈 거냐?'라고 물었 던 것이라고 알게 된 순간, 앗!! 또!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는 몇 번 터미널에서 탑승하는 거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터미널 1로 가자고 해야지. '이! 이!' 외쳤다. 중국어로 일(1)이 '이', 이(2)가 '얼', 삼(3)이 '싼' 이던가???


택시가 터미널 1에 도착하여 내리려 하는데, 대합실 입구에 'Domastic Airport'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사에게 다시 '얼! 얼' 외쳤고, 택시가 다시 달려서 터미널 2에 도착했다. 잔돈도 받지 않고 급하게 캐리어 내려 끌고 공항 대합실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영어 할 줄 아냐?'며 외치다가 겨우 안내원 차림 아가씨를 만나 부산행 비행기 티켓 발매 창구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이곳이 아니란다. 뭐라고? 당황!! 급히 예약 티켓을 꺼내 노선 안내도와 비교해 보니 동방항공은 터미널 1에서 탑승하란다. 뭐야!! 뭐야!! 달려 나가 택시를 타고 '얼!! 얼!!'을 외쳐 터미널 2에 도착했다. 정말 출발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다. 급하다. 급해. '비행기를 놓치고 말겠군. 하루 자고 내일 출발하지. 뭐'. 당황한 가운데 마음을 평정시키고 동방항공 티켓팅 창구 앞으로 갔다. 창구 앞에 100여 명 이상 대기자가 줄을 서고 있었다. 또 당황. '오늘 왜 이러지?? 이러다 정말 오늘 비행기 놓치고 말겠는데. 호텔 1박 숙박비가 얼마더라? 항공 티켓 재발급 비용은? 회사에는 또 뭐라고 하지? 비행기 놓쳤다고 해야 하나?'...


'안 되겠어!! 결심했어!! 지금 난 정말 새치기가 필요해!! 부득이 해.'


캐리어는 한쪽에 새워두고 발급 창구 맨 앞에 가서 "부산에 가시는 분! 부산에 가시는 분!"  몇 번 외쳤더니 다행히 아주머니 한 분이 손을 들었다. 다가가서 "지금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하니, 함께 티켓팅 할 수 있겠냐?" 정중히 부탁하니 "뒷사람들이 거부하지 않으면 좋다"라고 해서, 뒷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설명했다. 겨우 겨우 티켓팅 해서 출구로 달려가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탑승해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내 마음은 새카맣게 탔고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옷 또한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상해에서의 두 번째 혼란 얘기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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