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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Dec 27. 2021

그의 빈자리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한 2개월 전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주워 모은 수석들 사이에서

파란색 베타는 며칠째 꼼짝이지도 않고 바닥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아침에 뿌려 준 먹이도 입을 대지 않아

물에 불어서 몇 알은 물 위에 떠있고 몇 알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손톱으로 어항을 톡톡 치면

그제야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수면 위로 잠시 떠 오르곤 했다.

하지만 그 몸놀림도 예전 같지 않았다.

전에는 어찌나 빠르게 헤엄을 치는지

어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베타는 어항 바닥에 가라앉았다.

파란색이었던 몸체가 흐린 푸른색으로 옅어지고

빠르게 헤엄치던 지느러미도 희미한 푸른색으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군에 입대한 막내아들이 남기고 간

빨간색 베타를 1년 가까이 돌보던 어느 날

허연 배를 내놓고 어항 바닥에 가라앉은 베타로 인해

이별과 상실의 아픔으로 멍멍해진 마음을

며칠 동안 주체할 수 없었다.


그 후 몇 차례 새로운 베타를 맞이하고 떠내 보내면서

상실의 아픔에도 굳은 살이 베어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빠르게 둥근 어항 속을 몇 바퀴씩 돌던 파란색 베타는

끝내 좁은 어항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지름 20cm의 둥근 세상을 떠나갔다.

빠르게 헤엄치기를 좋아했던 그놈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좁고 둥근 세상 속에서 살다가 갔다.

나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거실 한쪽 벽면에 놓인 어항 속 그놈을

그저 하루 몇 번 바라다 보고

햇빛을 싫어한다는 얘기에 탁상용 달력으로 햇빛을 가려주고

며칠 출장을 가는 날은 먹이를 좀 더 많이 뿌려 줄 뿐이었다.

물은 탁해져서 바꾸어 주었다기보다

거실이 건조해서 어항 속 물의 양이 줄어들어 보충해 주었을 뿐이다.


놈이 가고 난 다음

이제 베타를 그만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출퇴근하는 시간에 파란색 베타가 살았던

그 자리로 시선을 돌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의 빈자리가 마음 한쪽에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심했던 시간

하루 한 두 차례 시선을 두고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 주었던 그 행위가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으로 소풍 왔던 부모 세대와 친구들이 떠나가고

익숙했던 것들을 떠내 보내고

난 그저 새벽녘에 눈을 떠고 그리움으로 마음을 저린다.


세상에서 대체할 수 없는 것에는

그리움으로 서러울 수밖에 없지만

대용품이 있다면 다시 정을 붙이고 돌보고 나눔으로써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마지막이 아니고 여전히 살아가야 하므로

익숙한 것에 감사하고

존재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새로 사귄 이웃들에게 전에 해 주지 못했던 몫을 쏟아 주고...



새로 베타 한 마리를 구입했다.

이번엔 빠르게 헤엄을 치지 않고

유유자적 물결을 느끼는 듯 부드럽게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좁고 둥근 어항에 잘 적응하고

오래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가 든다.


소량의 먹이가 수명을 더 길게 한다고 하니 그렇게 도와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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